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 현장 연구 (하)

2020. 3. 17. 11:18물류와 유통

박근혜만 모르는 진실...北은 중국의 '돈'이다
[강주원의 '국경 읽기']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단둥 ②


(☞관련 기사 :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단둥 ① 수소탄 터질 때, 北 사람은 <내부자들> 보면서…)

중국의 선택 '대북 재제' 혹은 '국문'

다음날 아침 8시, 나는 어제 약속한 조선족 L을 만나기 위해서 단둥세관 앞에 갔다.

그는 고용한 인원 가운데 33명의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체류 기간 1년이 되었기 때문에 신의주에 가서 수속을 밟고 오후에 다시 단둥으로 돌아오는 일을 처리했다. 오전에 신의주에 갔다가 오후에 다시 돌아올 북한 노동자의 가방에는 지난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구입해 북한으로 가져갈 다양한 물건이 들어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귀국 행렬을 지켜보면서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 담화를 떠올렸다. 동시에 '단둥 2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모은 월급으로 중국의 시장에서 구입하는 물건들의 금액은 1년에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중국 단둥에만 북한 남포를 연결하는 화물 노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2016년). ⓒ강주원


세관 건물 벽면에는 단둥 항이 아닌 중국 잉커우(영구) 도시에서도 북한 남포로 화물선이 매달 3회 왕복한다는 광고물이 있었다. 조선족 H를 다시 만난 나는 평양 방문 비자 신청 때문에 작년(2015년)에 자리를 옮긴 북한 영사부를 찾아가는 그의 차에 동승했다. 이번 나의 단둥 방문 목적을 잘 아는 그는 단둥의 신시가지를 달리면서 한쪽 건물을 가리키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저쪽 건물들이 수산물과 봉제 이외에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 제품 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만약에 중국의 대북 제재가 한국 정부의 뜻대로 실행이 되면 저 건물들은 텅 비게 될 것인데, 중국 정부가 과연 자국민인 건물 주인에게 손해 가는 행동을 할까? 그리고 북한 노동자가 빠져 나간 자리를 누구로 채울 수 있을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차창 너머에는 중국이 투자한 신압록강대교와 함께 '대북 제재'의 반대어로 느껴지는 "國門" 즉 나라의 문이라는 문구가 선명한 대형 건물이 보였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국문"의 성격이 열림과 닫힘 중에서 어떻게 변화될지 그려보았다. 바로 옆에는 새로운 북-중 무역의 세관 역할을 할 건물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 신압록강대교의 출발 지점에 중국은 국문이라는 빌딩을 건설했고 이 지역을 국문이라고 부른다. 국문과 대북 제재는 반대어가 아닐까!(2016년) ⓒ강주원


북한 영사부 건물에 도착한 후, 그가 서류 처리를 하는 동안 나는 건물 밖에서 계속 영사부를 방문하는 중국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카메라를 서둘러 꺼냈다. 북한 영사부 건물 위에는 인공기, 바로 옆 건물에는 중국의 오성기 그리고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낯익은 상징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아파트 벽면의 "SK" 로고였다. "삼국이 공존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숲" 문구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단둥의 신시가지에는 북한의 인공기, 중국의 오성기 그리고 한국의 SK 기업 로고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공존의 풍경은 신영복의 "더불어숲" 그 자체가 아닐까! ⓒ강주원


한국식 고기와 반찬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나는 각기 다른 국민과 민족 정체성을 가진 지인들과 어울러 식사를 했다. 식당을 나오면서 인사를 나눈 식당의 여주인은 "헤이룽장 성(흑룡강성)이 고향이고 한국에서 약 15년 동안 일하다 1년 전 단둥에 정착했다"고 말하면서 서울의 지하철 노선을 줄줄 외웠다. 식당의 주고객은 북한 사람들이었다. 단둥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자면서 사장 부부가 잡는 바람에 술 한 잔을 더하게 되었다.

나는 그날 늦은 밤 인터넷으로 확인한 신영복 선생의 별세 소식에 잠을 설쳤다. 16일 아침 8시 서둘러 호텔에서 나온 나는 기차역에서 오전 10시 평양행 기차를 탈 예정인 조선족 지인을 배웅하였다. 그는 "나는 저녁 때 평양에서, 강 박사는 서울에서 늦은 저녁을 먹겠네!"라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북한 사람들과 섞여 기차 대합실 2층으로 올라가는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나는 1층을 통해서 2015년 12월에 개통한 단둥-대련 고속 열차에 탑승을 했다. 창 너머로 방금 헤어진 지인이 탈 평양행 국제 열차가 보였다. 

▲ 단둥역에서 고속 열차를 타기 전 찍은 사진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선로 끝자락에 신의주로 건너가는 다리가 있고 고속 열차 옆에는 평양행 국제 열차가 있었다(2016년). ⓒ강주원


단둥과 신의주는 쌍둥이 도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었지만 단둥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 어디에도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긴장감은 찾기 힘들었다. 3국이 공존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한편, 산술적으로 단둥에서 대련까지는 기차로 1시간 45분 그리고 대련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나는 세 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전문을 다시 읽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제재가 포함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 그동안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와 긴밀히 소통해 온 만큼 중국 정부가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더욱 악화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경향신문> 2016년 1월 13일) 

한국 정부가 놓치고 있는 북·중 관계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중국 사람 아니 단둥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선 북한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일방적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석유 수출 혹은 원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2014년 기준 한국에서 보도되는 북-중 무역액은 약 68억 달러이다. 이는 말 그대로 통계일 뿐, 북-중 무역의 수많은 관행들을 고려하면 그 금액은 더 늘어날 것이다. 

단둥 시내 인구는 약 80만 명이다. 북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숙박 시설과 북한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공장의 사장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주고객인 도매 시장의 가게 주인은 중국 사람들이다. 건물주가 주인인 단둥의 약 25개 북한 식당에서 내놓는 요리의 재료는 중국 시장에서 구입한다. 단둥에 출장 나온 북한의 무역 일꾼들은 밤이면 중국 사람들과 식당과 술집에서 사업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두고 단둥 사람들은 한 집 건너 북한 교역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단둥과 신의주 사람들의 관계를 빗대어 "압록강은 서해보다 깊다"는 말도 한다. 

고성 지역은 2008년 7월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후 2464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고 414곳의 업소가 휴·폐업하는 등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국민일보> 2015년 8월 26일) 

금강산 관광과 관련되어 10년 남짓 관계를 맺은 고성군의 경제적 손실이 이 정도이다. 범위를 넓혀 2010년 5.24 조치에 따른 남북 경협 중단으로 2013년 기준 한국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약 69억 달러라는 주장도 있다. 

단둥과 신의주는 20세기 초 태동을 함께 한 쌍둥이 도시이다. 단둥과 신의주 사람들은 압록강에 기대어 10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들의 관계맺음과 삶의 깊이는 금강산과 고성군의 경제적 관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이 두 도시 이외에도 압록강과 두만강에는 경제 교류를 통해 공생하는 북-중 도시들이 많다.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게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하기 전에, 한국 정부는 '역지사지'를 한번쯤 생각해야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도 자국민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대북 제재에 동참을 할까? 그렇다면 중국의 경제적 손실은 얼마나 될까? 나의 질문에 단둥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젓을 뿐이다. 물론 그들은 정치와 외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숲" 혜안이 벌써 그립다. 

▲ 단둥의 신시가지 곳곳에 북한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공장들이 있다(2016년). ⓒ강주원


▲ 북한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공장들 바로 옆에 한국 기업이 건설한 아파트도 있다(2016년). ⓒ강주원


글=강주원 프레시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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