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과 병영상인

2010. 5. 24. 11:21카테고리 없음

       
제주여인 김만덕의 핵심 상업기지는 강진이었을 것
대하드라마 '거상 김만덕'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10년 03월 26일 (금) 09:26:44 주희춘 기자 ju@gjon.com

   
▲ 만덕기념사업회가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김만덕의 초상화. 탤런트 이미연이 김만덕 역으로 출연중이다.
강진의 상업역사 되새길 수 있는 기회... 병영상인과 맥닿을 듯
제주의 줄기찬 노력 '역사적 인물 되살리기' 성공
강진에서도 '역사 개발'하는 일 소홀함 없어야

KBS 대하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주말에 방영되고 있다. '거상 김만덕'은 지난 21일 6회 방송에서 전국기준 16.0%(AGB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의 시청률을 기록해 동시간대 시청율 1위에 올랐다.

강진의 입장에서 볼 때 2010년 초 '거상 김만덕'의 출현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거상 김만덕'은 조선시대 제주지역에서 이뤄진 상업의 역사가 드라마화 되는 최초의 시도다. 제주지역의 주된 상거래 지역은 전남의 강진과 해남등지였다. 특히 병영성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됐던 강진은 제주지역 상인들이 육지물품을 확보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거상 김만덕'은 강진을 비롯한 남부지역이 가지고 있는 상업역사의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전개될 드라마의 내용은 전적으로 제작진의 의도대로 진행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상업의 역사는 철저하게 '한양' 중심으로 이뤄졌다. 소위 한강을 주 활동무대로 삼았던 '경강상인'들의 역사다. 그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 개성상인과 만난다. 조선시대 한양을 중심으로 대규모 거래를 했던 상인들은 상업적으로 개성상인과 의주상인들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객주'나 '거상 김상옥'등을 통해 다양하게 소설화 됐고, 드라마를 통해 여러차례 소개됐다.

남쪽에서 이뤄졌던 상업은 철저히 역사에서 소외돼 왔다. 조선시대때 국제 해상무역이 철저히 봉쇄되면서 지방의 상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방은 중앙집권세력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세곡을 거두어 가는데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의 경제활동이 다양화되면서 상업 역시 다양하게 변천했다. 만덕도 그런 분류 중의 한 사람이다.

김만덕(金萬德. 1739~1812)은 제주출신의 상인이었다. 김만덕은 열두살 때 부모가 죽은 후 관청의 기생이 됐다.

23세에 양인의 신분을 되찾아 기생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털어 제주 건입포 일대에 객주(客主)를 차렸다. 그녀는 제주의 특산물을 육지에 내다 팔아 시세 차익을 남기거나 여러 객주집을 운영하면서 제주에서 거상이 됐다.

만덕은 부를 쌓아 관기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근검절약하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정조18년(서기1794) 8월 27일과 28일에 태풍이 불어닥쳐 제주에 대 기근이 닥쳤다.

김만덕은 많은 돈을 풀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해 오게하고 이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만덕 덕분에 1만8천명의 섬사람들이 생명을 구한 것으로 전해온다. 이 때문에 김만덕은 오늘날 여성 CEO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다.

김만덕의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정조임금이 제주 목사로부터 만덕의 선행을 전해 듣고 상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맹랑하게도 만덕은 임금의 상을 사양했다. 대신 바다를 건너 상경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고 싶다고 했다.

어찌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바다를 건너 상경하여 금강산을 유람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시 제주사회에서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만덕의 소원이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이유는 당시 제주사람들은 출륙금지령이 내려져 있어 육지에 나가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들은 월해금법(越海禁法)이라고 해서 바다를 건너 나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뭍의 남자와 혼인을 해서 그곳으로 옮겨가 사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만덕의 발언은 국법을 어기는 것이자 금기를 깨뜨리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 대목 때문에 김만덕은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조선시대의 봉건적 체제 하에서 강한 의지와 노력을 통해 거상(巨商)으로 거듭난 선각자로 불리우고 있다.

제작진은 '거상 김만덕'의 제작의도에 대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다. 제 2의 IMF라고 불리는 경제적 대공황 속에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현명하게 불황을 이겨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등장이다. 이 드라마는 조선 시대 최고의 여성 CEO 김만덕의 생애를 재조명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리더 상, 새로운 여성 상을 제시한다.'

