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2006. 10. 12. 14:42정치와 사회

'햇볕정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주장] 참여정부 3년반, 외교·안보정책 비판 ②
텍스트만보기   최재천(cjc1013) 기자   
▲ 지난해 3월 16일 경기도 문산 변전소에서 북측에 위치한 개성공단에 송전을 시작했다. 이날 저녁 경기도 파주 최전방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가 전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아래). 위 사진은 지난 해 12월 개성공단 야경.
ⓒ 연합뉴스 황광모

"포용정책의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자인한다.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명숙 국무총리의 10일 국회 답변이다. 한 총리는 11일 자신의 발언을 이렇게 약간 수정했다.

"대북 포용정책은 완전 폐기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떤 수위에서 이를 조정할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인식과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누가 햇볕정책의 실패를 말하나

이런 인식과 판단은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다.

햇볕정책은 대북3원칙으로 구성된다. 그 첫째가 '무력도발의 불용'이고, 둘째가 '흡수통일의 배제'이며, 셋째가 '화해와 협력의 적극 추진'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햇볕정책 혹은 대북포용정책을 세번째의 의미로만 받아들인다.

햇볕정책은 '안보'를 가장 우선시하되,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인도적 교류 등을 지속하면서 변화하는 북한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권교체나 체제 변환이 목적이 아니다. 변화하는 체제, 즉 남한의 도움에 의해 '스스로 변화하는 북한'이 햇볕정책의 목적이다.

그 반대말은 당연히 봉쇄정책이다. '봉쇄'를 통해 고립시키고, '고립'을 통해 내부분열을 유도하며, '내부분열'을 통해 스스로 자멸을 유도하는 전략이 봉쇄정책이고 대북제재정책이다. 그런데 햇볕정책의 세번째 항목만을 가지고 대북봉쇄정책과 비교하며 그 전략적 가치를 따져보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언동이다.

변화하는 북한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일관성·자발성·능동성이 핵심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은 가장 적극적인 대북 개입정책이고 가장 능동적인 대북참여정책이다. 이런 정책의 비전과 목적이 공유되고 실천될 때만이 북한과의 '상호주의'가 가능해진다.

햇볕받은 북한에는 자본주의 싹이 텄다

상호주의 원칙은 1:1의 등가성 상호주의가 아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장사꾼식 조치'도 아니다. 우리 측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계 개선 노력에 대해 북한도 일정한 수준의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7월 1일 단행된 '7·1 경제개선조치'이다. 배급제를 폐지했고, 시장을 열었다.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배급제는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가격에 대한 결정권을 전부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시장에 위임하고, 개인이나 협동농장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혁명적인 조치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인이나 농장이 물건을 팔아 이득을 내고, 그 이득을 재투자하고, 그 이득으로 나중에 받게 될 연금까지 내야 한다는 것이 '7·1 경제개선조치'의 내용이었다. 북한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햇볕정책이 갈망했던 진정한 의미의 상호주의이고, 압력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변화하는 북한체제의 참모습'이었다.

햇볕정책의 상호주의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개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가장 좁은 의미의 거래 개념으로 '100원 대 100원'으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런 오류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 9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우리의 입장과, 국제사회 및 미국의 반응을 가감없이 정확하게 북측에게 전달하고 필요한 사항들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5월 10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
ⓒ 연합뉴스 진성철
야금야금 미국 세계전략에 참여했던 참여정부

참여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북미간의 관계로 치환시켜 버렸다. 사실상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고 만 것이다. 이라크 파병 등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전면적으로 동참했고, 북한과 중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전격 합의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갈수록 도를 더해갔고, 패트리어트(PAC-3) 미사일 도입 예정 등으로 이른바 MD(미사일방어) 체제 편입을 기정사실화해갔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했고 대북금융제재에도 정보 제공 등으로 간접 참여했다. 또 쌀과 비료지원을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지 않고 미사일과 연계시켰다. 과연 누구를 향한 제재이고, 누구를 향한 고립이겠는가.

