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당분간 서로 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쪽도 자기들의 형편이 좋을 때에는 결코 이편과는 얽히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지라 웬만하면 관계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법도 싶건만... 묘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원하는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가 되면 이쪽에 대고 준엄한 훈계를 하곤 하면서 서로를 피곤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특히 선거가 가까워지면 훈계를 넘어 욕설이나 협박을 동반한 강요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는 이들조차 발견할 수 있다-마치 철새가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그 규칙성 하나는 경이로운 것이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이쪽 사람들이 겪는 평소의 어려움이나 자기들이 이쪽 사람들에게 행한 해코지 같은 것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으니 세상살기 참 편한 스타일들이구나 싶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자칭 진보라는 한국판 자유주의자(우파)들이 진보신당같은 이른바 좌파진영을 훈계하면서 항상 꺼내오는 식상한 레퍼토리는 '아무튼 한나라당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즉 군사정권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한국형 극우세력의 정권이 가져오는 해악에 대해서는 좌파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보니, 사실 그 지점까지만 놓고 보면 주장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힘을 보태세요'라고 나온다면 그나마 '니들이 해도 별차이 없어요'라고 공손하게 응대해줄 마음이라도 들지만, 되도않는 정치공학을 들먹이며 <한나라당이 무너져야 좌파도 살길이 나온다(대체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그러한 작용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다만 추상 차원에서 '한나라당이 힘들어야 너희가 나아져'를 주문처럼 읊조릴 뿐)>는 식의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까지 하는 몇몇 논자들을 볼짝시면 헛웃음이 나와 키보드에서 손이 미끄러질 지경이다.
많은 자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좌파가 바라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 어째서 좌파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동류'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해명한 것이다. 분석은 통계적인 것에서부터 자잘한 정책에 이른것까지 폭넓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장 떠오르는 예만 들더라도 여러가지다. 노무현정권은 과반수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가보안법조차 손대지 못했다.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 지난 10여년 사이의 일로, 사람들의 모든 꿈과 희망을 '부자되세요'로 압축시켜낸 것이 노무현과 김대중 정권의 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진행하면서 쟁의행위와 관련되어 구속되는 노동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현재도 구속노동자 수 챔피언은 노무현이다(조만간 MB가 1위를 차지하겠지만). 좀 자잘하게는-얼마전에 위헌판결을 받은-집시법을 확성기사용까지 못하게 만들어 군사정권때 이상가는 악법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노무현정권이었다. 그뿐이랴, 평소에는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듯 굴던 한나라당과 손에 손잡고 미국과의 FTA를 졸속으로 체결한 것은 누구였더란 말인가. (좀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작성된 '총집편'이 있다. 레디앙에 이대근 논설위원이 기고한 글이다. 심심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회찬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서민들을 쥐에 기득권층은 고양이에 비유한다면, 한나라당은 고양이편을 드는 고양이고, 민주당은 쥐를 생각해주는 시늉은 하는 고양이인 셈'인 것이다. 그러니 차이를 강조해봤자 쥐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똑같지 않는가. 쥐 입장에서는 쥐들 자신이 직접 자기들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이정도 이야기를 하면 이쪽의 주장에 완전히 수긍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저들에게도 그렇게 나올만한 이유가 있구나'하고 생각은 할법도 한데, 이것이 또 막무가내다. 어떠한 증거를 가져와도, 통계를 사용해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가르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대통령 자리에서 책임있는 결단을 내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거나 '힘이 부족해서 그런거니 더 밀어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나 만나게 된다. 지지하는 마음이 깊어 신앙의 경지에 다다르면 무슨 영아일체領我一體의 경지에 이르기라도 하는지, 대통령의 내심까지 파악해서 '그분이 원래 그런 분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고 상상해내는 주장은 교회다니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아 귀엽기라도 하지만, 힘이 부족하다는 식의 주장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원내과반수에 대통령까지 데리고 있던 정치집단이 힘이 부족해서 필요한 만큼의 개혁을 할 수 없었다면 그놈의 개혁이란 것은 도대체 뭘 해줘야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고 그들이 좌파처럼 계급에 기반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닐진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무현 독재였단 말인가?
