다윈은 진화론을 표절했다

2009. 1. 19. 13:07자연과 과학

다윈은 진화론을 표절했다
2008/06/24 오후 5:12 | 난잡일기

좀 쇼킹한 뉴스임.

아무리 당시 학계, 미술계에 표절이 난무했다지만 다윈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기본적으로 세계의 유명한 발명, 발견은 상당수가 표절임. 대표작이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 특허만 먼저 받았을 뿐, 사실 많이 보고 베꼈다.

근데 다윈은 오히려 벨의 경우보다 더 심하다. 일단 자초지종은 이렇다.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alfred russel wallace)라는 사람이 있다. 1823년생. 이렇게 생겼다.



영국의 자연학자였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홀로 자연 속을 전진하며 자연의 원리를 깨달은 도인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찌하다가 생물학자의 자격으로 리니언 협회(Linnean Society)에 등록이 됐는데, 당시 찰스 다윈 역시 이 협회의 회원이었다. 학교 다닐때 생물 과목 좀 했던 사람이라면 린네(Linnaeus)라는 걸출한 생물학자의 이름 기억 날거다. 생명체 구분법을 처음으로 확립한. 이 양반의 이름을 딴 협회였다.

1858년. 이 협회에 월러스 선생님의 논문이 공개됐다. "원형으로부터 끝없이 이탈하는 다양성의 경향에 대하여(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iroginal type)"이란 심상치 않은 제목의 논문이었는데,

이 논문이 바로 세상에 처음 발표된, 인류가 처음으로 깨달은 자연의 가장 위대한 진리, 진화론의 효시였다. 

이 논문에서 월러스는 '자연의 선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계 최초로 이야기해 주었다.

문제가, 이 내용을 월러스가 다윈에게 직접 편지로 보냈다는 거다. 둘이 무슨 관계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같은 업종 사람으로서 여러 교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중간에 수많은 우여곡절 자초지종 이판사판 사연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이 논문 덕에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라는 책을 세상에 출판할 수 있었다.

아다시피, 종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몇 안되는 책 중 하나.

당시 월러스는 자신의 이론이 리니언 협회에 공개가 됐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세상과 단절된 채 세계 오지를 돌아다니며 생명체의 진화와 땅과 해수의 움직임을 죽어라 관찰하고 있었으니까.

다윈은 월러스와는 달랐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월러스와는 달리 영국 과학계의 엘리트였다. 인맥도 빵빵하고 집안도 괜찮았거든. 다윈은 주류였고 월러스는 비주류였다. 이론을 발표하면 주류가 되는 쪽은 당근 다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표절이냐고 확증할 수는 없다. 둘이 동시에 적자생존의 법칙을 생각해 낼 수도 있는 거다. 근데 정황증거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일단, 다윈의 책 주제와 월러스의 이론은 완전히 같다. 월러스가 진화론의 아이디어를 다윈에게 직접 보냈고 그 아이디어를 그대로 출판했음에도 다윈은 월러스가 자신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만 주장하고 있다.

수학자이자 "종의 기원" 원서를 들고 있는 쉐이커쥬니어님이 제공한 종의 기원 서문에 월러스에 대한 이야기다.

"i have been urged to publish this abstract. i have more especially been induced to to this, as mr wallace, who is now studying the natural history of malay archipelago, has arrived at almost exactly the same general conclusions that i have on the origin of species. last year he sent to me a memoir on this subject, with a request that i would forward it to sir charles lyell, who sent it to the linnean society, and it is published in the third volume of the journal of that society. sir c. lyell and dr hooker, who both knew of my work-the latter having read my sketch of 1844-hounoured me by thinking it advisable to publish, with mr wallace's excellent memoir, some brief extracts from my manuscripts."

전문가들은 다윈이 월러스의 memoir에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정황증거지만.) 근데 다윈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윈은 월러스에게 진화론의 아이디어를 자신에게 양보하라는 내용의 편지까지 썼다. (물론 안 보냈지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상당한 죄책감을 토로했다. 월러스와의 관계는 "비극적인 일(miserable affair)"이라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엔 "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며 입 싹 씻었다. 



