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통일되는 거 아냐?”
금강산 가는 유람선이 우리 수역을 지나 처음으로 북한으로 넘어간 날이었다. 워낙 특별한 날이어서 평소처럼 하나둘 걸러 해안 초소를 채우지 않고, 모든 부대원이 일출까지 전 초소에 투입되는 전원투입 경계 근무를 섰었다. 아침 방송을 틀어놓고 침상에 누워서 “막내들은 좋겠네. 군생활 폈네”, “군대도 곧 없어지겠네” 같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유람선 대신 금강산 관광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용차를 몰고 금강산을 구경 가는 시대가 열렸다. 북한 땅에는 우리 기업들이 들어가는 공단이 만들어졌고,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대통령의 모습이 TV에 생중계됐다.
요즘 유행하는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그때도 잘 쓰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남북 화해와 교류, 경제협력은 거스를 수 없는 규칙이나 흐름 같은 거대하고 단단한 느낌을 가졌었다.
하지만 순식간이었다. 정권의 손바뀜, 그리고 북한의 도발이 맞물리자 남북협력이나 교류 따위는 간단하게 흩어져버렸다. 그렇게 하나둘 뒷걸음치다가 송전선을 깔고, 건물을 지어올리고 우리 노동자들이 머물며 먹고 자던 개성공단이라는 마지막 실물까지 폐쇄됐을 즈음, ‘그러게 왜 북한같이 위험한 데 투자를 했냐’는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돼 있었다. 금강호가 속초항을 처음 출항한 1998년부터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한 2016년. 불과 2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그리고 다시 남북 경협주가 들썩이는 시대가 돌아왔다. 우리 대통령, 미국 대통령, 우리 측 관계자, 북측 관계자는 물론 정통한 소식통과 소식에 밝은 관계자까지 총동원돼 하루는 철도주 또 하루는 건설주, 시멘트주가 들썩이고 있다. 훈풍은 테마주에 그치지 않고 실물까지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오랫동안 유찰됐던 접경지역 임야가 예상가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됐다거나, 인근 토지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도 빠지지 않는다. 5·24 조치나 유엔 대북제재 등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지만 벌써 제2, 제3 개성공단 이야기가 쏟아지고, 북한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통일은 제쳐두고 경협과 개방이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어마어마한 특수를 불러일으킬 기회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술 더 떠 중국과 한국,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지리적 입지만으로도 ‘대동강의 기적’이 예견돼 있다는 들뜬 얘기까지 나온다. 비틀거리고 있는 한국경제에 돌파구를 낼 훌륭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때도 그랬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드라마 같은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졌고, 역사를 뒤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기업들이 기계를 주문하고 원자재를 사고, 사람을 고용해서 북한으로 떠났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뒤 야반도주하듯 북한을 떠나와야 했다.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또 언제 손바닥 뒤집히듯 상황이 달라질지 모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만으로도 지금 당장 모두 없던 일이 돼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북핵은 물론 남북경협에도 불가역적인 보호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남과 북 두 정권 사이의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하다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발을 담그게 해서 도저히 무르거나 깰 수 없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과 몇 년 뒤 ‘애초에 북한같이 위험한 곳에 투자한 게 잘못’이라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상황을 또 겪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