좀더 솔직한 이들은 앞서 서술한 수많은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만하면 충분하다' 혹은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방향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이들은 애초에 자유주의 정부의 실책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아무튼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는 한나라당이 집권한 사회보다는 훨씬 나으니 '한나라당 분쇄'야말로 만물의 근원이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매우 우습게도 한나라당이 분쇄되어야 좌파들에게도 정치적 시민권을 줄 수 있다는 투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본인들이 한나라당을 분쇄할 능력이 있는가-설령 한국의 좌파가 백프로 힘을 합쳐서 몰아주더라도 말이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결국 노무현정권의 실정하에 나온 인민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하기가 영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화술의 달인이거나 뉴타입일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사는 세상에서 '얽히지 않고'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의사소통을 위해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또다시 밝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여간 나오는 것도 없는데, 좌파 해먹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정당 혹은 정치세력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나아가야 한다. 단어는 거창하게 꺼냈지만 실은 별 것 아니다. 학창시절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라고 가르치던 우익 교과서의 프레임에서 좌파는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하다못해 공산당선언이라도 한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현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좌파의 관점을 알고 있을것이고, 그렇기때문에 '집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류의 이야기를 좌파가 얼마나 허황되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견해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맨땅에 집권해봤자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노무현정권 5년이 이미 확실하게 보여주었으니 실증적인 예가 아주 가까이에 있을 뿐 아니라, 애초에 정치권력을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좌파에게 있어서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밖에 없다. 궁극적 목표라는 것은 평등한 사회라던가 소외가 없는 세상, 기타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현재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을 말하고, 정치권력의 수권이라는 것은 그 길로 가는 도정에서 필요한 하나의-물론 대단히 중요한-도구로 취급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원칙과 이상, 추구하는 바를 포기하고 권력을 잡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된다면 그 좌파정당의 존재의의는 없다. 아니, 그 당이 '좌파가 아니게'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러한 예를 역사에서 수차례 보아왔다. 집권당이었던 독일 사민당이 결국 '자국의 노동자를 위해' 1차 세계대전에 찬성표를 던졌던 역사적 사실은 원칙과 이상을 포기하고 권력만을 추구하는 좌파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한 교훈을 잊지 않았기에, 좌파는 설령 그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기득권층의 이익이 아닌 소외받는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그 본래의 원칙에 충실한 가운데에서만 상황에 따른 전술적 유연성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단순한 차이의 확인을 넘어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이유'가 들어있다. 철학과 지향점, 이상과 원칙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집권만 하면 되고, 그 다음의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배를 째고서도 또다시 '정치세력의 목표는 권력의 장악'이라는 단순도식에 갇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혹은 애시당초 권력을 창출해서 하고 싶었던 일-목표 자체가 그정도에 불과했던 정치세력에게 있어 위와 같은 사고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선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좌파는 현재 한국의 민주당류 우파들이 취하고 있는 방식으로는 그어떤 의미있는 사회변혁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어차피 망할 장사를 왜 동업-저쪽 이들의 요구는 정확히는 동업도 아니고 그냥 몸대주기에 불과하지만-으로 시작하느냐 하는 이야기가 된다.
