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선학동 마을

2020. 10. 13. 15:24건강과 여행

[休]소설·영화로 그려진 선학동마을은 그대로였다

최성욱 기자 입력 2020.10.13. 14:07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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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한승원 등 작가 배출한
문학의 고장, 장흥 메밀꽃 만개
득량만과 황금빛 들녘 어우려져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곳

[서울경제] 흔히 땅끝이라고 하면 해남을 꼽는다. 그런데 이 ‘타이틀’을 빼앗겨 억울한 곳이 있다. 바로 전남 장흥이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육지 끝까지 내려가면 닿는 곳이 전남 장흥의 나루터다. 그래서 장흥은 해남 차지가 된 ‘땅끝마을’ 대신 정남진(正南津)이란 이름을 택했다. 동쪽 끝에 강릉 정동진이 있듯이, 한반도 정남쪽 끝자락에는 정남진이 있다. 완연한 가을이 느껴지면 순백의 메밀꽃이 흐드러진다는 남쪽 끝자락 장흥에 다녀왔다.

장흥은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을 여럿 배출해 한국문학의 본향으로도 불린다. 인구 3만8,000명의 작은 고장에 현역 등단 작가만 100여명에 달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국문학의 거목 이청준(1939~2008)과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거론되는 이승우가 꼽힌다. 이곳 출신 작가들은 고향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기암괴석들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천관산과 깊고 푸른 득량만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장흥여행은 그 자체로 문학기행인 셈이다.

메밀꽃밭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새하얀 꽃만 눈에 들어오지만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연녹색의 꽃대와 어우러져 싱그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흥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곳은 정남진이 자리한 장흥 관산읍의 남서쪽에 위치한 회진면 일대다. 득량만을 등지고 솟아 있는 공지산을 병풍 삼아 자리한 이곳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로도 알려져 있다. 소리꾼 아버지와 이복남매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사실 작가는 선학동마을이 아닌 이웃마을 진목리 출신이다. 어린 시절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작은 시골마을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 ‘선학동 나그네’였다. 그는 작품에서 이 마을을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은 그래 한 마리 학으로 물 위를 떠돌았다. 선학동은 그 날아오르는 학의 품에 안겨진 마을인 셈”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관음봉은 공지산을 말한다.

선학동마을 메밀꽃밭 한 가운데 설치된 원두막은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다. 저 앞에 펼쳐진 득량만을 배경으로 해도되고, 공지산을 배경으로 해도 좋다.

이제 막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남쪽 선학동마을은 소금을 흩뿌려놓은 듯 순백의 메밀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공지산 아래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계단식 논밭에 메밀꽃이 심어져 있는데, 차를 세워두고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뒷산이 온통 새하얗다. 꽃밭 사이로 여행객들을 위해 조성된 탐방로는 메밀꽃밭을 따라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코스다. 이청준 작가의 작품을 설명한 표지판을 따라 탐방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작가의 일대기를 마주하게 된다. 탐방로 중간중간 포토존이 설치돼 있는데, 가장 좋은 촬영 포인트는 메밀꽃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 뒤 원두막이다. 저 멀리 푸르른 득량만과 산 아래 옹기종기 모인 시골집 지붕,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작가 이청준이 살던 장흥 회진면 진목리에서 바라본 선학동마을은 학이 날개를 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다.

이 메밀꽃밭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고추, 감자 등을 심은 계단식 논밭이었다. 마을 이름도 선학동이 아니라 산 아래 있다고 해서 산저(山底)마을로 불렸다. 총 5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시골마을은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때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지만 볼거리가 부족하다고 느낀 마을 주민들이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메밀꽃을 심은 것이 장흥여행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배우 하희라씨가 메밀꽃이 만개한 선학동마을을 그림으로 그렸다. 최수종, 하희라 부부는 최근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에 출연해 선학동마을에서 한달살기를 체험했다.

선학동마을은 육지에서 가장 늦게까지 메밀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보통 메밀꽃은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꽃을 피웠다가 서리가 내리면 꽃이 지면서 열매를 맺지만 선학동마을에서는 10월 중순까지도 만개한 메밀꽃을 볼 수 있다. 매년 이맘때면 마을에서 메밀꽃 축제가 열렸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축제가 취소돼 한결 여유롭게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최수종, 하희라 부부가 한달살기를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방송에서 나왔던 집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고, 정자는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청준의 작품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세트장. 세트장은 작품에서 주막으로 나오던 공간이다.

마을 인근 회전리 제방에는 영화 ‘천년학’ 세트장도 남아 있다. 주인공이 생활하던 작은 시골주막으로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에 잠시 들러볼 만하다. 건물 자체는 볼품없지만 공지산이 품은 선학동마을을 감상하기엔 좋은 위치다. 영화를 봤거나 원작을 읽은 여행객이라면 작품과 현실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곳에서 차로 10분만 더 가면 이청준 작가의 생가인 진목리다. 작가는 평소 유언대로 득량만이 내려다보이는 고향 갯나들에 잠들었다. 그의 묘소 앞에는 ‘이청준 문학자리’라는 비석과 문학 지도가 세워졌고, 단편소설 ‘눈길’에 나오는 오솔길에는 4.5㎞ 길이의 문학탐방로가 조성됐다.

전남 장흥 회진면 진목리 작가 이청준의 생가.

장흥 출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천관문학관, 한승원 작가의 집필실인 해산토굴, 천관산 문학공원도 문학기행 코스로 함께 둘러보기 좋다. /글·사진(장흥)=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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