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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해 논란이 일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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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분단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된 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노 망명객의 죽음에 먼저 조의를 표한다. 같은 날 평양에서는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맞이해 성대한 경축행사가 벌어졌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화려하게 그 존재를 드러냈다. 참 얄궂은 인연이다.
10월 10일에 일어난 이 두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논쟁들이 벌어졌다.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국립현충원에 안치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이 두 논란에 말을 보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논리와 근거를 갖고 있겠지만 논쟁을 지켜보면서 공히 느낀 점은 북한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념적 사고와 대립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새삼스런 자각이었다.
황장엽의 남북관계 해법, 김대중 노무현과 다르지 않았다
우선 황장엽 전 비서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분단 이후 남한에 망명한 북한인사 중 최고위급이었던 황장엽 전 비서. 우리 사회에서 그에게 부여될 존재 의미와 활동은 그가 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동안 그는 북한체제, 특히 김일성 사후의 북한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대북정책과 관련된 남한사회 내부의 분열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분열에 대한 질타는 주로 북한과의 대화와 화해, 협력을 주장하는 세력을 향한 것이었고 그의 질타에는 '북한의 실상을 모르는 배부른 철부지'라는 비판이 깔려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이 즐겨 쓰는 '친북좌파'라는 프레임이 그의 사고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일단이다.
이런 그의 언행을 보면 황장엽 전 비서는 남한사회의 일부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쟁도 불사하는 대북압박 정책을 통해 북한정권을 붕괴 시키는 것만이 분단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이것이 우리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이 그에게 부과한 이미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황장엽 전 비서는 지난 4월 1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초청 세미나에 참석해 "중국이 계속 지지하는 한 북한의 급변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식 개방을 하도록 하는 게 중국과 미국의 이익에 맞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남북통일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때 해야"하며 "(개혁개방이) 확실하게 되면 남북 연방제를 실시하는 게 낫다"는 주장을 덧붙였다. 이런 현실진단과 처방은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이 그렇게 혐오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과 달리 보수 세력의 아이콘이 되어
하지만 황장엽 전 비서는 자신의 이런 생각과는 무관하게 북한과의 대결정책을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아이콘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당분간 조갑제, 서정갑과 같은 울림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내부의 정치적 갈등구조와 그것에 덧씌워진 이념적 외투가 이런 분열적 양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물론 남한으로의 망명을 택한 그가 지닐 수밖에 없는 북한 권력층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당연히 이런 분열적 양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초청 세미나에서 황장엽 전 비서는 남한으로 오게 된 계기와 관련해 90년대 중후반의 극심했던 식량난을 언급했다. 인민을 굶기는 체제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는 남한에 온 뒤에도 자신이 이론적으로 가다듬은 주체사상에 대해 여전히 애착을 보였다.
지난 9월 30일자로 작성된 그의 마지막 강연문에는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합니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강연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국가에 누가 충실한가를 잣대로 평가하고 애국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이 땅의 40대 이상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정서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우리가 경험했듯이 개인을 초월한 국가는 현실정치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표상되고 의인화된다.
이처럼 황장엽 전 비서의 언명 속에서 드러나는 사유의 핵심은 국가주의다. 그래서 감히 추측해 본다. 그가 북한을 등지고 비판했던 것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지 정치적, 시민적 자유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라고. 그가 남한사회의 국론분열을 그렇게 걱정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한 것도 기실 이런 사유의 연장이 아닐까 라고.
생전의 고인을 보며 90년대 초 월북을 감행했던 안호상 전 문교부 장관이나 북일 수교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주민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 간사장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황혼을 연상시킨다. 일제 하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맞서기 위해, 또 해방 이후에는 나라의 부강한 발전을 위해 개인보다는 전체, 곧 국가를 앞세울 수밖에 없었던 한 시대의 황혼 말이다.
"안보 위험상황이지만 북한은 협력대상"... 이율배반적 국민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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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지난 28일 열린 당대표자회에 참가한 모습이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
ⓒ 로이터=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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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비서의 죽음과 김정은의 3대 세습 문제로 논란이 뜨겁던 10월 11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이 여론조사는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이후 통일부가 실시한 것으로 북한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안보의식을 묻는 내용이었다.
결과를 간단히 요약해 보면 조사대상의 63.5%가 안보상황이 '위험하다'고 응답했고 52%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하지만 이어진 설문에서 조사대상의 58.8%와 13.4%가 각각 북한을 '협력대상'과 '지원대상'이라고 응답했고 북한을 '적대대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1.7%에 불과했다. 또한 조사대상자의 71.1%가 '통일을 희망한다'라고 응답했다.
우리 국민이 보여주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신분열증인가? 아니면 북한체제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탈 이념적이고 실용적인 사고의 표현인가?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를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논란이 한창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정치현실과 보편적인 가치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걸 모르는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결국 문제는 그 비상식적인 현실과 체제를 변화시킬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지혜로운 국민의 수준에 부합하는 생산적인 논쟁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