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1

2019. 7. 25. 05:03자연과 과학

새연재 |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예견한 ‘복음서’

  • 김학순│언론인·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예견한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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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12월호부터 우리 시대의 고전을 소개하는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를 연재한다. 필자 김학순은 경향신문 워싱턴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실장, 대기자 등을 지낸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다. <편집자주>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예견한 ‘복음서’

‘디지털이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242쪽, 9000원



학교에서 상을 받은 딸이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 자랑했다. “엄마ㅋㅋ나오늘상받았어ㅋㅋㅋ” 엄마한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엄마는 문자메시지에 익숙지 않다.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웃으며 물었다. “상 받은 거 축하해. 근데 ㅋㅋ가 뭐냐?”“아, 그건 분위기를 전환할 때 쓰는 거야.” 며칠 뒤, 수업 중인 딸에게 엄마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ㅋㅋㅋ” 딸은 기절할 뻔했다.

손자가 도토리가 없다며 느닷없이 할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재래시장에 가서 진짜 도토리를 사 왔다.

디지털 시대를 풍자하는 우화다. 그것도 한참 전에 나온 얘기다. 아직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면 당신은 심각한 아날로그 세대다.

젊은 부모들조차 자녀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디지털 세대 차이는 하루가 다르게 더 커져만 간다. 요즘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나이의 차이가 아니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다.



디지털 혁명은 이미 16년 전인 1995년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전 세계인에게 예언하면서 시작됐다. ‘디지털 전도사’란 별명이 붙은 네그로폰테는 당시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묵시록을 들려주며 ‘복음 전도’에 나섰다. 16년 전이라면 디지털 시계로 ‘석기시대’를 갓 지난 시절이다. 그가 쓴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원제 ‘Being Digital’)는 ‘디지털 바이블’인 양 들불처럼 지구촌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보면 지은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현실이 존재할 만큼 급변한 상황도 전개되고 있으나 진행형인 부분도 있어 여전히 유효하다.

네그로폰테는 이 책에서 “앞으로 세상의 최소단위는 원자(atom)가 아니라 비트(bit)”라며 디지털 세상의 도래를 선언했다. 한마디로 간추리면 이렇다. ‘아톰에서 0과 1의 연산체계인 비트로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지은이는 자신이 말하는 ‘디지털화’란 단순히 아날로그의 반대 개념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역사의 필연

이 책은 에비앙 생수 한 병을 화두로 삼아 아톰(원자)과 비트의 차이를 풀어가며, 세계가 디지털화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를 설명한다. 알프스 산맥에서 생산되는 빙하수가 대서양을 건너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에비앙 생수가 아톰이라면, 영국의 파운드화는 비트로 변환돼 순식간에 자신의 계좌로 이체돼 들어간다. 몇 푼 되지 않는 에비앙 생수 한 병은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손과 땀이 필요하지만 비트경제에서는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수십억달러의 가치가 이전된다. 이제 상식적인 얘기가 됐지만 비트로 이뤄지는 디지털 정보나 지식은 물질로 만들어지는 아날로그 상품보다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게다가 빠르기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서관에 비유하자면 책이라는 원자를 빌리고 나면 원자는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서가의 빈자리뿐이다. 도서관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단지 원자를 비트로 바꾸면 모든 책이 컴퓨터 파일로 디지털화된다. 디스크에 저장돼 있다면 비트를 빌려가도 비트는 언제나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 다르다. 책은 한 사람만 빌려 볼 수 있지만 비트는 수만 명이 한꺼번에 빌려 볼 수도 있다.

비트는 그저 무언가를 나타내는 0과 1일 뿐 크기도 없고 색깔도 없다. 형태도 없고 질량도 없다. 더구나 비트는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 비트는 손쉽게 혼합된다. 멀티미디어란 매우 복잡한 것처럼 들리지만 비트를 섞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멀티미디어라는 것은 음악 비트와 영화 비트, 문자 비트를 하나로 섞은 것일 뿐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당시만 해도 비트의 경제적 가치는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이버 아이템을 매일 사고팔며 자신의 ‘아바타’를 가꾸기 위해 한 달 용돈 쏟아 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의 누리꾼들을 보면 더 이상 아톰과 비트의 차이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 이 책은 다가온 정보화 사회의 핵심 요소인 비트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친숙하게 접해왔던 아톰이 변화한 것임을 알려준다. 네그로폰테만 이 같은 견해를 펼친 건 아니지만 비트의 세계로 인도하는 전도 행위의 열정과 탁월성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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