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6. 16:59ㆍ자연과 과학
고고학 논쟁 종식시킨 연대측정법
노벨상 오디세이 (54)
1947년 봄, 베두인족의 목동 3명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사해의 북서쪽 해안 쿰란 지역의 절벽을 헤매고 다녔다. 사해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있는 소금 호수로서, 생물이 살지 못할 만큼 염도가 높아 사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 동굴의 입구에 다다른 목동들은 그 속으로 돌을 던져보았다. 염소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들린 것은 염소 울음소리가 아니라 그릇이 깨지는 소리였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치우고 동굴 안으로 들어간 목동들은 두루마리가 가득한 항아리를 발견했다.
양피지와 파피루스 등으로 제작된 그 두루마리에는 히브리어가 잔뜩 적혀 있었다. 세기의 발견으로 일컬어지는 ‘사해문서(또는 사해사본)’가 현대 사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 두루마리들 속에는 구약성서인 이사야서 전권을 비롯해 공동체 규율서, 감사 찬송집, 창세기 외경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주변 동굴까지 대대적인 탐사를 한 결과 900여 개에 이르는 문서들이 발견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히브리어 구약성서 중 가장 오래된 사본은 9~10세기에 만들어진 것뿐이었으나 사해문서는 초기 유대교 시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학자들 사이에서 그 문서의 진품 여부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보관 상태가 너무 양호하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같은 논쟁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연대측정법에 의해 종식될 수 있었다. 1951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화학과 윌러드 프랭크 리비 교수는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BC 168년에서부터 AD 233년 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공의 이익 널리 초래한 화학적 발견
그가 사용한 연대측정법은 바로 자신이 1946년에 개발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었다. 고고학을 비롯해 지질학, 지구물리학 등에서 거의 필수적인 연대측정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 측정법을 개발한 공로로 그는 196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흔히 노벨상을 탄 과학 분야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지만, 그가 개발한 연대측정법은 원리가 매우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그 파급효과는 매우 커서, 그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던 과학자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업적을 평했다.
“화학에서 단 하나의 발견으로 인간이 연구하는 많은 분야에 그처럼 큰 파급효과를 준 적은 거의 없었다. 단 하나의 발견이 이만큼 공공의 이익을 널리 초래한 적은 거의 없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세 가지 유형을 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질량수가 12인 C-12가 98.9%, 질량수 13인 C-13이 1.1%, 그리고 나머지는 질량수 14인 C-14다. C-14의 비율을 표시하지 않은 것은 그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C-12와 C-13이 모두 합쳐 총 1조 개가 있어야 C-14가 겨우 한 개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비율은 항상 일정하다.
모든 동식물, 즉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광합성이나 호흡 또는 먹이사슬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유형의 탄소 비율 역시 항상 일정하다. 그런데 생물체가 죽는 순간부터 이 비율은 깨지기 시작한다. 비방사성인 C-12와 C-13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방사성 탄소인 C-14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정한 속도로 붕괴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기체가 살아 있을 때 C-14가 100개 있었다면 죽은 지 5730년이 지난 후에는 50개로 되고, 다시 5730년이 흐른 뒤에는 그 절반인 25개가 된다. C-14가 붕괴되는 속도 역시 항상 일정하므로, 유기체의 유물에 남아 있는 C-14 대 C-12, C-13의 비율을 정확히 측정하면 그 유기체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있다.
1933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윌러드 리비는 1941년부터 맨해튼 계획에도 참여했다. 그의 임무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우라늄 동위원소의 분리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리비는 그처럼 방사능 물질들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있었기에 C-14의 정확한 측정에 성공했다. 이를 위해 그는 8인치 두께의 납으로 된 가이거 계수관(방사능 측정기)을 제작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가속기질량분석기 등장
C-14 탄소연대측정법은 나무나 석탄, 천, 뼈, 조개껍질 등 일단 한 번 살아 있었던 물질이라면 무엇이든 그 연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그는 이 정확한 방법으로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숯과 나무를 측정해 그 무덤들이 언제 건축되었는지를 밝혔다.
또한 북유럽과 북미의 마지막 빙하시대가 1만1000년 전에 동시에 있었고 상당히 넓게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프랑스 남쪽 지방에서 빙하시대 도래 이전 혈거인들의 유물이 1만500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하지만 그의 탄소연대측정법에도 단점이 있었다. C-14의 반감기는 5730년이므로 10번의 반감기가 지날 경우 잔량이 0.1% 미만으로 떨어져서 측정 시료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처음 개발 당시 탄소연대측정법은 약 6만년까지의 연대만 측정할 수 있었다.
또한 C-14 탄소연대측정법은 1회 측정에 수 그램의 탄소 시료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문화재의 경우 대부분 매우 귀중한데, 연대 측정을 위해 시료를 그만큼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가속기질량분석기는 그 같은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했다. 가속기질량분석기는 시료 속의 탄소 원자를 이온화시킨 후 입자가속기로 가속해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한다.
따라서 불과 0.001그램의 탄소 시료로도 정확한 연대측정을 할 수 있어 귀중한 문화재에서 떼어내야 할 시료 역시 그만큼 부담이 적어졌다. 또한 오차를 보정하는 다양한 기법이 발전함으로써 약 6만년이라는 한도를 넘어 매우 오래 전의 연대까지 밝힐 수 있게 됐다.
- 이성규 객원기자다른 기사 보기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8.08.29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