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3. 14:56ㆍ정치와 사회
‘분노하라!’ 프랑스 뒤흔든 ‘30쪽의 외침’ | |
93살 레지스탕스 영웅 스테판 에셀 책 60만부 팔려 자본 폭력에 대한 저항·민주주의 수호 촉구 ‘반향’ | |
조일준 기자 | |
30쪽짜리 작은 책 하나가 프랑스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앵디녜 부!>(Indignez vous!). 우리말로 ‘분노하라’는 제목의 소책자다. 지은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독일 나치에 맞섰던 스테판 에셀(93·왼쪽)이다.
지난해 10월 초판 8000부가 출간된 이 책은 석달 새 무려 60만권이 팔려나갔고, 크리스마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데 힘입어 새로 20만권을 증쇄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일 전했다. 100살을 바라보는 레지스탕스 영웅은 이 책에서 프랑스인과 다른 모든 세계인들에게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되찾아,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한다. 광고문구와 주석을 뺀 본문은 13쪽에 불과해, 책이라기보다 격정적인 정치 팸플릿(레드북)에 가깝다. 다분히 선동적인 이 책이 판매부수 2위의 소설책보다 8배나 많이 팔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은 단지 3유로(약 4500원)라는 저렴한 책값과 읽기에 부담 없는 분량 덕에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분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장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폭력에 ‘분노’하라는 칼칼한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와 출판사는 “시장독재와 은행가들의 보너스와 재정위기가 전후 복지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민감한 신경을 정면으로 타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노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해석되는 이유다. 에셀은 신년 메시지에서 자신의 책이 성공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자신이) 1940년대에 나치즘에 맞섰던 것처럼 오늘날 젊은이들도 정치·경제·금융 권력의 공모에 맞서, 2세기에 걸쳐 이룩한 민주적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프랑스에선 미묘한 정치적 파장까지 일고 있다. 지은이가 일깨운 프랑스적 가치인 ‘레지스탕스’(저항)가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의 보수파 정권에 저항해 사회당을 지지하자는 뜻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책의 한 대목은 이렇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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