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6. 22:53ㆍ카테고리 없음
내 지친 영혼이 쉴 곳은 어디에
등록 :2020-04-29 18:57수정 :2020-05-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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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나선 젊은이들은 힘이 넘쳐 될 수 있으면 많이 걷고 많이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나이가 들면 구경하는 시간보다 앉아서 쉴 때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는 궁궐처럼 높은 천장을 굵은 대리석들이 떠받치고 있고, 유리벽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성화와 조각상, 명화 들이 둘러싸고 있다. 거기서 눈 호강에만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예배당을 채웠을 힘든 영혼들의 기도와 울음, 그리고 이를 들어주는 신적 자애로움의 자장 속에 잠기다 보면 ‘눈팅’만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맛볼 수 있다.외국에서 내가 피로할 때면 곧잘 찾는 곳 중에 모스크도 빼놓을 수 없다. 모스크는 한국인들에게 교회나 성당, 절에 비해 생소하지만, 일체의 성물이나 그림 없이 심플한데다, 대부분 대리석으로 지어져 시원하고, 의자가 없이 전체가 맨바닥이어서 벽에 기대앉아 조는 듯 쉬기에 그만이다.
파리의 한 모스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교회 입구 표지석과 주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글귀는 두 팔 벌린 예수의 그림과 함께한 이 <마태복음> 구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 강화와 ‘신천지 추수꾼’ 예방 등을 이유로 교회와 성당이 신자들로 하여금 바코드를 찍고 입장하도록 하는 등 신자 확인 절차를 강화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과 한신대 교수를 지낸 김경재 목사는 “교회가 폐쇄적으로 변하는 것은 교회가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많기 때문”이라며 “외형은 초대교회처럼 작아지고, 내면은 영과 진리로 건실해져 항상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성당의 은촛대를 훔친 장 발장을 잡아온 경찰에게 그 은촛대는 자기가 준 것이라고 말한 미리엘 신부라면 뭔가를 지키려 문을 꼭꼭 닫아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이 뉴스에 서울 도심의 회사에 다닌다는 한 독자는 “삶이 버거울 때면 점심시간에 짬을 내 인근 교회에 가서 기도라도 하고 싶은데,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많은 교회가 낮에 예배당 문을 잠가 놓는 경우가 많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예전엔 종교시설은 모두의 것이란 생각이 강했다. 꼭 그곳 신자가 아니더라도 힘들면 잠시 들어가 기도하며 하소연하곤 했다. 사찰의 경우 멤버십이 약한 만큼 누구나 들어가 기도나 명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가 도둑을 맞거나 광신도에 의해 전각이 불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찰의 대웅전과 전각들도 기도 시간 외엔 문을 잠가 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명동대성당 전경
가톨릭 서울대교구 바코드
여의도순복음교회 전경
#격세지감은 종교시설도 ‘이 교회, 이 성당, 이 절은 내 것 혹은 우리 것’이란 소유 개념이 강해지면서 비롯된 것이다. 헌금과 보시를 통해 경제적 기여를 한 신자들만이 혜택을 누리는 게 당연하다는 풍토가 자리 잡으면서 외부인은 잡상인이나 도둑 취급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에선 성당이나 수도원, 교회가 호텔업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적 소유가 종교시설까지 점유해가면서 더욱 외로워질 사람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다. 이제 기도할 종교시설마저 편히 이용하기 어려운 힘든 영혼의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내 지친 영혼이 쉴 곳은 어디에?’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mind/942577.html?_fr=mb2#csidx1c8b332dd8a97309e4711983fb87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