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코카-콜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세 번째 CEO,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 Woodruff)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우드러프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60년간 회사를 이끌며, 코카-콜라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했을까?

 

혼란의 시대, 새로운 CEO의 등장

 

코카-콜라를 아사 캔들러(Asa Candler)로부터 매입한 것은 로버트 우드러프의 아버지, 어니스트 우드러프(Ernest Woodruff)였다.

어니스트는 애틀랜타의 사업가이자, 선트러스트 은행(SunTrust Bank)의 전신인 조지아 트러스트 컴퍼니(Trust Company of Georgia)의 회장이었다.

1919년,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사업가인 W. C. 브래들리(W. C. Bradley)와 함께 투자자들을 모아 코카-콜라 컴퍼니를 2,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하지만 매입 후 3년간 회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세계 1차 대전의 영향으로 설탕 가격이 치솟았고, 보틀링 생산에 대한 각종 합의와 모방제품과의 상표권 소송에 휩싸이면서 주식 가치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어니스트는 자신의 아들인 로버트 우드러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드러프는 트럭 판매원으로 일하다 클리블랜드(Cleveland)에 위치한 화이트 모터 컴퍼니(White Motor Company)로 스카우트됐는데, 부대표로 초고속 승진을 할 만큼 탁월한 세일즈 능력과 비즈니스 감각, 리더십과 결단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우드러프라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하고 코카-콜라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우드러프가 기존에 받던 연봉보다 5만 달러나 낮은 연봉을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코카콜라 전 CEO, 로버트 우드러프

▲ 생각에 빠진 로버트 우드러프


하지만 승부사 기질이 강하고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우드러프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1923년, 33살의 젊은 나이로 코카-콜라 컴퍼니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코카콜라 전 CEO, 로버트 우드러프 선출

▲ 1923년 4월 28일 토요일, 이날의 결정이 코카-콜라의 미래를 바꿨다.
 


최고의 코카-콜라를 제공하고 있는가?

 

우드러프는 취임 후,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내실을 탄탄히 다지는데 집중했다.

특히 우드러프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제품의 ‘품질’이었다. 코카-콜라 판매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코카-콜라가 최상의 상태로, 최고의 서비스와 함께 제공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코카-콜라를 판매하던 소다파운틴(Soda fountain)에서는 누가 콜라를 만들고 제공하느냐에 따라 맛도, 서비스도 조금씩 차이가 났다. 통일되지 못한 맛과 서비스는 코카-콜라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우드러프는 언제, 어디에 가더라도 사람들이 동일하면서도 완전한 맛과 서비스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품질관리부를 만들어 종업원의 복장 규정, 위생 규정, 시럽과 탄산수의 비율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확립해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훈련된 서비스 직원들이 음료를 제공하도록 하는 ‘Quality Drink’ 캠페인을 실시했다. 

코카콜라 전 CEO, 로버트 우드러프의 업적

▲ “Served Perfectly”라는 문구에서 완벽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이러한 기준은 보틀링 공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우드러프는 보틀러(Bottler)들과 함께 논의하여, 코카-콜라 병이 생산되는 과정에서도 매 단계마다 지켜야 할 기준(quality standard)을 마련해 생산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장비들을 표준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기술부를 만들어 판매점에서 제공되는 음료용 냉장고를 개발하거나, 소다파운틴 등 판매 장비들을 자동화하고 업그레이드했다.

우드러프는 코카-콜라가 더 빠르고 편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제공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남다른 노력은 코카-콜라가 세계적인 음료로 거듭나는데 큰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1933년 개발한 코카콜라 Dole MASTER 디스펜서

▲ 1933년 개발한 Dole MASTER 디스펜서. 손잡이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시럽과 탄산수가 자동으로 배합되어, 코카-콜라가 만들어진다.

 

코카-콜라를 세계적인 음료로 

 

우드러프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코카-콜라가 세계적인 상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안목,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간 실행력일 것이다.

그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보틀링 사업을 주목했다. 병에 담긴 코카-콜라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어, 사업적인 가치와 잠재력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병 콜라가 생산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코카-콜라를 집에 쟁여두고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냉장고가 대중화되면서부터는 코카-콜라 병의 수요가 더 많이 증가했다.

이때 우드러프는 사람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코카-콜라를 가져갈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업계 최초로 손잡이가 달린 포장 박스 ‘Six Pack Carrier’를 내놓았다.

코카콜라 패키지 The six bottle carton

▲ 업계의 표준이 된 코카-콜라 병 6개입 세트 포장 박스


지금이야 흔하게 볼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당시로서는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덕분에 1928년 말에는 코카-콜라 병 판매량이 소다파운틴에서의 콜라 판매량을 처음으로 앞질렀고, 경쟁사들과 맥주 업계에서도 이 포장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수출 사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1926년에는 수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새롭게 만들어 코카-콜라의 무대가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도록 했다. (향후 이 부서는 코카-콜라 수출 회사(Coca-Cola Export Corporation)라는 자회사로 발전하게 된다.) 

우드러프는 코카-콜라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기 위해 ‘올림픽’이라는 모멘텀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전 세계인이 함께 모여 즐기는 올림픽이야말로 코카-콜라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코카콜라 전 CEO, 로버트 우드러프

▲ 로버트 우드러프는 코카-콜라가 세계적인 음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1928년, 우드러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코카-콜라를 노출시켰다.

미국 선수들에게는 코카-콜라를 제공해 자연스럽게 콜라를 마시는 모습이 관중들에게 보여지게 했고, 스타디움 입구에는 소다파운틴을 설치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편하게 마실 수 있게 만들었다.

코카-콜라 로고가 그려진 옷을 입은 판매원들은 경기장 곳곳에서 코카-콜라 병을 판매했으며,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상점에도 코카-콜라가 판매되도록 했다. 

여기에다 스타디움 곳곳에 코카-콜라를 홍보하는 광고판까지 붙였으니, 올림픽이 끝난 후 코카-콜라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드러프가 처음 회장이 됐던 1923년만 하더라도 미국 외에 5개국에서만 보틀링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1930년 무렵에는 무려 30개국으로 늘어났다.

올림픽 후원을 시작한 코카콜라 전 CEO, 로버트 우드러프


우드러프는 올림픽 후원과 마케팅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정받고 있는 코카-콜라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광고의 목적이 판매량을 늘리는 것에 있지 않고,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브랜드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광고 철학 덕분에 광고 제작자들도 보다 자유롭게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 이미지도 1931년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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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담긴 이야기는 우드러프가 이뤄낸 혁신과 업적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만들어놓은 초석 위에서 코카-콜라가 비로소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1923년부터 1954년까지 회장직을 수행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약 60년간 지속되었다. 이사회를 통해 회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조언들을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한자리에 머무르는 법이 없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늘 노력했던 사람. 시간이 흘러도 코카-콜라가 사람들에게 짜릿함과 새로움, 행복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우드러프의 정신이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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