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얼음 유리조각으로 햇빛반사

2020. 10. 5. 02:33자연과 과학

녹아내리는 북극 바다 얼음…하얀 ‘유리 가루’가 특효약 될까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입력 : 2020.10.04 20:13 수정 : 2020.10.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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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항공 촬영한 그린란드 빙하와 주변 바다의 모습. 온난화에 따라 북극 해빙이 녹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미국 연구진은 그린란드와 스발바르 제도 주변 바다에 유리 가루를 살포해 태양광을 반사시키자는 주장을 내놨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온난화로 해빙 감소 가속화
“15년 뒤엔 소멸” 전망 나와
태양광 반사할 물질을 뿌려
녹는 속도 늦추는 연구 주목

식물 플랑크톤 광합성 막아
생태계 전반 교란 가능성도
“탄소 배출 억제 먼저” 지적

‘영화감독 봉준호’를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린 2013년 개봉작 <설국열차>는 꼬리칸부터 기관차까지 이어지는 긴 기차를, 사회적 계층을 상징하는 무대로 사용한다. 배우 송강호뿐만 아니라 <어벤져스> 영화 시리즈에서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익숙한 크리스 에번스 등 유명 배우들이 좁은 열차 안에서 앞칸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고 폭발물을 터뜨리는 등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등장인물들이 기차에만 갇혀 있는 이유는 바깥이 ‘설국’이어서인데, 이는 온난화를 막겠다며 인류가 대기에 살포한 물질 ‘CW-7’ 때문이다. CW-7은 냉각 효과를 과도하게 일으켜 빙하기를 불러왔고, 기차 밖은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동토가 됐다.

특수물질을 대기 중에 뿌려 온난화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얼핏 만화적 상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실제로 일부 과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개념이다. 온난화를 늦추려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태양광이 지상에 과도하게 흡수되는 일을 막자는 얘기다.

과학계에선 이같은 개념을 기후에 인위적으로 손을 댄다는 뜻에서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라고 부른다.

■ ‘유리 가루를 살포하자’

지구공학이 제기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지구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단적인 예는 속절없이 사라지고 있는 북극 해빙에서 드러난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기준 북극 해빙 면적은 374만㎢다. 이는 1979년 위성을 통한 해빙 관측이 시작된 이후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면적이다.

지난 8월 영국 남극자연환경연구소(BAS)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북극 해빙이 15년 뒤엔 소멸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내놨다.

지구의 이런 엄혹한 현실은 최근 미국의 비영리 연구단체인 ‘북극 얼음 프로젝트(Arctic Ice Project)’가 내놓은 공격적인 연구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연구진은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드는 뜨거운 태양 광선을 반사하는 물질을 북극 해빙 위에 뿌리자고 제안했다. 전형적인 지구공학의 발상인데 연구진이 살포하려는 물질은 이산화규소, 즉 ‘유리 가루’다.

연구진이 유리 가루를 선택한 건 하얀 눈과 닮았기 때문이다. 해빙 등 극지방 얼음은 지상으로 꽂히는 태양 광선을 우주공간으로 되쏘는 거울 구실을 한다. 반사율, 즉 ‘알베도(Albedo)’가 높아 지구 기온이 빠르게 오르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얼음이 녹아 검푸른 바다의 일부가 되면 알베도는 확 떨어진다. 하얀 눈이 쌓인 북극의 해빙은 날아든 햇빛의 90%를 반사하지만, 얼음이 없는 바다는 6% 반사 수준에 그친다. 유리 가루를 북극 해빙에 뿌려놓으면 해빙이 녹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종국에 해빙이 다 녹더라도 주변 바다를 하얗게 유지하면 들어오는 햇빛을 최대한 되쏠 수 있다.

미국 연구진이 태양광을 반사시키기 위해 북극 일대에 뿌릴 것을 제안한 ‘유리 가루’를 손바닥에 덜어 보이고 있다. 이 가루는 이산화규소로 만들어졌으며, 눈처럼 하얗다. 북극얼음프로젝트(Arctic Ice Project) 제공

■ 햇빛 반사율 20% 높여

연구진은 고운 설탕처럼 생긴 지름 6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의 유리 가루를 만드는 업체가 이미 확보돼 있다고 설명했다. 즉시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 유리 가루는 비교적 크기가 커 생물의 폐에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북극 얼음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인 레슬리 필드 미 스탠퍼드대 겸임교수는 지난달 말 영국 BBC방송을 통해 “생태계 재건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지난 10년간 연구진의 실험 결과는 고무적이다. 실험이 이뤄진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연못에서는 얼음이 태양광을 되쏘는 반사율이 20%나 높아졌다. 당연히 얼음이 녹는 속도는 느려졌다. 연구진은 유리 가루를 북극 해빙이 녹는 속도가 빠른 그린란드와 스발바르 제도 주변 바다에 제한적으로만 뿌려도 적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 생태계 교란 우려도

문제는 유리 가루가 순기능만 한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해빙 주변에서 광합성을 하는 플랑크톤에 공급될 햇빛을 유리 가루가 반사시켜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캐나다 빅토리아대의 생태학자인 카리나 기스브레흐트 박사는 BBC 인터뷰에서 “플랑크톤의 식생이 나빠지면 먹이사슬에 있는 물고기, 바다표범, 북극곰까지 영향을 받는다”면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극 얼음 프로젝트’ 연구진은 유리 가루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 분해되도록 하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지구공학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 과학계의 전반적인 의견”이라며 “태양 복사에너지 유입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건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지구공학을 추진하다보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인간의 책임의식마저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탄소 배출 억제’라는 온난화 대응의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0042013015&code=610102#csidxd949c46582e23b08bc8190b414e2c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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