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왜 스티브잡스가 없을까?
2010. 2. 6. 03:19ㆍ경영과 경제
우리에겐 왜 스티브잡스가 없을까?
시사IN | 고재열 기자 | 입력 2010.02.04 10:48
지난 1월28일 새벽 3시, 애플교 신자들이 신봉하는 잡스신(애플 CEO 스티브 잡스)께서 강림하셨다. 지난번에 가지고 내려와 8000만 대를 판매한 아이팟터치와 아이폰 복음에 이어 이번에 들고 내려온 IT복음은 태블릿PC인 아이패드였다. 미국의 신자들은 물론 밖에 있는 애플교 신자들까지 인터넷 생중계를 보며 잡스신의 IT복음에 귀 기울이며 예를 표했다.
국도 마찬가지였다. 박지성 선수가 출전하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정전도 아닌데,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세계선수권대회도 아닌데, IT산업 종사자들과 기자들과 얼리어답터와 블로거들이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소회를 트위터와 블로그와 각종 게시판에 쏟아냈다. 찬양 일색의 리뷰는 아니었지만 아이패드는 한동안 IT 이슈를 장악했다.
스티브 잡스의 이 부흥회에 대해 IT 전문 블로거 아거 씨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의 지휘자로, 각 부서의 책임자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회사나 개발자들을 소개하는 사회자로,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엔터테이너로, 소비자의 머리에 저건 꼭 사야 하는 경이롭고 믿을 수 없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최면술사로, 그리고 경쟁업체의 전의를 상실케 만들어버리는 선봉장으로 각인된다"라고 평가했다.
아이패드는 아이폰에 이은 또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단숨에 아이패드는 e-book 리더기인 아마존 킨들과 미니노트북인 넷북을 잠식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특히 아이맥-맥북-아이팟터치-아이폰으로 이어지는 '아이라인' 구매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또 하나의 '신상'이었다. 100조원 매출에 10조원 순익을 달성한 삼성전자에 비해 기업가치가 두 배에 이르는 애플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옴니아2는 25만 대 내외의 비슷한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다르다. 아이폰이 유행으로 부상하는 것을 옴니아2의 마케팅이 겨우 따라잡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IT기업 F & AS의 김성주 대표는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문화를 선물했고 삼성은 우리에게 광고를 선물했다. 애플의 기술이 아니라 애플의 철학에 열광한 것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삼성에는 답이 없다"라고 말했다.
연이은 신기술 쇼크에 IT업계에선 정보통신부를 해체하는 등 IT산업을 경시했던 MB 정부에 그 화살을 돌렸다. 홍익세상 노상범 대표는 "IT산업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무정하다"라고 꼬집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 정부는 눈에 보이는 삽질만 중시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삽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비난했다.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인데, 반도체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 디스플레이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왜 우리는 아이폰과 아바타를 못 만드는 것일까?
IT 전문가들은 IT산업의 경쟁력이 하드웨어 경쟁력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 시대로 옮겨지는 국면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삼성이나 LG가 주로 취한 전략은 선진국 기업들이 시장을 개척하면 가격경쟁력과 기술경쟁력으로 이를 잠식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후발주자로서 어쩔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을 따라잡고 IT업계의 리더가 된 뒤에 삼성과 LG는 길을 열지 못했다. 길을 개척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실패는 트렌드를 선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삼성이나 LG가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것은 시장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소비자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읽지 못하는 것은 소비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향을 설정할 수 없었다. 현대 IT기술의 주요한 요소 중 하나는 UI(User Interface), 즉 소비자와의 소통이다. 이것이 바로 삼성과 LG가 뒤처지는 이유다.
기술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이는 소비자의 요구를 읽을 수 있는 기업만이 구현해낼 수 있다. 현대 IT기업에서 UI와 함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UX(User Experience)다. 소비자 처지에서 서비스를 평가하는 것이다. 구글 크롬 운영체제(OS)는 SaaS(Software as a Service)를 구현하는 데 프로그램을 가볍게 해서 부팅 속도를 7초 이내로 맞추었다.
그동안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를 기만해왔다. 무료 인터넷인 와이파이(Wi-Fi) 서비스를 막았던 것, 아이폰 출시를 막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기만하는 데 소통하려는 자비로운 소비자는 없다.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소홀한 것은 소통 부재의 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 대기업은 그동안 독점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능력만을 키웠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최소 세금을 내고 경영권을 세습하는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것 말고는 국제경쟁력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윤리적인 기업에 감동하는 어리석은 소비자는 없다.
대기업 스스로 소비자와 소통하려는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는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트위터를 시작했다. 소프트뱅크가 나아갈 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손 회장은 트위터의 효용성을 절감하고 "트위터는 좌뇌와 우뇌말고 우리의 뇌 밖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외뇌'다"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기자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속성에 비추어보았을 때 공간적 개념인 '외뇌'보다는 집단지성의 특성을 반영한 '합뇌'라는 개념이 적합하자고 지적하자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삼성이나 LG에서는 손 회장과 같은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소비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은 기업의 판단에 있어서 유연성을 길러준다. IT나 모바일 산업에서는 이런 유연성이 중요하다. 조그만 기술의 차이보다는 기술을 알맞게 변형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통합적 판단력을 지닌 리더십을 원하는데 우리 대기업은 이에 취약하다. 단지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협력업체들에게 과업을 맡기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에만 익숙할 뿐이다. 소비자를 읽고 이에 호응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젬병이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처럼 혹은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처럼 우리 대기업 CEO들이 자신 있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이윤 이상의 철학을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을 갖지 못한 기술은 결국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가 끝까지 지켜줄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제품의 매력은 단편적인 기술력 보다는 철학에 기인한다. "단순함이 최고의 세련됨이다"라고 말하는 애플이나 "우리는 사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구글의 철학 같은 것을 국내 기업은 제시하지 못한다.
