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크너와 말러

2015. 12. 14. 11:49음악

 말러와 부르크너| 자유게시판

박상원 | 조회 7 |추천 0 | 2015.12.01. 12:14

말러와 브루크너‥

19세기 말 교향곡 장르를 새로운 형태로 부흥시킨 위대한 심포니스트였지만‥ 두 사람의 성격이나 음악은 매우 달랐다고

말러의 제자 브루노 발터는 두 사람의 차이에 대해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다' 고 ‥이것은 그들의 음악적 차이점을 잘 말해준다

브루크너의 음악 속에서는 인간적인 고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오르간 사운드를 연상 시키는 객관적인 음향, 집요하게 반복되는 악구. 그의 음악은 그저 초연하게 흘러갈 뿐‥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신을 찾지 못한 말러의 음악에는 인간적인 고통과 기쁨의 드라마가 끊임 없이 펼쳐진다.

장송행진곡과 천상의 음악이 뒤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이것이 말러의 교향곡이다.

상반된 성격의 두 사람은 아주 좋은 친구 사이였다고‥. 브루크너는 말러보다 36년 연상이었지만 워낙 천진난만한 성품이었기에 자신보다 한참 어린 말러와 세대 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고‥

두 사람의 조우는 브루크너가 교향곡 제3번을 초연했던 바로 그날‥

브루크너는 초연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기 때문에 쓰라린 패배감을 맛봐야했다 당시 브람스라인에 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일파들이 기라성같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바그너에게 헌정된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초연은 순조롭게 진행될리가 없었다.

브루크너의 엉성한 지휘에 화가 난 오케스트라, 그리고 브람스파의 방해 공작으로 공연장에는 썰렁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나마 연주회에 참석했던 몇 안되는 청중들도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간간이 비웃음 소리마저‥

연주가 끝날 무렵 객석에 는 10명 남짓한 브루크너의 추종자들만이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17세의 청년 구스타프 말러도 끼여 있었다.

비록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의 초연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말러는 이 교향곡에 크게 감명을 받아 이 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이듬해 출판했다.

브루크너는 말러의 편곡에 아주 만족하여 그 답례로 말러에게 자신의 교향곡 3번의 총보를 선물했다고‥

이후 그들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으며 서로를 열렬히 숭배하는 사이로‥

브루크너는 항상 자신 보다 한참 어린 말러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나타내곤 했다고‥. 그래서 말러가 그를 방문할 때마다 모자를 손에 든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가 이 젊은이를 맞이할 정도였다.

그는 말러를 만날 때마다 그에게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 보이며 이 신출내기 음악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고‥

후에 말러는 브루크너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유쾌함과 젊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항상 진실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삶과 이상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이것은 예술가와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나는 나 자신을 그의 '제자'라 부르고 싶다. 또한 언제까지나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할 것이다."

실제로 말러가 브루크너의 제자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말러가 실제로 브루크너의 제자였든 아니든, 말러는 항상 브루크너를 그의 스승으로 생각하며 깊이 존경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후에 말러가 지휘자로서 활동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브루크너 음악의 전도사임을 자청하며 당시에 잘 연주되지 않던 브루크너의 음악을 자주 연주했던 것을 보면, 브루크너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퍼옴

두 분 대가의 위대한 족적ㆍ나이를 초월한 관계‥마치 백아와 종자기의 우정을 보는 듯하네요

한분은 신을 찾았고‥또 한분은 찾는 중‥
찾은 분이거나 찾지 못한 분 이거나 ‥그들의 음색이 들려주는 심오의 경지는 똑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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