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비콘(25) "모든 길은 신(新)실크로드로 통한다 !"

2015. 4. 13. 04:50경영과 경제

중비콘(25) "모든 길은 신(新)실크로드로 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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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초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중국 정부가 주최한 이따이이루(一帶一路)’ 세미나에 초청 받아 갔더랬지요. 30여개 나라에서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 회의였습니다. ‘이따이이루의 속살을 살폈습니다.

 

중국은 지금 그들만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고 있다

 

회의 내내 든 생각입니다. 그 동안 중국의 성장은 서방에 기댄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설정해 놓은 세계 자유무역 체제 덕에 수출을 늘릴 수 있었고,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으로 컸습니다. 2001WTO가입이 그걸 가능케 했고요. 중국이 서방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입니다.

 

20세기 영국으로부터 패권을 넘겨받을 때, 미국은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 최대의 채권자이자 제조업 강국이었습니다. 미국은 유엔을 창설하고, 세계은행·IMF 등 국제 금융 조직을 만들고, 무역자유화를 추진했습니다. 미국 경제 패권의 주축이지요. ‘이따이이루세미나를 보며 중국이 지금 그 길을 걸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시아의 일극(一極)을 꿈꾸는 중국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세미나에 온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최근 저희 신문 '서소문 포럼'과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가 발행하는 친디아플러스에 쓴 칼럼을 정리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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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부의 해안도시 장쑤(江蘇)성 롄윈강(連雲港). 지난달 26일 시() 당국자들이 대거 참가하는 정기 화물 철도노선 개통 행사가 열렸다. 서쪽 종착역은 중앙아시아의 경제 중심지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출발 신호와 함께 컨테이너 106개를 실은 기차가 달려나갔다. 기차는 시안(西安), 우루무치 등 중국 대륙을 횡단한 뒤 국경을 넘어 12일 후 알마티에 도착한다. 현지 언론은 "롄윈강이신실크로드 경제벨트전략의 첫 수혜 도시가 됐다며 환호했다.

 

롄윈강뿐만 아니다. 중국 전역에 이따이이루(一帶一路·신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개발 전략. 이하신실크로드 전략으로 통일)’ 열풍이 불고 있다. 중앙 공무원들은 마스터플랜을 짜느라 분주하고, 지방정부는우리가 최고 적합지라며 앞다퉈 고개를 쳐든다. 32개 성()중에서 31개 성이 이따이이루 2015년 최고 핵심 사업으로 제시했을 정도다. 심지어 지린(吉林)성도 '우리가 이따이이루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길은 신실크로드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은 왜 2000년이 넘은 고대 실크로드를 현재에 되살리려 하는 것일까?

중국 읽기의 또 다른 과제다.

 

소위 말하는경제외교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외교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정치·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경제적 목적과 정치·외교적 의도가 엉켜 있다는 얘기다. 신실크로드 전략은 그 전형이다. 경제적 목적과 정치·외교적 의도가 혼재해 있다. 그걸 해체해보자. 그래야 정확한 내용이 보인다.

 

신실크로드 전략은 ‘EBC(Everyone But China·중국을 제외한 모두)’라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중국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미국은 태평양 지역 모든 국가에 문을 열었지만, 중국의 진입은 차단하고 있다. 중국경제 포위 전략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나온 대응책이 바로 신실크로드 전략이었다.

 

길은 정해졌다. 태평양 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미국의 힘을 피해 서쪽으로(신실크로드경제벨트), 또 남쪽으로(21세기해양실크로드) 달려가고자 한다.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남쪽으로는 동남아·서남아·아프리카 동부 등을 지나 유럽에 이른다. 60여 국가가 대상이란다. 굳이 표현하자면 ‘EBA(Everyone But America)’ ,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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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전문가들은 중국의 패권 의도를 경계한다주변국에 대한 정치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얘기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 균형(Balancing)전략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한국·대만·필리핀·호주·인도, 심지어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친미(親美)적 성향이 강한 나라가 중국을 동남쪽에서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이 포위를 뚫기 위해 중국은 서쪽으로, 또 남쪽 바다로 나온다. 동쪽에서 국민당에 쫓긴 공산당이 서쪽으로 대 탈출을 감행했던 대장정을 연상시킨다.  