고맙게도 자유주의자 가운데 일부는 좌파의 생존을 걱정해주시면서 정치공학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돈안드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지만, 좌파의 관점에서 그것은 살아남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죽는 길이다. 이미 집권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실패를 통해 결국 현재의 MB정권을 낳은 과오를 반성하지는 않고, 어떻게든 한나라당만 막으면 된다는 식을 반복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생존한다는 빈곤한 철학에서 나오는 발상일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좌파가 그 대열에 합류하여 정권을 창출하게 된다해도 반드시 실패하게 될 우파의 책임마저 같이 뒤집어쓰고 동반해서 망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이 현상 또한 유럽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그다지 같이 한 것이 없는 한국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실패가 곧 진보정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많은 이들은 자유주의자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그리고 조중동이 보도하는대로 민주당과 진보신당을 한꺼번에 '진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 책임을 추궁받아도 시원찮을 이들이 당당하게 하는 요구나 훈계를 보고있을라치면 저 낯의 두께를 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좌파의 생존의 길은 좌파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의 좌파가 성장해 온 여러가지 모델을 참고로 한국적 상황에 맞게 한국의 좌파가 직접 만들어 나갈 길이다. 지금의 그 방법은 정체된 노동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고,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소외된 집단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된, 사회에서 발언할 수 있는 집단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도정에서 지탱가능하고 생태적인 사회구조의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그렇게 해서 생존하고 성공하는 것이 비로소 좌파의 성공이 된다. 애초에 2004년 총선을 전후한 시기의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그 이전부터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실천을 축적해왔고(상가임대차보호법과 관련된 영세상가 지원 활동이나 학교급식조례제정을 위한 그 오랜 생활현장에서의 운동들), 그 성과가 1인2표제라는 선거제도의 변화-이 제도변화 역시 좌파가 이끌어낸 성과라는 것은 다른 글을 통해서 서술한 바 있다-로 인하여 사표심리를 피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분출된 것이 아니었는가 말이다(그것을 읽지 못하고 단순히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수세에 몰리자 좌파도 반사적 이익을 챙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인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다면 이제 김대중같은 카리스마적 보스도 떠났고, 노무현같은 지략가도 없는 현재의 자유주의자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본다). 이처럼 한국의 좌파는 우파의 도움없이 철저히 혼자서,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왔고, 지금 다시 재편기를 맞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에 있을 뿐이다. 당신들의 우려대로 '그대로라면 말라죽을' 것이었다면 이미 진작 92년께의 한국노동당시절에 한국의 좌파는 다 말라죽어 사라졌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갈 길이 서로 다르니, 이제 무려 다음 대권을 생각하시는 높은 위치에 계신 자유주의자님들 께옵서는 하찮은 좌파에 대한 관심을 이제 그만 끊으시고 본인들 할 일이나 잘하시기를 바란다. 출범초기부터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레임덕에 가까운 국정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정권임에도, 그 대통령 하나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서 식물야당 노릇이나 하고있는 제1야당, 혹은 그 야당과의 관계를 대차게 끊지도 못하면서 그 낡은 이미지는 떨쳐내고 싶어하는 비슷한 부류의 정치인들은 애초에 좌파와는 걷는 길도 다를 뿐더러 사실 좌파에게 이러쿵 저러쿵 훈수나 두고 있을 처지도 못되지 않는가.
아, 생각해보니 나도 둘 훈수가 하나 있다. 이왕에 차기 집권이 중요한 과제이고, 이명박보다는 나은 인물이 대선에서 당선되는 것이 지상과제라면 박근혜를 영입해서 지지하는 것은 어떠할는지? 지금도 박근혜는 여당 속 야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유일한 견제세력으로 자리하고 있고, 적어도 발언하는 것들만 가지고 본다면 현 대통령보다는 진보적인 것 같다(당신들 말대로라면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거기에 당선된 후에 실망을 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니 영아일체의 경지로 다가서서 '그분의 고뇌를 이해'해야만 할 상황이 오게 될 비극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어차피 당선가능성도 현재 민주당 계열의 어떤 후보보다도 높고, 생각건대 민주당과 진보신당의 차이보다는 민주당과 박근혜의 차이가 훨씬 적은듯 하니 여러모로 적절한 조합이 될 것 같다. 이정도면 생각보다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괜히 열심히 하고 있는 좌파들에게 먹히지도 않을 훈계를 할 시간에 그 열정을 박근혜에게 쏟아 엠비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의 창출에 나서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노무현도 정몽준을 잡아서 당선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것은 어쩌면 꽤 쓸만한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싫다면 진정성을 가지고 인민의 피부에 와닿는 사회구조개혁을 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길 바란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이나 현재의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일 제도적 지원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서민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든 자신들의 과오를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성의있는 노력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좋은 일자리는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복지국가 마인드를 가지고 정치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진지한 노력도 없이 그저 진보정당만 철저히 배제하는 중선거구제 개편 같은것에나 발벗고 나서고 있는 주제에-오히려 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은 장기적으로 독일식 선거제도로 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되지도 않는 훈계나 하면서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패악을 부리는 것은 지나치게 경우없는 행동이라는 정도의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
어찌되었든, 자칭 진보라는 한국판 자유주의자(우파)들이 진보신당같은 이른바 좌파진영을 훈계하면서 항상 꺼내오는 식상한 레퍼토리는 '아무튼 한나라당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즉 군사정권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한국형 극우세력의 정권이 가져오는 해악에 대해서는 좌파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보니, 사실 그 지점까지만 놓고 보면 주장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힘을 보태세요'라고 나온다면 그나마 '니들이 해도 별차이 없어요'라고 공손하게 응대해줄 마음이라도 들지만, 되도않는 정치공학을 들먹이며 <한나라당이 무너져야 좌파도 살길이 나온다(대체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그러한 작용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다만 추상 차원에서 '한나라당이 힘들어야 너희가 나아져'를 주문처럼 읊조릴 뿐)>는 식의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까지 하는 몇몇 논자들을 볼짝시면 헛웃음이 나와 키보드에서 손이 미끄러질 지경이다.
