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 통치론 2

2019. 7. 25. 04:08정치와 사회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아래로부터의 저항’ 이끈 진보적 자유주의 출발점

  • 김학순 |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행복한 철학자’

로크는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시민의 저항권까지 인정한다. “왕이 권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며 따라서 저항할 수 있다.” ‘통치론’은 입법부가 선언한 법률을 군주나 권력자가 바꾸거나, 입법부의 집회를 방해할 경우 이에 저항할 권리를 명시했다. 저항권은 국민 뜻과 달리 선거 방식을 훼손하거나, 입법부 권한을 외세에 넘길 때도 가능하다. ‘왕권신수설’에 따라 왕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 신성모독의 대역죄로 간주되던 시대에 로크는 대담하게 인민의 저항을 권리로 정당화했다. ‘신은 세계를 근면하고 합리적인 자들이 사용하도록 주었다’는 로크의 지론에서는 초보적인 노동가치설이 나왔다.

‘통치론’은 원제목이 시사하듯 1편인 ‘로버트 필머 경과 그 일파의 잘못된 논리에 대한 비판’과 2편인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소론’으로 구성돼 있다. 1편은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명제에 따라 절대왕정을 옹호한 로버트 필머와 그 일파의 주장에 관한 전면적 논박이다. 2편은 우리나라에서 ‘통치론’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부분이다. ‘시민정부론’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책은 혁명적인 저작이 대부분 그렇듯이 순조롭게 출판될 수 없었다. ‘혁명을 통해서라도 통치자를 바꿔야 한다’는 지론으로 무장한 로크는 끝내 더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망명한 뒤에도 새로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가 로크를 체포해줄 것을 네덜란드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는 수많은 가명을 사용하면서 숨어 지내야 하는 수배자 신세가 됐다. 로크는 미리 써놓은 ‘통치론’을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인 명예혁명 다음 해에 발표해 이 혁명을 사상적으로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아래로부터의 저항



1689년 로크는 익명으로 이 책을 출판했다. ‘통치론’은 그때까지도 위험한 저작으로 취급받아 이름을 감추고 출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혁명의 성공으로 정치현실을 변화시켜 영국 근대 정치철학의 교과서로 불렸다. 더 크게 보면 미국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에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 독립혁명에 끼친 로크의 영향력은 ‘독립선언서’가 ‘통치론’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린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선언서 전체의 내용이나 구성은 물론 구체적인 문장까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동안 어떤 책이나 팸플릿도 옆에 두고 참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통치론’은 볼테르의 ‘관용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에도 적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로크의 사상은 19~20세기 전체주의와 독재국가들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이끌어내고 정당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 책은 한계점도 드러냈다.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일치’를 주장한 루소와는 달리 권력의 양도를 정치사회 결성의 전제로 삼은 대목이 그렇다. 서구 예외주의도 발견된다. ‘통치론’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존재하는 재산제도와 정치조직의 차이를 근거로 삼아 유럽 식민주의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통치론’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국가의 목적은 인민의 복지이며, 정치권력의 행사는 개인의 동의에 기반을 둘 때 정당하다”는 로크의 견해도 여전히 금과옥조 같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도 천부인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통치론’은 출간된 지 300년이 넘었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의 헌법에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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