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실패, 박대농령 책임

2014. 5. 13. 21:18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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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2 19:10수정 : 2014.05.12 21:16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무슨 큰일만 나며 대통령 탓하는 것은 독재국가나 사회가 미분화된 후진국 현상이다. 그러나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서 농성을 한 것은 그들이 ‘미개 국민’이어서가 아니라, 이 정부가 모든 일을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과거부터 내려온 적폐”인 점이 있다. 그러나 300여명을 수장시킨 구조 과정에서의 실패는 다르다.

전쟁이 나면 전투 현장 밖에서 민간인과 군인이 여러 이유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포로나 민간인들이 군인들에게 대량으로 집단적으로 살해되는 일은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에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해당 군대 조직의 운영 논리와 지휘관의 지휘 방침에 의해 발생한다. 어떤 지휘관도 민간인을 죽이라고 명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과를 올리라”고 명령하면서 전쟁 규범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군대의 궁극적인 존립 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것을 부하들에게 강조하지 않으며, 책임의식이나 인권존중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충성파들만 발탁하여 그들하고만 소통한다면, 그 군대는 국민에게 난폭한 흉기로 돌변한다.

즉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군 지휘관이 ‘부작위’, 즉 작전시 민간인 피해를 사전에 막거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거나, 그 일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그 문제에 대한 개입을 포기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 특히 부하들이 지휘관의 의중, 즉 ‘부작위’의 신호를 보고 움직이는 독재국가나 군대와 같은 조직에서 부하들의 모든 행동은 지휘관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의 책임을 가진 해경은 군대와 같은 조직이다.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행동 중 그 어느 하나도 현장 지휘관의 독자적인 판단에서 나올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들의 지휘부 임명, 조직운영, 평소의 훈련, 사기, 사명감, 책임의식 등 대부분은 이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 선택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87년 이후 그 어느 정부보다도 군대식으로 정부를 운영해왔다. 나는 정부의 장관이나 여당의 어느 한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침에 이견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장관들은 오직 받아쓰기만 했고, 정부 모든 기관은 물론 민간 언론기관도 모두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았다. 권한이 청와대로 집중되니까 정부의 어떤 부서도 독자적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최고위층은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면 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의전과 보고, 자기 조직 보존에만 치중했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권 행사의 책임, 국민안전보다는 ‘정권 안전’ 때문에 재난구조 지휘를 포기한 책임, 국가의 기본 책무를 포기하고 사기업의 이해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맡기고 감독하지 않은 책임, 언론을 정부 홍보수단으로 만들어 긴급 상황에서 정확한 보고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 책임, 진정성 있는 노력보다는 이미지와 연출에 치중하여 유족과 국민의 상처를 더 깊게 한 책임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

권한과 정보, 검찰권까지 독점한 정부라면 스스로 책임도 져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뭉개고서 말단 지휘관만 희생양 만들면, 이 국가는 야만의 천지가 될 것이다. 지금이 그렇지 않은가? 해경의 ‘멘붕 상태’는 박근혜 정부의 ‘부작위’의 결과다. 이 사고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이지만, 구조 실패의 책임을 건너뛰고서 시스템 운운할 수는 없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