많은 자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좌파가 바라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 어째서 좌파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동류'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해명한 것이다. 분석은 통계적인 것에서부터 자잘한 정책에 이른것까지 폭넓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장 떠오르는 예만 들더라도 여러가지다. 노무현정권은 과반수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가보안법조차 손대지 못했다.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 지난 10여년 사이의 일로, 사람들의 모든 꿈과 희망을 '부자되세요'로 압축시켜낸 것이 노무현과 김대중 정권의 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진행하면서 쟁의행위와 관련되어 구속되는 노동자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현재도 구속노동자 수 챔피언은 노무현이다(조만간 MB가 1위를 차지하겠지만). 좀 자잘하게는-얼마전에 위헌판결을 받은-집시법을 확성기사용까지 못하게 만들어 군사정권때 이상가는 악법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노무현정권이었다. 그뿐이랴, 평소에는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듯 굴던 한나라당과 손에 손잡고 미국과의 FTA를 졸속으로 체결한 것은 누구였더란 말인가. (좀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작성된 '총집편'이 있다. 레디앙에 이대근 논설위원이 기고한 글이다. 심심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회찬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서민들을 쥐에 기득권층은 고양이에 비유한다면, 한나라당은 고양이편을 드는 고양이고, 민주당은 쥐를 생각해주는 시늉은 하는 고양이인 셈'인 것이다. 그러니 차이를 강조해봤자 쥐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똑같지 않는가. 쥐 입장에서는 쥐들 자신이 직접 자기들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이정도 이야기를 하면 이쪽의 주장에 완전히 수긍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저들에게도 그렇게 나올만한 이유가 있구나'하고 생각은 할법도 한데, 이것이 또 막무가내다. 어떠한 증거를 가져와도, 통계를 사용해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가르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대통령 자리에서 책임있는 결단을 내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거나 '힘이 부족해서 그런거니 더 밀어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나 만나게 된다. 지지하는 마음이 깊어 신앙의 경지에 다다르면 무슨 영아일체領我一體의 경지에 이르기라도 하는지, 대통령의 내심까지 파악해서 '그분이 원래 그런 분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고 상상해내는 주장은 교회다니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아 귀엽기라도 하지만, 힘이 부족하다는 식의 주장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원내과반수에 대통령까지 데리고 있던 정치집단이 힘이 부족해서 필요한 만큼의 개혁을 할 수 없었다면 그놈의 개혁이란 것은 도대체 뭘 해줘야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고 그들이 좌파처럼 계급에 기반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닐진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무현 독재였단 말인가?
