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려 구속했다고
2009. 1. 14. 14:09ㆍ정치와 사회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려 구속했다고?
[기고]언제 구속기준이 바뀌었나 모르겠지만…
법원은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그 사유로 '외환 시장 및 국가 신인도에 대한 영향력'을 들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인신 구속의 기준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아니다. 인신의 자유라는 인권의 대원칙도 구속과 불구속의 기준이 못된다. '국가 신인도'라는 새로운 이름의 '우상'이야말로 구속의 기준점이다.
공익적 가치로서 국가신인도
많은 누리꾼들과 개혁적 언론들은 미네르바의 글이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쳤을 리 없다며 정부와 법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조차도 국가 신인도를 중대한 공익적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논리는 검찰과 법원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과연 국가 신인도는 우리가 기필코 보호해야만 하는 최고의 법익인가? 검찰은 왜 법익으로서의 국가 신인도를 상정했을까? 과연 국가 신인도란 우리 모두가 인정할만한 객관성 있는 법익이고,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공익적 가치를 대변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국가 신인도는 IMF 외환 위기를 통해 익숙해진 개념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한 나라의 신뢰성, 장래성 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이른바 무디스(Moody's)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위험도, 국가신용도 등 다양한 분야의 평가를 통해 주기적으로 측정, 발표해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가 신인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국가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이고 신용등급은 떨어지는 것이며, 국가의 채무이행능력에 대한 투자자의 의심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국가 신인도는 한 국가의 경제운용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되며, 따라서 국가신인도 상승은 국가의 공익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10일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Fitch)사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은행권의 디레버리징(신용 축소)이 대외 신인도에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 정부와 언론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하락이 당장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평가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획득한 것이다. IMF라는 트라우마가 외환위기에서 경제위기로, 다시 국가 신인도의 위기로 이어지면서 어느새 우리 곁엔 '국가 신인도'라는 절대적 우상이 탄생한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믿을 수 있나?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은 이번 금융위기의 출발점인 모기지담보부증권(MBS)에 대해 그리 오래전도 아닌 시점까지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부여해놓고 있었다. 뒤늦게서야 등급을 조정했지만, 이미 시장엔 한차례 쓰나미가 지나간 다음이었다. 우리 정부와 검찰과 법원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이 시대의 최고의 법익으로, 거부할 수 없는 절대권력으로 평가하는 국가 신인도를 평가하는 평가기관 자체에 대한 신뢰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 사례였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신용평가기관들을 규제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신용평가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했다. 신용평가사들의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용평가사를 전부 없애는 것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보이며 "왜 미국인들만 (신용평가 업무를) 해야 하느냐?"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미국 하원의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크리스토퍼 셰이스 의원은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 등 신용평가사의 최고경영자들을 향해 "더는 당신들의 신용평가를 믿을 수 없다"고 호통쳤다. 또 청문회에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나 마찬가지"라는 한 무디스 직원의 전자우편이 공개돼, 내부에서조차 등급 부풀리기 등 부실한 신용평가 과정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부의 국가신인도 악용
물론 시장에서의 한 평가기준으로 국가 신인도를 아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신인도는 곧 국익'이라는 법적 명제가 성립된 이상 국가 신인도의 왜곡, 과장, 혹은 거품이 없는지 우리는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정부가 이처럼 국가신인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종의 우상화 시킨 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 있어서 국가 신인도는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닌, 정부만이 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때론 방어하는 무기 그 자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볼까?
지난 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들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 때 이명박 행정부는 국가 신인도가 하락되기 때문에 재협상 절대 없다고 했다. 다른 한편 그간 정부는 재벌의 불법행위가 문제가 될 때마다 이를 방어하는 담론으로 국가 신인도를 어김없이 동원했다.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사건 때, 정부와 언론은 국가 신인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2007년 11월 '삼성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당시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현 상태에서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할 경우 수사 대상이 되는 기업과 국가기관의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추되고, 국가경제 및 국가 신인도에도 심대한 타격이 있을 수 있다"며 삼성특검 반대 논리로 국가 신인도를 끌어들였다.
정부는 노동계의 파업을 저지하기 위한 담론으로도 악용해왔다. 노동계의 파업은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급감하여 경제와 민생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협박은 고전적 레퍼토리가 됐다.
경제제일주의와 순위에 대한 맹신
정부의 국가신인도에 대한 맹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제일주의, 경제지상주의 정책의 이면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중요한 가치도 훼손될 수 있다고 보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돼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차 한참 전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 경제지상주의는 이 정부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인수위에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발족됐고 2월에는 '대통령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내놓고 있는 비전은 오로지 국가경쟁력이란 오직 경제성장을 위한 경쟁력에 다름 아니다.
사실 국가경쟁력이란 대체로 경제 및 비경제적 요소가 모두 포함된 복합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갖 국가 경쟁력 순위에, 국가 신인도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순한 참고지표가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성적표이다. 판결문이다.
