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6 재평가
2011. 3. 15. 04:26ㆍ정치와 사회
이 자리에서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 이부영 준비위원장은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 중동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 혁명 관련 국제 정세의 지각변동,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세력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그러나 박정희 분단 독재의 후예들은 미국의 패권 구도가 변치 않을 것으로 믿으면서 통일보다는 분단을, 화해 공존보다는 대결을 추구해왔다"고 박정희 정권을 '분단 독재'로 규정한 뒤 이를 "극복해야 할 최악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5.16쿠데타 50년을 맞는 지금, '박정희 유산'을 제대로 평가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MB정부 들어 헌정-민주주의 유리…MB는 박정희의 마지막 '상속자'?
이날 토론회에서 '박정희 시대의 정치사적 평가' 분야 발제를 맡은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정치학에서 박정희 시대 연구는 주로 헌법과 법률이 배제된 정치나 선거, 제도, 근대화, 리더십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 왔다"며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통치가 헌법과 법률을 근저부터 파괴했으면서 시종일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억압했던 지극히 모순적인 통치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는 이해할 수 없는 학문적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의 헌법 연구는 "정치 없는 헌법", "민주주의 없는 법치" 연구에 치중했고, 정치학에서도 헌법과 박정희의 통치를 분리해서 봐 왔다는 것이다.
▲ 2007년 11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분향하고 있다. ⓒ뉴시스 |
박 교수는 "최근 긴급조치 1호와 4호가 위헌으로 판결된 시점에서 유신헌법과 박정희 체제의 기여자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후 "5.16헌법, 3선 개헌, 유신개헌을 통해 박정희 체제는 국민 주권 및 대표의 영역을 위축시켰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연이은 개헌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의회 구성의 대표성, 민주성, 주권성은 유신헌법 등이 규정해 놓은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의 권력집중,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임의조직'인 정당의 통제를 받는 현상, 국회의원 의석수 축소 등 박정희 시기의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의회 민주주의 회복은 여전히 '탈박정희'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대 조국 교수도 "5.16 쿠데타가 법치주의를 망가뜨린 중요한 점은 정부 입법의 증가와 위임 입법의 확대"라며 "입법권과 행정권을 다 가진 '국가재건최고회의(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통치기구,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이 의장을 맡았음)가 1000여 개의 법률을 만들었고, 이는 63년 기준으로 전체 법률의 약 60%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국가재건회의 이후 1000개의 법률이 지금까지 내려온다. 한국 법치의 골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또 "당시 박정희체제는 건국 헌법에 있던 이익균점법을 폐지했다. 기업과 기업 사이 이익공유제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와 사용자 이익공유를 헌법에 넣었던 건국헌법에서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이라며 "결국 우리 헌법관, 민주주의관은 2공화국도 아닌 제헌헌법, 임시정부 헌법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명림 교수는 결론으로 "87년 6월 항쟁이 갖는 의미는 박정희-전두환체제의 비헌법적 통치에 대한 헌법 복원, 법치 회복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인 동시에 한계였음을 깨닫기까지는 적어도 네 번의 민주정부 교체가 지난 뒤였다"고 주장했다. 즉, 노태우 이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 "법치, 헌정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크게 위축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야 우리는 헌정주의와 민주주의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박정희 향수'는 민주주의 공고화에 부정적"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고려대 임혁백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경제 신화'를 비판하고, 보수주의자들의 '선경제발전, 후민주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임 교수는 "87년 민주화 이래 민주 정부의 초라한 경제적 실적에 실망하고 있는 국민들을 향해 많은 권위주의적 발전론자들은 고도성장의 재현을 위해 박정희를 무덤에서라도 불러와야 한다고 선동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권위주의 체제의 부활까지 주장했다"며 "이러한 '박정희 향수론'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 정부의 경제 실적은 강건하고 튼튼하고 지속성이 있었다. 9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이것이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았고, 87년의 GDP성장률도 11%로 박정희 시대 평균 성장률보다 높았다. 민주정부 통털어 IMF 시기 -7% 성장을 제외하면 평균 GDP 성장률은 6.28%로 권위주의 시기(1961~1986년) 평균 성장률보다 낮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민주적 발전론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우월성이 경제 발전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제시하며 "민주화로 인한 법치주의가 재산권 보호에 있어 권위주의 독재보다 효과적이었고, 또 민주적 책임성이 부패 행위를 억제하며, 국민의 표에 대한 의존성이 '응답성' 즉 국민의 요구에 부흥하는 정책을 집행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도 토론을 통해 "박정희 개발 독재는 공적은 국가 주도, 외자 도입, 수출공업화 정책으로 고도 경제 성장과 국민 생활 수준의 향상을 달성한 것이지만, 공은 40%, 과는 60%로 평가할 수 있을만큼 과오가 더 컸다"며 "경제 성장만을 우선하고 모든 것을 동원한 결과 정경유착, 재벌체제, 노동기본권 박탈, 농촌의 피폐, 소득분배 불평등, 지역 발전 불균형 등을 초래했고 이것은 이후 사회 경제적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시대'의 청산은 유보됐고, 그 잔재는 아직 남아 있다"
'박정희 시대의 사회 통제와 저항'과 관련해 발제를 맡은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언론 검열, 문화 통제, 사상 통제, 노동 통제 및 사회의 조직화와 동원 등의 사례를 열거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곧바로 내려진 계엄령은 그의 죽음이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시민적 논의의 기회를 박탈했다"며 "이런 정치적 소용돌이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청산'의 기회를 장기적으로 유보시켰고 어쩌면 박탈해버렸는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박정희 시대를 포함한) '압축적 근대' 속에는 경제적 성취 뿐 아니라 강제적 권력 기술, 저항을 통한 근대를 성취하고자 하는 역량 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며 "2000년 이후 박정희 체제가 은폐한 사건 등에 대한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 공론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진실규명 프로젝트의 외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어 "박정희 체제의 사회 통제와 그것이 남긴 효과에 대한 사회 이론은 충분하게 발전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다.
이날 세미나에는 서울대 박은정 교수, 연대세 박명림 교수, 서울대 조국 교수, 경기대 김재홍 교수, 경상대 장상환 교수, 고려대 임혁백 교수,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 우석훈 2.1연구소장, 임현진 서울대 교수, 정근식 서울대 교수, 김호기 연새대 교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신계륜 전 의원, 최민희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전 상임대표가 참여했다. 보수 성향이 뚜렸한 서울대 박효종 교수, 서울대 전상인 교수 등이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도 토론을 지켜봤다.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는 자리여서인지 이재오 특임장관도 오전에 세미나 자리를 지켰다. 이 장관은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측의 '개헌 반대론'에 맞서고 있으며, "우리 헌법에 유신 헌법의 잔재가 남아있다"며 개헌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이 장관이 "대표적인 유신헌법의 잔재"로 내세우고 있는 국가배상법(국가 배상의 대상에서 군인과 군속을 제외하는 내용)과 관련해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인 서울대 조국 교수가 "국가배상법 폐지 위헌 소지를 유신헌법을 통해 박정희 체제가 일방적으로 없애버렸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은 헌법재판제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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