좀더 솔직한 이들은 앞서 서술한 수많은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만하면 충분하다' 혹은 '이것이 우리가 원했던 방향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이들은 애초에 자유주의 정부의 실책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아무튼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는 한나라당이 집권한 사회보다는 훨씬 나으니 '한나라당 분쇄'야말로 만물의 근원이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매우 우습게도 한나라당이 분쇄되어야 좌파들에게도 정치적 시민권을 줄 수 있다는 투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본인들이 한나라당을 분쇄할 능력이 있는가-설령 한국의 좌파가 백프로 힘을 합쳐서 몰아주더라도 말이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결국 노무현정권의 실정하에 나온 인민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하기가 영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화술의 달인이거나 뉴타입일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사는 세상에서 '얽히지 않고'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의사소통을 위해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또다시 밝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여간 나오는 것도 없는데, 좌파 해먹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정당 혹은 정치세력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나아가야 한다. 단어는 거창하게 꺼냈지만 실은 별 것 아니다. 학창시절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라고 가르치던 우익 교과서의 프레임에서 좌파는 벗어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하다못해 공산당선언이라도 한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현대의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좌파의 관점을 알고 있을것이고, 그렇기때문에 '집권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류의 이야기를 좌파가 얼마나 허황되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견해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맨땅에 집권해봤자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노무현정권 5년이 이미 확실하게 보여주었으니 실증적인 예가 아주 가까이에 있을 뿐 아니라, 애초에 정치권력을 확보한다는 것 자체가 좌파에게 있어서는 궁극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밖에 없다. 궁극적 목표라는 것은 평등한 사회라던가 소외가 없는 세상, 기타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현재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을 말하고, 정치권력의 수권이라는 것은 그 길로 가는 도정에서 필요한 하나의-물론 대단히 중요한-도구로 취급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원칙과 이상, 추구하는 바를 포기하고 권력을 잡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된다면 그 좌파정당의 존재의의는 없다. 아니, 그 당이 '좌파가 아니게'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러한 예를 역사에서 수차례 보아왔다. 집권당이었던 독일 사민당이 결국 '자국의 노동자를 위해' 1차 세계대전에 찬성표를 던졌던 역사적 사실은 원칙과 이상을 포기하고 권력만을 추구하는 좌파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한 교훈을 잊지 않았기에, 좌파는 설령 그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기득권층의 이익이 아닌 소외받는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그 본래의 원칙에 충실한 가운데에서만 상황에 따른 전술적 유연성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단순한 차이의 확인을 넘어선 '결코 만날 수 없는 이유'가 들어있다. 철학과 지향점, 이상과 원칙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집권만 하면 되고, 그 다음의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배를 째고서도 또다시 '정치세력의 목표는 권력의 장악'이라는 단순도식에 갇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혹은 애시당초 권력을 창출해서 하고 싶었던 일-목표 자체가 그정도에 불과했던 정치세력에게 있어 위와 같은 사고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선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좌파는 현재 한국의 민주당류 우파들이 취하고 있는 방식으로는 그어떤 의미있는 사회변혁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어차피 망할 장사를 왜 동업-저쪽 이들의 요구는 정확히는 동업도 아니고 그냥 몸대주기에 불과하지만-으로 시작하느냐 하는 이야기가 된다.