물론 다윈이 엉터리라고 폄하해 버릴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당시 월러스의 "적자생존" 이론에 주목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이게 뭥미' 이런 반응이었는데 다윈 혼자 이 이론의 엄청난 위력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종의 기원에는 월러스의 이론을 수백만배 강화시켜준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건 다윈이 직접 쓴거다. 게다가 이 책을 발표한 덕에 더럽게 오래동안 극심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진화론을 방어하기 위해 치열한 한평생을 바쳤다.

다윈은 여전히 선각자였던 거다.



참고: 세상의 위대한 발명/발견은 우연히 같은 시대 같은 지역 인간들이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
뉴튼 / 라이프니츠: 미적분법
칼 빌헬름 쉴 / 조셉 프리스틀리: 산소의 발견
컬러 사진은 2명의 프랑스 인이 동시에 발명했으며, 태양의 흑점은 4명의 무명의 과학자들이 같은 년도에 발견했다.
이 밖에도 온도계 망원경 전화기 계산기 컴퓨터... 뭐 셀수도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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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5편
2008/06/20 오후 12:49 | 난잡일기

5편 맞냐? 하두 오래되서 원... 암튼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마지막 편이다.


에버렛 루스(Everett Ruess, 1914-1934).

아마도 "Into the Wild" 책이 발간되지 않았더라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생에서 죽은 젊은이'로 기록될 청년이었다.

실제로 "Into the Wild"에도 에버렛 루스의 일대기가 소개돼 있는데, 소개를 안하고 넘어기가 힘들만큼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성향과 닮아 있다.

에버렛 역시 지적인 가정에서 자라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그의 부모는 철학자, 작가 등으로 활동하는 자유인이었으며, 미국 전역을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다.

부모의 방랑벽 덕인지 에버렛은 16살 때부터 야생에 심취해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다. 풍찬노숙은 예사. 그는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먹을 것이 생기면 먹고, 먹을 것이 없으면 굶고, 해가 떨어지면 땅위에 그대로 누워 잠을 잤다. 그는 홀로 요세미티 등지를 히치하이킹도 하고 무작정 걷기도 하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 몇 달을 같이 살기도 했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순박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그를 맞아준 어떤 이는 자신의 2명의 아들들과 함께 에버렛을 양육할 생각도 했다고.

1931년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자마자 다시 홀로 여행을 떠나 유타, 아리조나, 뉴 멕시코 주를 맨몸으로 떠돌아 다녔다. 당시 이 지역은 현재의 알라스카보다도 더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야생이었다.

그는 서부 지역의 명문인  UCLA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을 다니고 중퇴하고 말았다. 그는 이때 이미 자연 속에서 살다 죽으리라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독한 야생의 방랑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자연 속의 길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마 이런 자연의 매력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도 방랑은 계속될 겁니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가 된다면, 자연의 가장 동떨어진, 가장 외롭고, 가장 황량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움은 이제 저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관조자가 된 기분입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온화해진 것 같습니다. 이곳에도 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이들은 내 기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왜 여행을 떠나왔는지, 왜 혼자 다니고 있는지... 지금까지 너무 혼자 멀리 온 탓일까요.

"전 항상 남들 사는 인생에 불만이었어요. 전 항상 다른 이들보다 치열하고 풍성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에버렛은 한마디로 낭만주의자였다.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된. 여느 낭만주의자들처럼,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자기 자신의 안전에 대해선 완전히 무관심이었다.

그가 잠시 알바를 했던 식당의 주인은 에버렛이 절벽을 타는 모험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내 생전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라고 말하기도.

에버렛은 신체적인 위험과 고통을 즐기는 편이었다.

한번은 야생에서 덩굴 독에 감염이 되서 일주일을 앓아 누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는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독으로 인해 몸에서 분비물이 쏟아져 나오자 개미떼와 파리떼가 잔뜩 모여 들어 고통을 배가시켰다. 일주일 동안 그는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사경을 헤맸는데도 그는 오히려 이를 '철학적인 순간'으로 묘사했다. 그는 매번 덩굴 독에 감염되면서도 그 지역을 떠나지도 않았다. 