폴 크루그먼은 "국가는 기업과 달리 단순히 지표하나로 핵심내용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경쟁력 개념은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사물을 한줄로 세울 수 있고, 순위를 매길 수 있고, 성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발상, 이것이야말로 우상을 잉태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언론자유 확대가 국가신인도 높인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는 생각하고, 읽고 쓰고 말하고
이제 대한민국에서 인신 구속의 기준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아니다. 인신의 자유라는 인권의 대원칙도 구속과 불구속의 기준이 못된다. '국가 신인도'라는 새로운 이름의 '우상'이야말로 구속의 기준점이다.
공익적 가치로서 국가신인도
많은 누리꾼들과 개혁적 언론들은 미네르바의 글이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미쳤을 리 없다며 정부와 법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조차도 국가 신인도를 중대한 공익적 가치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논리는 검찰과 법원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과연 국가 신인도는 우리가 기필코 보호해야만 하는 최고의 법익인가? 검찰은 왜 법익으로서의 국가 신인도를 상정했을까? 과연 국가 신인도란 우리 모두가 인정할만한 객관성 있는 법익이고,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공익적 가치를 대변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국가 신인도는 IMF 외환 위기를 통해 익숙해진 개념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한 나라의 신뢰성, 장래성 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이른바 무디스(Moody's)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위험도, 국가신용도 등 다양한 분야의 평가를 통해 주기적으로 측정, 발표해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가 신인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국가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이고 신용등급은 떨어지는 것이며, 국가의 채무이행능력에 대한 투자자의 의심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국가 신인도는 한 국가의 경제운용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되며, 따라서 국가신인도 상승은 국가의 공익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10일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Fitch)사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은행권의 디레버리징(신용 축소)이 대외 신인도에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 정부와 언론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하락이 당장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평가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획득한 것이다. IMF라는 트라우마가 외환위기에서 경제위기로, 다시 국가 신인도의 위기로 이어지면서 어느새 우리 곁엔 '국가 신인도'라는 절대적 우상이 탄생한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믿을 수 있나?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은 이번 금융위기의 출발점인 모기지담보부증권(MBS)에 대해 그리 오래전도 아닌 시점까지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부여해놓고 있었다. 뒤늦게서야 등급을 조정했지만, 이미 시장엔 한차례 쓰나미가 지나간 다음이었다. 우리 정부와 검찰과 법원과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이 시대의 최고의 법익으로, 거부할 수 없는 절대권력으로 평가하는 국가 신인도를 평가하는 평가기관 자체에 대한 신뢰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 사례였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신용평가기관들을 규제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신용평가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했다. 신용평가사들의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용평가사를 전부 없애는 것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보이며 "왜 미국인들만 (신용평가 업무를) 해야 하느냐?"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미국 하원의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크리스토퍼 셰이스 의원은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 등 신용평가사의 최고경영자들을 향해 "더는 당신들의 신용평가를 믿을 수 없다"고 호통쳤다. 또 청문회에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나 마찬가지"라는 한 무디스 직원의 전자우편이 공개돼, 내부에서조차 등급 부풀리기 등 부실한 신용평가 과정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부의 국가신인도 악용
물론 시장에서의 한 평가기준으로 국가 신인도를 아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신인도는 곧 국익'이라는 법적 명제가 성립된 이상 국가 신인도의 왜곡, 과장, 혹은 거품이 없는지 우리는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정부가 이처럼 국가신인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종의 우상화 시킨 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 있어서 국가 신인도는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닌, 정부만이 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때론 방어하는 무기 그 자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볼까?
지난 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들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 때 이명박 행정부는 국가 신인도가 하락되기 때문에 재협상 절대 없다고 했다. 다른 한편 그간 정부는 재벌의 불법행위가 문제가 될 때마다 이를 방어하는 담론으로 국가 신인도를 어김없이 동원했다.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사건 때, 정부와 언론은 국가 신인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2007년 11월 '삼성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당시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현 상태에서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할 경우 수사 대상이 되는 기업과 국가기관의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추되고, 국가경제 및 국가 신인도에도 심대한 타격이 있을 수 있다"며 삼성특검 반대 논리로 국가 신인도를 끌어들였다.
정부는 노동계의 파업을 저지하기 위한 담론으로도 악용해왔다. 노동계의 파업은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급감하여 경제와 민생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협박은 고전적 레퍼토리가 됐다.
경제제일주의와 순위에 대한 맹신
정부의 국가신인도에 대한 맹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제일주의, 경제지상주의 정책의 이면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중요한 가치도 훼손될 수 있다고 보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돼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차 한참 전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러한 경제제일주의, 경제지상주의는 이 정부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인수위에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발족됐고 2월에는 '대통령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내놓고 있는 비전은 오로지 국가경쟁력이란 오직 경제성장을 위한 경쟁력에 다름 아니다.
사실 국가경쟁력이란 대체로 경제 및 비경제적 요소가 모두 포함된 복합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갖 국가 경쟁력 순위에, 국가 신인도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순한 참고지표가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성적표이다. 판결문이다.
폴 크루그먼은 "국가는 기업과 달리 단순히 지표하나로 핵심내용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경쟁력 개념은 국가에 적용될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사물을 한줄로 세울 수 있고, 순위를 매길 수 있고, 성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발상, 이것이야말로 우상을 잉태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언론자유 확대가 국가신인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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