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숙 선생, 한국의 슈바이처

2017. 1. 4. 01:53정치와 사회

사회종교

박 대통령, 그것도 사는 거요?…‘한국의 슈바이처’ 여성숙 선생이 꾸짖다

등록 :2017-01-03 21:46수정 :2017-01-03 21:59

크게 작게

‘결핵 환우들의 99살 어머니’
여성숙 선생 첫 언론 인터뷰
여성숙 선생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욕심이 꽉 찼다’는 얘기를 하던중, 이영숙 언님의 손을 안으며 “이렇게 욕심이 없어야 하는데”라며 웃고 있다.
여성숙 선생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욕심이 꽉 찼다’는 얘기를 하던중, 이영숙 언님의 손을 안으며 “이렇게 욕심이 없어야 하는데”라며 웃고 있다.

여성숙 선생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 이도 드물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료까지 다 없애버릴 만큼 그는 철저히 자신을 무화했다.

그는 치료비도 없고 오갈 데도 없는 무의탁환자가 대부분이던 한산촌 환자를 돌보기 위해 낮에 목포 시내 목포의원에서 일하고, 주중의 밤과 주말에 시내에서 10여㎞ 떨어진 한산촌에 와 환자들을 돌봤다. 한산촌엔 인근 1천여개 섬에서 무료로 치료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로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영숙 언님(언니의 높임으로, 개신교 독신수도자들을 일컬음)은 “선생님이 몸도 아프고 녹초가 되어 ‘제발 오늘은 쉬셔야 한다’고 권해도 ‘그 먼 섬에서 배 타고 여기까지 오는데 어떻게 그냥 보낼 수 있느냐’면서 자기 몸이 부서질 때까지 환자를 돌봤다”고 회고했다.

함석헌·안병무·황석영·김지하도 단골

그처럼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서도 그는 가진 것이 없다. 한산촌의 땅도 디아코니아자매회에 헌납해 무소유가 된 지 오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으니 자손도 없다. 그가 없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그는 일체 신념이나 사상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가 보통의 의사들과 다른 점이 발견된다. 그는 몸의 병만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전태일이 분신했던 청계천 피복공장이나 공해산업 현장의 먼지 구덩이에서 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젊은이들을 살리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말 한산촌에서 치료했던 홍성담 화백은 “내 무릎에 피를 토하고 절명한 젊은이만도 두 명이었는데 봄이면 붉은 피처럼 진달래가 지천에 핀 한산촌은 경제개발시대 동생의 학비와 부모의 약값을 보태던 청춘들이 스러져가는 곳이었지만, 여 선생의 헌신과 아름다운 자연으로 지상 낙원처럼 회상되는 곳이기도 하다”며 “여 선생은 ‘너희가 살아나면 무엇을 하고 살 것이냐. 제 욕심만 채우려 사람들을 비참하게 내모는 결핵균이 될 것이냐, 세상을 살리는 이가 될 것이냐’고 묻곤 해 사회에 나가 남다른 삶을 살게 했다”고 말했다.

신념도 사상도 내세우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 자료도 다 없앴다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폐결핵 환자 등
평생 독신으로 살며 치료하고 돌봐

세상의 악과 싸우다 권력에 쫓기던
김남주 윤한봉 윤영규 등도 숨겨줬다

재야인사도 유명인사도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힘도 북돋아 줬다
결핵균 되지 말고 세상 살리라고

한국전쟁 때 의무대에 자원입대
국민방위군 젊은 이들 참상 보며

국가란 이름의 부패와 부조리 목격
죽어가는 생명 살리는 촛불 자임

여 선생이 세상의 악과 싸우는 이들을 숨겨준 것도 남다르다. 홍 화백이 공안당국에 쫓기던 김남주 시인과 후에 광주항쟁 주모자로 수배돼 미국에 망명한 윤한봉을 만난 곳도 한산촌이었다고 한다. 여 선생은 유신시대와 광주항쟁 때의 수배자와 윤영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위원장도 폐결핵 중환자들 속에 숨겨줬다. 유신시대 재야의 지도자인 함석헌과 민중신학의 태두 안병무, 소설가 황석영, 시인 김지하도 이곳에 단골로 머물다 가곤 했다. 홍 화백은 “한산촌엔 그런 지식인들이 보던 책들이 한권 두권 쌓여 멋진 도서관을 갖게 됐는데, 그런 인물들을 만나고 명저를 보면서 병뿐 아니라 세상을 고칠 꿈을 품는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목포에 의원하며 인근 한산촌 문열어

여 선생은 분명히 투사가 아니었다. 재야인사도 아니었다. 유명인사는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품었고, 그들이 세상에 나가 세상을 변혁시킬 힘을 주었다. 그런 삶은 어떻게 태동된 것일까.