이처럼 미국 세계전략에의 '야금야금식 동참'은 결국 북한에 대한 제재로 비춰졌고, 이는 사실상 햇볕정책의 '반쪽 포기'로 평가되었으며, 남북관계의 신뢰를 깨뜨리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북포용정책의 실패가 북핵위기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해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당사국 모두의 실패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책임이 크다. 미국 조야(朝野)의 평가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 때문"이라고 한다.

당사자인 북한도 핵실험이 햇볕정책 탓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햇볕정책 탓이라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말처럼 '정치적인 자학'이다. 북미관계의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금강산사업으로 2개의 침투루트 무력화

남북경협을 통해 흘러간 각종 지원자금이 북한의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한편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나 현재의 북미관계 등 국제정세와 다양한 원인을 평가해 보면 결코 남북경협이 북한 핵개발을 낳았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정권에 대한 위협, 북한의 말을 빌자면 '사실상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봉쇄정책, 즉 사실상의 저강도전쟁이 북한을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내몰고, 이에 대한 탈출구로 핵실험이라는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미련스러우며 한반도 평화안정에 결정적인 해악을 미칠 그런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북한 핵실험이라는 치명적인 안보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이토록 건강한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햇볕정책의 성과이다. 핵실험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막연히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시킨다면 이는 남북간의 긴장을 더욱 높이고 결과적으로 국가신인도 하락과 투자감소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현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사업은 사실상 북한에 '소극적인 의미의 우리 땅'을 만든 것이다. 철수는 그 땅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한기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을 철수하라고 호들갑이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사업은 사실상 북한에 '소극적인 의미의 우리 땅'을 만든 것이다. 철수는 그 땅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6·25 전쟁 때도 겪었지만 북한군의 주요 침투로는 개성-문산, 철원-포천, 동해안의 3개 축선이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은 2개의 침투루트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중에서도 개성공단은 1번 국도를 따라 최단거리로 서울 북방에 진격하는 '개성-문산 축선의 북한군을 10~15km 가량 뒤로 물러나게 했다.

물론 지만원씨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한 철도-도로연결을 통해 '평화의 회랑'을 만든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침투로를 열어준 것'이라고 기발한 역발상을 하지만, 당시 북한 군부가 철도-도로연결을 엄청나게 반대한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정말 북한이 밉다면, 경제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햇볕정책이 한국의 전유물만도 아니다. 중국은 1979년 1월 대만에 대해 3통(통상·통항·통우) 및 4류(경제·문화·체육·과학기술) 정책을 제의했다. 대만은 중국을 시장으로 얻으면서 경제적 위기를 타개했고, 중국 역시 경제발전을 위한 환경과 자금을 대만으로부터 얻었다.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은 두 국가의 위기상황에서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미사일 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3통4류 정책은 철저히 지속됐다. 이것이야말로 '중국판 햇볕정책'이고 포용정책이다.

중국은 이런 적극적인 개입과 화해협력정책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는 체제를 만들어갔다. 늘상 중국의 '흑묘백묘론'을 이야기하면서도 왜 이런 차원에서는 중국의 실용주의를 배우려 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탓하기는 쉽다. 거기에 더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탓하는 것도 냉전보수세력들에게는 너무나도 '즐거운 밥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냉전보수세력들은 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를 자신이라도 있는 걸까? 석기시대로 되돌아가더라도 다시 조국근대화의 꿈을 실현시킬 자신은 충분한가.

▲ 개성공단 착공식.
ⓒ 연합뉴스
그저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불편하기 때문에 남측과 북측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정책, 남북경협이나 대북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을 중단하라는 것은 정말 근시안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지금의 북한이 밉다면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시켜 북한을 완전한 시장경제체제로 편입시켜 버려야 한다. 도저히 시장경제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미워하는 북한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려는 냉전보수세력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혹여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안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도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북한과의 교류협력 필요성에 대해 동의한 바 있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 철수는 국민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진정한 햇볕정책'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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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기자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서울 성동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