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X Vs. 마틴 루터 킹

2009. 9. 2. 17:11정치와 사회

맬컴X Vs. 마틴 루터 킹

만약 일제 강점기 기간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며, 비폭력 인권운동을 하는 지도자가 광장에 사람을 모으고 거기서 사람들이 'We shall overcome'과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불렀다면 그 지도자는 오늘날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아니면, 조선인의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인권을 찾기 위해 무장도 불사해선 안된다는 지도자가 있었다면 그 사람은 오늘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 뭐 가정이라는게 덧없고 쓸데없는 것이긴 하지만 가끔 이런 공상을 하곤 한다. 이런 공상을 하다보면 오늘날까지 상반된 평가를 받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맬컴 X의 평가는 반대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동시대를 살면서 같은 목적으로 가지고도 상반된 위치에 있었던 두 사람, 맬컴 X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정신과 사상적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시간상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들의 했던 말과 행동을 토대로 그들의 생각과 미국사에서 그들이 미쳤던 영향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종교인이자 흑인으로서 그들의 삶에 치열하게 다가가고자 했던 흔적들을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서점에서 이미 절판된 이 책에 대해 이제야 서평을 쓰는 것은 뭣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강추다. 이 두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더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책이 아닐까 싶다. 혹시 대구에 산다면 시내 교보문고에서 재고처분 비슷하게 반값에 팔고 있으니 얼른 집어오시길. ㅎㅎ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고, 생의 마지막에는 생각이 바뀌어 서로의 사상에 좀 더 다가가려고 노력했으며, 극적인 죽음을 당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비슷하다. 그들의 추구했던 방법론은 달랐지만 진정 이상을 위해서 말하고 움직였던 그들이기에 오늘날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비슷한지 정말 면밀히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그들의 사상적 변화까지도 면밀히 추적하고 그들의 생각의 변화를 따라가며 관찰하며 그들의 한계까지도 지적하고 있다.

맬컴 X는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사상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게다가 그가 성지순례를 하고 난 이후에는 '백인은 모두 악마'라는 독단적인 입장을 버리고 범세계적인 인권사상을 가지게 됨으로서 자신의 과거와 한계를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들의 묘사에 대해서는 비교적 빈약하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들이 죽었는지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아마 미국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 대신 그들의 생각과 사상의 정확한 모습, 변화 그리고 미국 사회의 영향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부분은 약간 애석했지만 역시 좋은 책인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p451) 그들 둘 다 성차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이 그들의 한계라고 지적하는 저자의 견해는 조금 에러였다. 성차별은 당시에 인지 할 수 있는 인권운동도 아닌듯 한데, 이것을 가지고 그들의 한계라고 하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민주주의를 시행하지 않은 부분이 업적의 한계라고 지적하는 꼴이랄까. ㅎㅎ

일전에 방문한 일본의 이시노마키 시에 가면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 선생의 현창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生きべくんば民衆と共に 死すべくんば民衆の為に"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이 문구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 비석을 직접 찾아갔었다. 진정 민중을 위한 지식인의 자세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두 사람은 이 글 그대로의 삶을 살다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http://blog.yes24.com/document/1524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