 

2008년 이후 중국의 경제외교는달러 헤게모니로부터의 독립에 맞춰져 왔다. ‘위안화 국제화’가 그랬다. 중국은 EU·영국·브라질·한국 등과 위안화 통화스와프 협약을 맺었다. 그 규모가 7400억 위안( 1200억 달러)에 이른다. 영국·호주·한국 등에는 위안화 직거래 시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지난 해 합의에 이른 500억 달러 규모의 BRICS 신개발은행(NDB)도 중국의 작품이다. ()달러라는 정치경제적 철학은 신실크로드 전략에도 이어지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이따이이루'에서도 중국이 선택한 전략 수단은 정치·군사적 방법이 아닌 경제다. 이 지역 개발도상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그 기반이 될 SOC(사회간접자본) 건설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속셈을 철저히 감추고, 오로지 경제만을 드러낸다. ‘경제협력을 통해 주변국의 성장을 돕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그 명분에 아시아 패권을 위한 노림수라는 서방의 주장은 힘을 잃는다.

 

중국의 계획은 대담하다. 그들은 지금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지도를 펴 놓고 어떤 도로를 잇고, 어디에 고속철도를 건설할지, 어떤 통신선을 연결시킬지 등을 구상하고 있다. 총알은 충분하다. 400억 달러의 신실크로드 펀드를 조성하고, AIIB(아시아기초시설투자은행) 설립을 위해 500억 달러를 내놨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중국은 더 이상 해외에서 번 달러를 미국 채권에 넣지 않고, 내 스탠더드 만드는데 쓰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방정부가 고개를 쳐들고 내가 이따이이루 추진의 최 적격지요라고 나서는 것도 이 돈을 따내기 위해서다
 
국내 사정을 보면 이 프로젝트 속의 경제적 목표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너무 많다는 것이다. 성장 속도가 누그러지면서 지나친 투자로 인한 과잉 설비, 과잉 생산, 과잉 공급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다.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는 버블이 터질 위험이 크다. 4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은 지나치게 많다. ‘과잉시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을 것인가가 중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다. 그 출구로 찾은 게 바로 신실크로드 주변이었다. 중국의 상품과 돈을 서쪽, 남쪽 해외로 분산시키자는 뜻이다. 주변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면 시장이 생길 테고, 결국 중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중국의 논리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중국은 한국의 참여를 원한다. AIIB에 가입하라는 요구다. 우리는 멈짓거리며 주저한다. 중국의 아시아 패권 전략을 경계하는 미국의 입장도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만 사로잡힌다면 경제적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어떠한 서방의 논리도경제협력을 통해 주변 국가의 성장을 돕겠다는 중국의 대의명분을 이길 수 없다. 사회간접자본 투자, 무역자유화, 인문 교류 등 중국이 제시하고 있는 프로젝트 내용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기 때문이다. 대상 국가들은 중국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면서도 경제적 협력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AIIB 참가국이 이미 27개국에 이르렀다는 게 이를 보여준다. 특히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은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참여를 결정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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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를 보자. 신실크로드 전략의 핵심 대상 지역인 중동과 동남아는 우리나라의 1, 2위 건설 시장이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풀어 이 지역의 SOC 건설에 나선다면 우리에게도 기회는 온다. 중국은 동남아의 경우 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를 깔 계획이다. 간선은 그들이 건설한다고 해도, 중소 도시를 연결하는 수많은 지선(支線)은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 역 주변 개발도 마찬가지다.
 
대우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유전개발 사업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현지에서 뽑아내 중국에 판 석유는 4500억 원에 이른다. 이 회사 미얀마 매출의 90%가 넘는 수준이다. 미얀마는 중국 신실크로드 전략의 핵심 지역이다. 이곳에 인도양으로 통하는 송유관을 깔았고, 지금은 가스관을 건설 중이다. 그 루트에 석유를 실어 보내대박을 낼 수 있었다. 신실크로드 전략과의 윈-윈이다. 중동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두에서 밝힌 롄윈강-알마티 화물철도 노선에 우리 화물을 실어나를 수도 있다. 무릇 돈이 몰리는 곳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는 법이다. 
 
물론 '이따이이루'의 정치적 셈법을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동맹 미국과의 협의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갖고 있는 경제적 지향점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떠한 서방의 논리도경제협력을 통해 주변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중국의 명분을 이길 수는 없다.
 
중국의 신실크로드 전략, 정치가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미국에 대해서도 참가 논리를 세울 수 있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AIIB 가입은 그 시작이다.
 
한우덕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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