'거상 김만덕'은 앞으로 다양한 재밋거리로 안방을 장악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방의 음식들과 술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호기심 많은 만덕이 약초에 관심을 가지고 약방 기생이 된 후 아녀자들을 치료해주는 과정을 통해 현명했던 선조들의 치료법과 민간요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현대인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웰빙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전개 방안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최고 관광 명소인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복안도 가지고 있다. 만덕의 삶이 제주의 아름다움을 세계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기반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역사속에 묻혀 있던 한 상인이 오늘날 제주를 새롭게 조명하고 인식하게 하는 커다란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만덕이 활동하던 시대에 바다건너 강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만덕의 객주가 있었던 건입포구는 지금의 제주시 건입동 제주항과 가까운 곳으로 뱃길로 강진과 가장 가까운 곳 중의 하나이다.

만덕이 제주에서 활발히 객주를 운영하던 무렵 병영의 전라병영성 주변에서는 상업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만덕의 사후 시기지만, 병영성은 1878년 수인산성에서 확보한 군량 1천700석을 장흥을 비롯하여 5개읍에 나누어 빌려 주었는데 이때 총 물량의 10% 선인 200석을 이자돈으로 받아 재정에 보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만덕이 태어나기 전인 1631년 기록<조선왕조 인조실록, 1631년 7월 8일자>에 따르면 조선 조정에서도 일찍부터 군인들의 상업활동을 인정하고 다만 폐단이 없도록 어느 정도 묵인하는 입장을 견지해와 관청의 무판활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었다.

만덕의 활동시대를 전후해서 전라병영성이 있는 강진현에서는 다양한 상업거래가 활성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가장 가까운 육지에서 섬의 생필품을 구입하길 희망했던 제주 상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거래처였을 것이다.

전라병영성은 지금의 전라남·북도 지역 53개 현과 6개 진(鎭)에서 전(錢), 목(木), 미(米)등이 세분화돼 16종류을 거둬 들였고, 현물 명목으로 받은 것들이 가죽, 땔감, 약재, 종이 등 39종류에 달했다. 이러한 세금은 상당량 시장에서 유통됐는데 병영상인등을 통해 제주의 만덕상단에게 팔려나갔을 것이다.

전라남·북도를 통틀어 당시 강진에 있었던 전라병영성 만큼 교역물건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역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제주의 대 육지 교역지로 목포, 여수, 고흥, 부산, 인천등이 꼽히지만 당시 목포와 여수등은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고, 부산이나 인천은 돛을 단 장사배들이 쉽게 왕래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전라병영성에서는 1512년(중종 7년)부터 제주 방어를 위해 군인을 파견 했었다. 호남원병이라고 불렸던 이들의 인원은 약 5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병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단계적으로 축소되다가 1620년(광해군 12년)에 완전히 폐지된 것으로 전해오는데 원병파견 과정에서 사람 뿐 아니라 거기에서 필요한 다양한 생필품도 오갔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제주사람들에서는 전라병영성을 쌓을 때 제주사람들이 육지(강진)으로 가서 울력을 했다는 구전이 자연스럽게 내려오고 있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아 주민들이 돌을 다루는 기술이 많았는데 이들의 재주가 성을 쌓는데 제격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역사드라마 '거상 김만덕'에 적절히 배합돼 주민 흥밋거리가 될 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서남부지역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우선적으로 시청률이 중요한 것이어서 이러한 강진의 바람들이 수용될 지는 미지수다. 강진의 상업 역사와 병영상인들이 부각 되기까지는 아직 헤쳐나가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상태다.

김만덕이란 역사적 인물과 제주 사람들의 상업활동이 드라마로 탄생하기 까지 그동안 제주도민들은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다.

제주도에서는 지난 2003년 김만덕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만덕의 나눔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상임공동대표가 요즘 '거상 김만덕'에 출연중인 탤런트 고두심씨다. 만덕분으로 나오는 인기탤런트 이미연씨는 고두심씨의 권유로 드라마 촬영을 결행했다고 한다.

또 기념사업회를 통해 만덕관련 다양한 저술들이 나오고 있고, 수시로 전국적인 행사를 열어 만덕의 위상을 제고해 왔다. 덕분에 김만덕은 지난해 5만원권 지폐의 인물을 결정할 때 신사임당과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김만덕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떠오르기까지 역사속에 묻혀있는 인물을 발굴하기 위한 현지인들의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김만덕을 복원해 전국적인 대중화에 성공한 제주도의 사례는 현지인들의 참여속에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끊임없이 조명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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