고맙게도 자유주의자 가운데 일부는 좌파의 생존을 걱정해주시면서 정치공학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돈안드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지만, 좌파의 관점에서 그것은 살아남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죽는 길이다. 이미 집권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실패를 통해 결국 현재의 MB정권을 낳은 과오를 반성하지는 않고, 어떻게든 한나라당만 막으면 된다는 식을 반복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생존한다는 빈곤한 철학에서 나오는 발상일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좌파가 그 대열에 합류하여 정권을 창출하게 된다해도 반드시 실패하게 될 우파의 책임마저 같이 뒤집어쓰고 동반해서 망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이 현상 또한 유럽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 그다지 같이 한 것이 없는 한국에서도 민주당 정권의 실패가 곧 진보정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많은 이들은 자유주의자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그리고 조중동이 보도하는대로 민주당과 진보신당을 한꺼번에 '진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 책임을 추궁받아도 시원찮을 이들이 당당하게 하는 요구나 훈계를 보고있을라치면 저 낯의 두께를 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좌파의 생존의 길은 좌파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의 좌파가 성장해 온 여러가지 모델을 참고로 한국적 상황에 맞게 한국의 좌파가 직접 만들어 나갈 길이다. 지금의 그 방법은 정체된 노동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고,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소외된 집단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된, 사회에서 발언할 수 있는 집단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도정에서 지탱가능하고 생태적인 사회구조의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그렇게 해서 생존하고 성공하는 것이 비로소 좌파의 성공이 된다. 애초에 2004년 총선을 전후한 시기의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그 이전부터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실천을 축적해왔고(상가임대차보호법과 관련된 영세상가 지원 활동이나 학교급식조례제정을 위한 그 오랜 생활현장에서의 운동들), 그 성과가 1인2표제라는 선거제도의 변화-이 제도변화 역시 좌파가 이끌어낸 성과라는 것은 다른 글을 통해서 서술한 바 있다-로 인하여 사표심리를 피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분출된 것이 아니었는가 말이다(그것을 읽지 못하고 단순히 '탄핵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수세에 몰리자 좌파도 반사적 이익을 챙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인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다면 이제 김대중같은 카리스마적 보스도 떠났고, 노무현같은 지략가도 없는 현재의 자유주의자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본다). 이처럼 한국의 좌파는 우파의 도움없이 철저히 혼자서,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왔고, 지금 다시 재편기를 맞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에 있을 뿐이다. 당신들의 우려대로 '그대로라면 말라죽을' 것이었다면 이미 진작 92년께의 한국노동당시절에 한국의 좌파는 다 말라죽어 사라졌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갈 길이 서로 다르니, 이제 무려 다음 대권을 생각하시는 높은 위치에 계신 자유주의자님들 께옵서는 하찮은 좌파에 대한 관심을 이제 그만 끊으시고 본인들 할 일이나 잘하시기를 바란다. 출범초기부터 전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레임덕에 가까운 국정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정권임에도, 그 대통령 하나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서 식물야당 노릇이나 하고있는 제1야당, 혹은 그 야당과의 관계를 대차게 끊지도 못하면서 그 낡은 이미지는 떨쳐내고 싶어하는 비슷한 부류의 정치인들은 애초에 좌파와는 걷는 길도 다를 뿐더러 사실 좌파에게 이러쿵 저러쿵 훈수나 두고 있을 처지도 못되지 않는가.
아, 생각해보니 나도 둘 훈수가 하나 있다. 이왕에 차기 집권이 중요한 과제이고, 이명박보다는 나은 인물이 대선에서 당선되는 것이 지상과제라면 박근혜를 영입해서 지지하는 것은 어떠할는지? 지금도 박근혜는 여당 속 야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유일한 견제세력으로 자리하고 있고, 적어도 발언하는 것들만 가지고 본다면 현 대통령보다는 진보적인 것 같다(당신들 말대로라면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거기에 당선된 후에 실망을 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니 영아일체의 경지로 다가서서 '그분의 고뇌를 이해'해야만 할 상황이 오게 될 비극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어차피 당선가능성도 현재 민주당 계열의 어떤 후보보다도 높고, 생각건대 민주당과 진보신당의 차이보다는 민주당과 박근혜의 차이가 훨씬 적은듯 하니 여러모로 적절한 조합이 될 것 같다. 이정도면 생각보다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괜히 열심히 하고 있는 좌파들에게 먹히지도 않을 훈계를 할 시간에 그 열정을 박근혜에게 쏟아 엠비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의 창출에 나서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노무현도 정몽준을 잡아서 당선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것은 어쩌면 꽤 쓸만한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싫다면 진정성을 가지고 인민의 피부에 와닿는 사회구조개혁을 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길 바란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이나 현재의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일 제도적 지원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서민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든 자신들의 과오를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성의있는 노력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좋은 일자리는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복지국가 마인드를 가지고 정치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진지한 노력도 없이 그저 진보정당만 철저히 배제하는 중선거구제 개편 같은것에나 발벗고 나서고 있는 주제에-오히려 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은 장기적으로 독일식 선거제도로 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되지도 않는 훈계나 하면서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패악을 부리는 것은 지나치게 경우없는 행동이라는 정도의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