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산야. 여명에 부서지는 햇살이 부채살처럼 날개를 펴고 차창에 들어온다.
하늘이 가려질 만큼 높은 수목들이 첩첩 산중을 빼곡히 뒤덮었는데
몇시간을 버스가 올라도 산 위에 또 산이요 산을 돌아가면 그 뒤편에 또 산이다.
수천년 수만년 동안 간직해 온 천연의 비경이 벗겨지듯 휘장을 내린다.
장엄한 산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를 깨달으며 그 유월의 아침에
우리는 한발 한발 요세미티의 품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국의 산이 섬세하고 화려한 가운데 찌를듯 변화무쌍한 첨각의 흐름을 연출한다면
미국의 산은 위풍당당한 가운데 갑옷입은 장군의 어깨처럼 듬직하며 장대한 품세를 갖춘다.
겨울내내 흰눈에 덮혀 고요 속에 머문 채 낮에는 햇살을 받아 물을 내고
밤에는 차가운 바람 맞으며 침묵으로 정진하는 수도승이 곧 나무다.
천년 이천년 세월의 굴레를 이어가며 사계절의 변화 속에도
오로지 하늘 향한 염원을 잎에 달고 그 꿈을 상징하는 열매로서 결과에 이를 뿐
사색과 고독으로 일관하는 나무여.
숲은 나무의 실체를 계절을 통해 몸으로 보여주기만 할 뿐
말하지 않는 행위예술의 전시장이다.
마지막 터널의 어둠을 빠져나오자 드디어 눈 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하늘을 덮을 듯 높은 바위가 우뚝 서서 그대로 산이 되었다.
구비구비 얼마나 긴 세월을 돌아 그 자리에 서 있었나.
멀리 산 아래는 바다처럼 깊은데 숲의 초록은 아침 안개에 뒤섞여 이슬에 젖은 채
아스라히 엷은 미소를 띄며 각기 다른 명암으로 푸른 물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같은 무한의 세계가 발아래 그 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산 아래를 돌아 내려가자 폭포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춤추듯 거대한 물줄기를 토해내며 바위는 불끈 솟아나고 있었다.
봄날 펼쳐지는 오케스트라의 향연처럼 겨우내 못다한 이야기를
그는 밤낮 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간혹 어두운 표정을 짓다가 그러나 때론 환한 웃음을 띄우기도 하면서
바위가 살아온 억겁의 세월을 되새기는
회한의 한마당을 우리들에게 연출하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길어야 일백년 인생인데
수십만년의 인생을 살아왔을 그의 설교는 당당하고도 호탕하게 들렸다.
하늘거리는 치마폭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면사포 폭포.
그 소리는 멀리서 들으면 애절한 여인의 노랫가락이요,
가까이 들으면 장수의 진군 호령이었다.
폭포수가 내려오는 길목에 앉아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담구니
겨우내 쌓였던 눈의 숨결이 느껴졌다.
물은 얼음처럼 차갑게 흐르고 있었지만
정겨운 그의 온정은 계곡에 남아 있었다.
흘러서 가되 바다로 들겠지만 겨울이 오면 다시 눈송이로 또는 빗줄기로 환생하여
어느 산으로든 다시 찾아 내릴 것을 기약하며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찌보면 하늘의 달과 해의 형상처럼 둥그런 원형을 이루는 순환의 원칙이다.
둥그렇게 살아야 하리.
물 흐르듯 달 떠가듯 바람에 실려 가듯 그렇게 편안하게 살아가야 할 일인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각박하고 치열한지....
잠시 현실을 잊고 혼탁한 마음을 두둥실 하늘에 띄운다.
구름 타고 천리 만리 가다 보면 록키도 만나고 알프스도 지나겠지.
지구의 초고봉이라는 에베레스트도 지나면
백두산을 거쳐 마침내 설악봉에 이르겠지.
그렇게 구름에 실려 산 높은 곳,
평생 나무를 끌어안고 살다가
나뭇잎처럼
소리 조차 없이
산에 지리라.
주석 :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만여년전부터 살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불과 100년전에 John Muir라는 사람이 이곳을 처음으로 발견한 뒤 루스벨트 대통령의 방문 후 국립공원에 지정했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북부에 위치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4시간 정도의 운전 거리이며 공원의 전체 면적은 충청북도 정도의 크기로서 방문객이 연간 4백여만명에 달합니다. 요세미티의 특징은 산의 대부분이 큰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암벽이 많으며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과 폭포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이 바위들은 몇백만년 동안 융기를 거쳐왔으며 아직도 그 융기가 진행과정에 있다고 합니다.
중심에 Half Dome라는 바위산이 있고 좌우에 두개의 폭포가 떨어지는데 이중 요세미티 폭포는 2425 피트 길이로서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폭포라고 합니다. 요세미티에는 이외에도 10여개의 다른 폭포가 형성되어 있는데 겨울동안 쌓인 눈이 녹아 생긴 물이 떨어지므로 봄에서 여름까지만 폭포에 물이 내리는 Seasonal fall입니다.
요세미티는 다양한 야생생물의 보고이기도 한데 아침 일찍이나 해가 질 무렵에는 야생동물이 활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사슴은 초원지대에서 볼 수 있으나 야생곰과 고요테는 숲속이나 살다가 겨울철에 식량이 떨어지면 곧잘 민가에 출현한다고 합니다. 인디언 부족들은 곰사냥을 즐겼는데 인디언들이 곰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바로 "요세미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계곡을 요세미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요세미티 계곡에는 2만여마리의 흑곰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11월~ 12월 중에는 곰사냥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요세미티를 크게 나누어 빌리지와 앨 캐피탄을 포함하고 있는 중심 지역인 요세미티 밸리, 만년설의 고원 지대인 털툼 매도우(Tuolumne Meadow), 수령 2천년 이상의 거목들이 즐비한 남쪽의 마리포사 지역 등 세 곳으로 나눕니다. 사계절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장관을 보여주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여름시즌인 6월에서 9월에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데 5월과 6월에는 요세미티 폭포수가 일품이며 5월부터는 백합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피기 시작합니다. 10월부터 11월 가을에는 단풍에 물든 산을 볼 수 있으나 기상 변화가 심해 관광객은 줄어드는 시점으며 겨울에는 곳곳이 폭설로 인해 폐쇄 되므로 관광객 발길이 뜸한 시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