크리스 맥캔들리스와 마찬가지로 에버렛은 야생의 가명을 썼다. 니모(Nemo). 해저 2만리의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 가명이 1934년 11월 Davis Gulch의 나바호 모래바위에 새겨진 것이 발견됐는데, 그 뒤로 에버렛은 영영 세상으로부터 사라졌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는 1934년 아무 이유없이 Davis Gulch로 모험을 떠났다. 부모에게 "한두달 연락이 안될 것이다"라는 편지와, 그리고 모래바위에 새겨진 "Nemo"라는 닉네임만 남긴채 그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Gulch 지역의 목동 캠프. 이곳에서 그는 이틀밤을 자고 야생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가족과 경찰이 이곳을 시작으로 주변 수십KM를 오랜 세월 샅샅이 수색했으나, 에버렛의 시체는커녕 그의 옷가지 물품 어느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직 그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끌고 갔던 당나귀 두마리가 초원 위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발견됐을 뿐이었다.

오늘날까지 에버렛의 최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왜 당나귀를 두고 떠났는지, 어째서 그렇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럴 듯한 추론은 정리해 보자면...

1. 절벽을 타다가 떨어져 죽었다: 에버렛는 절벽을 타는 것을 좋아했고 이 지역엔 모래바위가 많아 바위가 부서지면서 떨어져 죽었을 가능성. 그러나 이 경우 시체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2. 살해 당했다: 감정 싸움, 혹은 절도 때문에 주변의 목동, 혹은 부랑자들에게 살해돼 물품을 묻히고 사체는 강에 버려졌을 가능성. 상당히 가능성은 높으나 당나귀는 왜 그대로 두었는지 이해 불능.

3. 강을 건너다 빠져 죽었다: 당나귀를 두고 강을 건너려다 그대로 익사. 자신의 수영 실력을 과신한 덕. 이 역시 매우 가능성이 높으나 과연 그많은 장비와 함께 익사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

에버렛은 60년대까지 미국인들에게 화제거리였다. 60년대 에버렛이 살아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괴담이 떠돌 정도 였다. 당시 괴담에 따르면 에버렛은, 마치 해저2만리의 니모 선장처럼,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나바호 원주민 여성과 결혼해 최소 한명을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고.


에버렛과 그의 교통수단. 그는 야생을 탐험할 때 나귀를 즐겨 이용했다. 그의 최후를 목격한 것도 결국 그의 나귀였을듯.


어쨌거나 완결됐으니 전편은 다음 링크를 타고 가서 보세요...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1편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2편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3편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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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와 한국 국민성에 대한 찌질한 오해들
2008/06/19 오후 6:03 | 난잡일기

지난번 이탈리아와 한국인의 진짜 국민성 비교 에서도 열렬히 주장했지만,

이태리와 한국의 국민성은 존나 극과 극이다. (그때 그 글은 그냥 웃자고 쓴 글이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말이지.)

이태리와 한국 애들 국민성이 비슷하다고 깩깩대며 웃고 자빠진 놈들의 주장은 이렇다.

- 다혈질에 열정적.
- 술 처먹고 행패 부리는데 능하다.
- 남한테 말 걸기 좋아한다.
- 질서 더럽게 안 지키고 제멋대로.

그외 몇가지 더 있는데 다 위 얘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둘다 그냥 다혈질이면서 지저분하다는 거다. 사는 꼬락서니가.

난 한국이 언제 이태리 스페인 그리스 애들처럼 질서 안 지켰는지 기억이 없다. 질서를 안 지키는 건 살기 힘든 나라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한국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등 시민 일본 애들이 전후 시절 쫄쫄 굶을 때도 그렇게 질서를 빡세게 지켰을 거 같냐는거지.

솔직히 다혈질에 열정적인 것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일부 고려대 학생들이 대학가 등에서 행패 부린 거 때문에 그런 인상이 있긴 한데, 전체적으로 난 한국이 뭐 그렇게 다혈질에 열정적인지도 잘 모르겠다. TV에서 보는 롯데랑 기아 야구 팬들이 다혈질에 열정의 전부인데, 그런 광경 없는 나라도 있을라나?

이태리의 국민성에 비할 곳은 기후나 사는 조건이 비슷한 스페인 그리스 뿐이란 거다. 왜 이역만리 떨어진 엄한 우리나라를 어거지로 갖다 붙여 비슷하다고 우기는지 알 수가 없다.


