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세량지
2008. 4. 17. 12:16ㆍ건강과 여행
아… ‘이발소 그림’같은 풍경! |
전남 화순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이발소 그림’이라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슈킨의 시, 혹은 어미 돼지가 10여마리가 넘는 새끼 돼지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이건 또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폭포와 울창한 전나무숲, 그리고 아담한 초가집 한 채와 물레방아…. 이발소 그림이란 흔히 ‘제도권 미술의 상투화된 패턴이 저급화돼 대량 생산 및 유통되는 통속 미술’로 정의됩니다. 소재는 상투적이고 기법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발소의 풍경 그림에는 ‘대중이 꿈꾸는 이상향’이 담겨 있습니다. 너무도 낭만적이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런 풍경 말입니다. 그곳이 꼭 그랬습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의 작은 저수지 ‘세량제’. 이른 새벽 그 물가에 섰습니다. 물가에 산벚꽃이 이제 막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했고, 조형적으로 솟은 삼나무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더해줍니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버드나무의 연두색 신록이 어우러졌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무릎을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량제의 이른 새벽 풍경은 이발소 그림과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낭만적인 자연을 인공적으로 배치한 것 같은 그런 비현실적인 느낌. 그곳의 그림을 세밀화로 그려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발소 그림이 되지 싶었습니다. 화순에서는 또 낡은 앨범 속의 풍경도 만났습니다. 동복면 가수리의 하가마을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렸다고 믿었던 냇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낙들이 푸성귀나 과일 따위를 맑은 물에 흔들어 씻기도 하고, 때로는 호미와 낫을 씻거나 빨래도 헹구어내는 그런 시냇가 말입니다. 그 냇물의 하류 쪽에서는 작은 피라미들이 꼬리를 흔들며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햇볕이 나른한 봄날이었습니다. 전라남도의 한가운데 쯤에 있는 화순은 사실 익숙지 않은 여행지입니다. 남쪽으로는 녹차밭으로 유명한 보성, 북쪽으로는 소쇄원으로 대표되는 대나무의 도시 담양, 동쪽으로는 아름다운 갈대숲의 순천과 섬진강이 흘러가는 곡성을 끼고 있지만 정작 화순에는 단박에 떠올릴 만한 여행 목적지가 없습니다. 굳이 꼽아보자면 천불천탑이 있다는 운주사 쯤을 내세울 수 있을까요.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화순 땅을 돌아보면 알게 된답니다. 동복호의 푸른 물과 어우러진 화순적벽의 장쾌함은 물론이거니와, 담양의 정자나 정원에 버금갈 만한 영벽정이며 물염정, 임대정 원림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길 것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조광조가 유배를 당했다가 사약을 받은 곳도, 양팽손이 아들과 함께 그 주검을 몰래 거둬 묻었던 곳도 이곳 화순입니다. 또 화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쌍봉사의 철감선사 부도와 탑비입니다. 지금껏 이름난 절집의 부도를 두루 봐왔지만, 이것만큼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탑비는 또 어떻고요. 비석을 지탱하는 탑비의 거북은 오른발 발톱을 접은 채 살짝 들어올려서 금방이라도 걸음을 내디딜 듯합니다. 1140년이란 가늠할 수 없는 세월 저편, 한 석공의 시간을 뛰어넘은 세련된 미감에 혀를 내두를 밖에요. 이렇듯 화순은 숨돌릴 틈도 없이 새로운 풍경을 불쑥불쑥 내미는 독특한 여행지입니다. 사석에서 한 광역자치단체장이 그랬다지요. ‘화순은 전라도의 숨겨진 보물’이라고요. 단 이틀 동안의 여정만으로도 그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화순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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