그는 황해도 태생이다. 소학교 4학년에 학업을 중단했다. 18살 때 결혼시키려던 집을 나와 원산 마르다신학원에 입학했고, 이어 일본여학교를 거쳐 29살 늦깎이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고려대 의대 전신)에 들어가 1950년 5월 졸업했다. 그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해 11월 중국군이 개입하자 정부는 국민방위군법을 만들어 제2국민병역 해당자인 만 17살 이상 40살 미만의 남자 50여만명을 51개 교육연대에 분산수용해 국민방위군을 편성하고,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으로 하여금 통솔케 했다. 그때 자원입대해 의무대 대위로 대구에서 근무할 때 본 참상이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여 선생은 인터뷰 내내 이를 여러 번 언급했다.

“병력을 보강한다고 젊은이들을 길거리에서 다 잡아다 놓고는 온종일 한 주먹밖에 안 되는 좁쌀밥 두 개만 줬어. 젊은 아이들이 그걸 먹고 어떻게 견뎌. 한겨울인데 덮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 지푸라기를 깔고 잤지. 못 먹고 병들어 죽어가는데 치료할 약 한 톨이 없었어. 의사는 왜 데려다 놨는지 몰라. 방에 가보면 젊은이들이 매일 죽어나가고, 옆 사람 발가락 좀 제 입에서 꺼내달라고 해. 그거 꺼낼 힘도 없는 거야. 그렇게 젊은 아이들이 다 죽어가는데, 그곳에서도 윗사람들은 고깃국에다 하얀 쌀밥을 넘치게 먹데.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

그때 그가 본 것은 참상만이 아니었다. 국가란 이름의 허울과 부패와 부조리를 보았다. 미처 꽃도 못 피우고 지는 청춘들을 너무 많이 본 그는 그 이후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촛불이 되었다. 50년대 전주예수병원과 광주기독교병원 결핵과장으로 있으면서 전북 순창 가막골에 평심원을, 광주 무등산에 송등원 등 결핵요양소를 만들어 무의탁환자들을 손수 돌보다 1961년 목포의원을 하면서 한산촌을 연 것이다. 그는 애초 한센병 환자들을 돌볼 생각이었다고 한다.

디아코니아노인요양원에 걸린 목판글씨가 여성숙 선생에 대한 환자들의 고마음을 담아낸 것 같다.
디아코니아노인요양원에 걸린 목판글씨가 여성숙 선생에 대한 환자들의 고마음을 담아낸 것 같다.

전도보다 환자 우선인 전도부인에 감명

“한센병 환자들 수용소였던 애양원에 가서 한 달간 돌보고 와 결핵환자들을 봤지. 그런데 한센병 환자들은 썩어나간 팔에 호미라도 묶고 호미질도 하며 농사라도 짓더구먼. 피부감염만 안 되면 되니 수용소에 사람들도 드나들었어. 그런데 결핵환자들은 숨이 차서 아무 일도 못했어. 또 공기에 감염되니 가족들조차 쫓아내고 수용소에 아무도 들어가려고도 안 해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도 없고, 치료해주는 사람도 없어 꼼짝없이 죽게 생겼어. 그러니 그들에게 간 것이지.”

여 선생은 재야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현대사다. 한산촌을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이 이를 말해준다. 디아코니아자매회가 지금까지 ‘수도’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갈급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하고 가르침을 준 아버지가 안병무였다면, 여성숙은 삶 그 자체로 민중을 품에 안고 살아온 어머니였다. 그에게 살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 누구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이는 숱한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기독병원에 있을 때 한 전도부인이 있었어. 이름이 전도부인이지, 전도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어. 환자방에 성경도 찬송가책도 안 가지고 들어갔어. 환자 얘기를 어떻게 잘 들어줄까. 환자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만 보고 제일 아픈 사람,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만 찾아다녔어. 먹을 것을 몰래 숨겨가지고 먹여주고, 내가 뭐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지. 아, 나도 저이처럼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77235.html?_fr=st1#csidx9a1517731d5138d8f55b6bf51d6f991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북정책   (0) 2017.03.14
악의 평범성, 아돌프 아이히만  (0) 2017.03.08
강준만 교수  (0) 2017.01.03
카스트로 서거  (0) 2016.11.28
하야 하라  (0) 2016.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