이태리는 한국과 비슷하긴커녕 상극이다. 것도 아주 더럽게.

1. 다른 사람 눈치를 잘 안 본다.
그래서 이태리 애들이 질서를 잘 안지키는 거다. 남 눈치 안보니까. 이태리엔 40대가 되서도 부모님에 얹혀 사는 남자도 많다. (돈은 많이 버는데도 말이지.) 남 눈치 안 봐서 그렇다. 그 나이에 부모에게 얹혀 살면 쪽팔리지 않냐고 미국의 60미니츠 앵커가 집중 취재한 적도 있었다. 한국은 안 그렇다. 집, 학교, 교육, 옷, 음식... 남 눈치 보느라 너무 많은 걸 희생한다. 물론 (이태리에 비하면) 질서도 잘 지키는 편이고.

2. 다른 사람에게 잘 엉기긴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안한다.
솔직히 자기 인생과 관련없는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는거 같은데 말이지. "그렇게 살지 말라"는 입버릇 있는 나라가 또 있던가?

3. 남의 생각과 사생활에 간섭 안한다.
최근에 주한 외국인이 쓴 기사 봤는데 양키와 연애하는 한국 여자 보면 따라와서 행패 놓는 미친놈도 있더다만. 허허허. 그 미친놈은 극히 일부라지만 인터넷만 봐도 지가 좋아했던 영화 싫다고만 해도 쫓아와 지랄 행패 놓는 인간 졸라 많다. 한국 인터넷에선 싫은 걸 싫다고 말할 권리도 없어 보일 정도.

4. 인간성, 의리 잘 안 따진다.
한국처럼 인간성 더럽게 따지는 나라가 또 있으려나? 나때까지만 해도 "모난 놈이 정 맞는다"는 말이 한국 교육의 모토였다. 조직에 순응하며 둥글둥글 하게 살지 않으면 쥐잡듯이 잡았다. (아마도 학생 데모 때문이었던 듯.) 이게 현재는 '인간성'이란 단어로 포장되서 어디에나 족쇄로 작용한다. 연예인 예술가들 '인간성' 좀 아니다 싶으면 죽어라 밟는다. 실력이고 창의성이고 장래성이고 연기력이고 가창력이고 뭐고 없다. 한국 문화 예술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인간성부터 갖춰야 한다. 다들 왜 이렇게 TV만 틀면 연기 안되고 노래 안되는 놈들이 나와 설치는지 한탄하고 자빠졌는데, 다 니들이 그렇게 만든거다. 인간성 인간성 타령 하다보니 그런 무능한 놈들만 발탁이 되는거지. 문화 예술계만 그런가? 스포츠계는 더 하지. 축구하기 전에 인간 먼저 되라, 야구하기 전에 인간 먼저 되라... 어쩌고 저쩌고.


국민성 어쩌고만 하면 지랄발작하는 내가 왜 갑자기 국민성 타령하고 자빠졌는지 웃기지?

생각을 해보자. 왜 이태리 애들은 그렇게 명품을 많이 만드는데, 한국 명품 브랜드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지. 왜 이태리 애들 중엔 그렇게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은데 한국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지. (세계 시장에 실력으로 뿌리 내린 한국 예술가는 솔직히 정 트리오 남매하고 장영주 밖에 없는 거 같은데 말이지.)

모두 1번부터 4번까지의 이유에서 비롯된 거다. 이태리와 달리, 한국은 문화 예술이 꽃피우기 너무나 끔찍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거다.

남 인생에 감놔라배놔라하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 뭐뭐하기 전에 인간부터 되라는 대가리 빈 백수들... 이런 쓰레기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자신은 개뿔도 생산하지 못하면서 그나마 간간히 눈에 보이는 문화 예술 생산자 싹에 침이나 뱉는 오염물질로 뒤덮인 나라라는 거다.



항상 강조하지만 이런게 유전적 구조에서 비롯된 민족성은 아니라는 거다. 박정희 전두환이란 두명의 걸출한 교육자가 만들어 놓은 쓰레기 문화라는 거다.

박정희 전두환은 죽어라 욕하면서 문화의 다양성 짓밟기엔 참으로 열심인 오염물질들, 박정희 전두환의 숨은 장학생들에게 하는 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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