신뢰에 기반해 소비자와 함께 만든 철학은 상상력을 낳는다. 기업과 소비자가 같은 꿈을 꾸면서 상상력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옴니아2가 아이폰에 완패한 것에 대해서 IT 전문가들은 기술력이 아니라 상상력에서 졌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찾는 기술을 개발한 아이폰의 완승이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을 많이 해서 신제품 출시에 대한 그의 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밤잠을 설친 것이 아니다. 그 동영상을 관람하면 경품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 제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제품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그려주는 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꿈에 취하기 위해 사람들은 단잠을 양보했다. 이것이 국내 기업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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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마찬가지였다. 박지성 선수가 출전하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정전도 아닌데,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세계선수권대회도 아닌데, IT산업 종사자들과 기자들과 얼리어답터와 블로거들이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소회를 트위터와 블로그와 각종 게시판에 쏟아냈다. 찬양 일색의 리뷰는 아니었지만 아이패드는 한동안 IT 이슈를 장악했다.
애플은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내놓아 IT 시장에 또 한 번 파란을 예고했다. |
아이패드는 아이폰에 이은 또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단숨에 아이패드는 e-book 리더기인 아마존 킨들과 미니노트북인 넷북을 잠식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특히 아이맥-맥북-아이팟터치-아이폰으로 이어지는 '아이라인' 구매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또 하나의 '신상'이었다. 100조원 매출에 10조원 순익을 달성한 삼성전자에 비해 기업가치가 두 배에 이르는 애플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옴니아2는 25만 대 내외의 비슷한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다르다. 아이폰이 유행으로 부상하는 것을 옴니아2의 마케팅이 겨우 따라잡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IT기업 F & AS의 김성주 대표는 "스티브 잡스는 우리에게 문화를 선물했고 삼성은 우리에게 광고를 선물했다. 애플의 기술이 아니라 애플의 철학에 열광한 것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삼성에는 답이 없다"라고 말했다.
연이은 신기술 쇼크에 IT업계에선 정보통신부를 해체하는 등 IT산업을 경시했던 MB 정부에 그 화살을 돌렸다. 홍익세상 노상범 대표는 "IT산업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무정하다"라고 꼬집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 정부는 눈에 보이는 삽질만 중시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삽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비난했다.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인데, 반도체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 디스플레이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왜 우리는 아이폰과 아바타를 못 만드는 것일까?
IT 전문가들은 IT산업의 경쟁력이 하드웨어 경쟁력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 시대로 옮겨지는 국면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삼성이나 LG가 주로 취한 전략은 선진국 기업들이 시장을 개척하면 가격경쟁력과 기술경쟁력으로 이를 잠식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후발주자로서 어쩔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을 따라잡고 IT업계의 리더가 된 뒤에 삼성과 LG는 길을 열지 못했다. 길을 개척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실패는 트렌드를 선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삼성이나 LG가 시장을 개척하지 못한 것은 시장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소비자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읽지 못하는 것은 소비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향을 설정할 수 없었다. 현대 IT기술의 주요한 요소 중 하나는 UI(User Interface), 즉 소비자와의 소통이다. 이것이 바로 삼성과 LG가 뒤처지는 이유다.
기술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이는 소비자의 요구를 읽을 수 있는 기업만이 구현해낼 수 있다. 현대 IT기업에서 UI와 함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UX(User Experience)다. 소비자 처지에서 서비스를 평가하는 것이다. 구글 크롬 운영체제(OS)는 SaaS(Software as a Service)를 구현하는 데 프로그램을 가볍게 해서 부팅 속도를 7초 이내로 맞추었다.
그동안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은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를 기만해왔다. 무료 인터넷인 와이파이(Wi-Fi) 서비스를 막았던 것, 아이폰 출시를 막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기만하는 데 소통하려는 자비로운 소비자는 없다.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소홀한 것은 소통 부재의 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 대기업은 그동안 독점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능력만을 키웠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최소 세금을 내고 경영권을 세습하는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것 말고는 국제경쟁력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윤리적인 기업에 감동하는 어리석은 소비자는 없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
소비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은 기업의 판단에 있어서 유연성을 길러준다. IT나 모바일 산업에서는 이런 유연성이 중요하다. 조그만 기술의 차이보다는 기술을 알맞게 변형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통합적 판단력을 지닌 리더십을 원하는데 우리 대기업은 이에 취약하다. 단지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협력업체들에게 과업을 맡기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에만 익숙할 뿐이다. 소비자를 읽고 이에 호응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젬병이다.
애플 CEO 스티브 잡스처럼 혹은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처럼 우리 대기업 CEO들이 자신 있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이윤 이상의 철학을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을 갖지 못한 기술은 결국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가 끝까지 지켜줄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제품의 매력은 단편적인 기술력 보다는 철학에 기인한다. "단순함이 최고의 세련됨이다"라고 말하는 애플이나 "우리는 사악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구글의 철학 같은 것을 국내 기업은 제시하지 못한다.
신뢰에 기반해 소비자와 함께 만든 철학은 상상력을 낳는다. 기업과 소비자가 같은 꿈을 꾸면서 상상력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옴니아2가 아이폰에 완패한 것에 대해서 IT 전문가들은 기술력이 아니라 상상력에서 졌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찾는 기술을 개발한 아이폰의 완승이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을 많이 해서 신제품 출시에 대한 그의 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밤잠을 설친 것이 아니다. 그 동영상을 관람하면 경품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 제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제품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그려주는 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꿈에 취하기 위해 사람들은 단잠을 양보했다. 이것이 국내 기업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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