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ㅡ 한비야

2009. 3. 24. 19:38정치와 사회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

한비야구호현장에서 만난 하나님

월드비전 긴급구조 팀장

 

작년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의 일이다

130만명에 대한 긴급구호식량 배분차 갔는데 막상 가보니 식량만큼 시급한 문제는 물가였다

내 숙소는 백인농장 주인이 살던 정원 딸린 저택이지만 수돗물이 안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를 잠비아에서 수입해 왔는데 정부가 전기값을 내지 못해 그렇다고 했다

얼마나 불편할까,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그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의 첫날, 부엉이 체질인 나는 밤늦게까지 뭘 좀 하고 싶었지만

전기가 안 들어와 춧불 아래서 저녁밥을 먹은 후 일기만 겨우 쓰고

11시도 되지 않아 잠자리에 들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이 떠지는게 아닌가

동트기 직전의 하늘은 장엄하고 경건했다

아침기도를 하려고 하나님, 하고 불렀더니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나님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 것 같았다

고백컨대 내 평생 넉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두 시간씩 기도하고 성경 읽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성경말씀은 꿀처럼 달고 가시처럼 따끔했다

특히 시편과 잠언이 그랬다

더 자고 싶어도 성경이 읽고 싶어 벌떡 일어난 날도 많았다

하루 종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현장 일을 하지만

이 아침 두 시간 만은 파견근무 중이 아니라 영성훈련을 위해 여기에 온 것 같았다

주일예배도 내게는 이례적이었다

첫 번째 맞는 주일에 현지직원이 <다이내믹한> 자기 교회에 가자고 권했다

아프리카에 왔으니 아프리카식 예배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가 다니는 오순절 교회에 갔다

예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온몸을 흔들면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성령을 받아 쓰러지는 일이 3시간 내내 계속되었다

그날 나오면서 결심했다

이 교회에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그러나 나는 파견근무 내내 그 교회에만 나갔다

40대 피끓는 목사님의 단순명료한 설교메시지에 끌렸던 것이다

한번은 목사님이 설교 중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 손들어보라며,

그런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다고 하셨다

쑥쓰러워 손을 들지는 않았지만 약간 우쭐해졌다

그즈음 내 기도 제목은 나의 50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였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시키실 일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

아침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나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왜 하나님은 이럴 때 속시원하게 말씀을 안 해 주시는 걸까?

파견 근무 기간이 끝나고 짐바브웨에서의 마지막 주일 예배 시간이었다

강단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춤을 춰야 할 목사님이

이상하게도 조용하셨다

합창단에게도 조용한 곡을 부탁하면서

"오늘은 우리 모두 기도 좀 해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짐바브웨 위정자들을 위하여,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등 한 제목 당 십 분 정도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느닷없이

"다음 10년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셨다

깜짝 놀랐다 바로 내 기도제목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건 그 다음 말이었다

"영어나 쇼나어(현지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자기 모국어로 기도하십시오"

목사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을리가 없다

외국인인 나의 존재도 모를 뿐더러 이층 구석에 박혀있는 내가 보일 리도 없었다

놀란 마음으로 조용히 5분쯤 묵상기도를 하고 있는데

 아무 이유없이 굵은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 때, 내 귀에 어떤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

아,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드디어, 마침내 내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순종하겠나이다"

이 두마디를 말했을 뿐인데 또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남들도 나처럼 울보가 되는 건가?
짐바브웨에서 하나님께 직접 가슴 벅찬 명령을 받긴 했지만

솔직히 어디로 가라시는지 누구의 눈물을 닦아 주라시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잡음 때문에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음성을 잡음없이 분명히 들으려면 기도로 주파수를 맞추고

성경읽기로 볼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반드시 들려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 멋진 하나님!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국민일보

 

 

한비야의 지구촌 긴급구조 상황

이라크 ㅡ 전쟁구호

이란. 파키스탄 ㅡ 지진 구호

아프가니스탄 ㅡ 내전 구호

수단 및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ㅡ 기근 구호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ㅡ 쓰나미 구호

볼리비아 ㅡ 홍수구호

 

 

홀로 떠나는 여행     이것은 나 자신과의 여행이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니까

 

여행 중에는 참 많은 일이 벌어진다

그 사건마다에서 얻은 경험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만들어간다

 

멕시코에서 두달간 장마비를 맞고 다니다보면 서너 시간쯤 비 맞는 건 아무 것도아니다

네팔의 20박 21일 등산을 하고 나면 하루 14시간 산행은 차라리 휴식이다

7박 8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나면 서울 부산 간 기차여행은 눈 깜빡할 사이다

인도 슬럼가에서 납치당할 뻔 했던 사람에게는 서울 밤거리는 안방처럼 편안하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간을 키우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한계의 지평선을 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한 비야(1958-) 서울

출처 : 동해물과 백두산이
글쓴이 : 아침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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