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1666년 과수원의 사과나무 아래서 졸고 있던 뉴턴의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졌다. 잠에서 깬 뉴턴은 사과가 왜 아래로 똑바로 떨어지는 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데에는 어떤 힘, 즉 중력이 작용하며 그 힘은 행성을 포함해 우주의 모든 만물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화는 정말로 사실일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말년에 뉴턴 자신은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적어도 네 번은 주장했다.
‘기적의 해’는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고작’ 중력 따위의 문제로 과부하가 걸리기에는 너무도 뛰어났다. 그는 이 시기에 스물 두 개나 되는 문제들을 동시에 연구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이 유율법이라고 부른 계산법 즉 오늘날의 미적분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는 빛의 성질도 연구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빛은 흰색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빛이 원래는 여러 색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프리즘을 써서 증명했다. ‘기적의 해’ 동안 그를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만약 뉴턴이 캠브리지에 남아 있었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의 나이 스물 네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흑사병이 잠잠해지자 대학의 문도 다시 열렸고, 뉴턴도 캠브리지로 돌아왔다. 이제 그는 특별 연구원 자격으로 급여를 받아가며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연구에만 몰두했다. 교수 식당에서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고, 당시의 유행처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도 없었다. 1669년 수학 교수인 아이작 배로가 루카스 석좌 교수직을 사임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뉴턴에게 물려주었다. 보수도 많아졌고, 강의는 일주일에 단 한번만 해도 될 정도로 의무도 줄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연구에만 몰두했다. 강의에도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 시절 그는 먹는 시간이나 자는 시간까지도 아까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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