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 문명의 전환기, 방향은 우리에게

2011. 9. 23. 12:05정치와 사회

"문명의 전환기, 방향은 우리에게 달렸다"

[프레시안 창간 10주년 인터뷰]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

기사입력 2011-09-23 오전 8:20:51

"앞으로 언론은 권력보다도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언론자유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지난 1990년 8월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사주의 압력에 의해 사실상 해임되다시피 했던 당시를 되새기며 김 대표는 "요즘은 미디어의 사주들이 광고주가 압력을 행사하기도 이전에 알아서 자본을 대변한다"며 "당시의 내 예측이 적중한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은 창간 10주년(9월24일)을 맞으며 지난 10년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자부에 앞서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 언론인마저 "언론 노동자들과 같이 싸우고 싶다"고 개탄하는 불행한 현실을 돌아봤다.

김 대표는 "언론사에 관리자를 파견해 언론행위를 관리한 것은 독재정권과 형태가 비슷하다"고 현 정부의 방송장악 문제부터 꼬집었다. 공공재인 지상파 방송마저도 공론의 자유를 퇴행시켰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명박 정부 들어 방송과 사이버공간에 만연한 억압의 기류와 친정부 성향 매체들이 만끽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대조하기도 했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인해 예상되는 여론의 왜곡 문제에 대해선 "미국의 루퍼트 머독과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경우를 보라"고 일갈했다.

언론이 상업화와 상품화에 매몰돼 공익 언론의 길을 외면하고 있다는 따가운 지적도 했다. 심지어 "정치 지도의 원리가 시장 지도의 원리에 예속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자본 예속화도 심화될 것이며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어둡고 의미심장한 전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에도 금이가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2008년에 겪었던 세계적 금융위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무게를 더해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결함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이해를 일선에서 대변하고 있는 어느 '사주언론사'(김 대표는 한국의 언론사를 사주미디어와 기자미디어로 구분한다)는 '자본주의 4.0'을 들고 나섬으로써 외려 변화의 불가피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정치적 대표체 역할을 해 온 어느 정당조차 '복지'와 '무상'을 이야기한다. 김 대표는 이를 "우리는 지금 문명의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봤다. 더불어 "그 문명의 전환을 어떤 쪽으로 끌어갈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고 했다.


2012년 대선과 관련해 김 대표는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고 설득할 수 있는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야권 통합 문제에 대해선 "야당들과 시민사회가 적어도 공약수적인 목표, 정말로 추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최근 관심의 중심인 안철수 현상에 주목하며 "새로운 정치 현상의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그는 수평적인 리더십에 적합하다. 지금은 그런 호환적인 리더십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인한 언론지형의 변화와 관련해 "이제 (속보성을 상실한) 전통적인 언론에 생존과 발전의 영역은 심층보도에 있다"며 "구조의 바탕을 들여다보고 스토리뿐 아니라 히스토리를 생각하는 언론 행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제는 기자도 스페셜리스트를 넘어서 프로페셔널한 게 필요하다"며 "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섭하는 능력까지 요구되는 추세"라고 조언했다.

22일 서울 장충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가진 김중배 상임대표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임경구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는…

1934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 전남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7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1963년 <동아일보>로 옮겨 논설위원, 출판국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제5공화국 치하에서도 '정론직필의 전설'로 유명했던 그는 사주의 압력에 못 이겨 1990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서 물러났고, 그해 전국 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1992년 <한겨레> 편집국장, 1993~1994년 <한겨레> 사장을 맡았다. 이후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의 산파역을 맡아 상임대표를 맡았으며 6월민주항쟁 10주년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대표, MBC 사장,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 상임대표 등 신문, 방송, 시민사회단체에서 두루 활동해 왔다.


▲ 김중배 전 MBC 사장. ⓒ프레시안(손문상)

"공론장이 흔들린다"

프레시안 : 언론 현직에서 떠났을 때가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이다. 임기를 2년 두고 MBC 사장을 그만뒀다. 이유가 있나?

김중배 : 더 할 일이 없겠다고 생각하니 그만둔 것이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당시 <MBC>에는 편성 규약을 만드는 문제와, 미디어 비평을 도입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는 <MBC> 문제가 (지금만큼) 그리 크지 않았다.

편성 규약을 만들기 위해 회사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노조가 각각 추천한 이론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삼자가 공약수를 가지고 결론을 내서 편성 규약을 개정했다. 별 문제 없이 편성규약 문제를 매듭짓고 나니 방문진 이사 중에 일부가 "노조에게 완전히 편성권을 넘겨줬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방송법상 편성위원회를 만들게 명시됐으니 방송법에 따라 하자는 것이었다.

(편성 규약 문제와 미디어 비평 문제를 매듭짓고)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사표를 냈다. 재선해서 새 사장이 임기를 시작할 수 있게끔 하고 난 뒤 1년이 지나니 일 잘하는 사람이 많더라. 내 소임은 여기까지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의사를 타진했다. 누군가는 내가 김대중 정부에 의해 선임됐고, 새 정권이 들어오니 새 정권에 재량권을 주기 위해 그만둔 것 같다고 해석하나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마침 그때 나이 일흔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MBC>는 매듭이 될 만한 문제를 잘 풀어주면 자발적으로 성과를 이루는 속성을 가진 집단이다. 자발성이 중요하다. 언론 경영은 (언론인들의) 자발성을 끌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최근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음에도 방송사가 사과를 하고 심지어 피디들을 징계하기까지 했다. MBC 전 사장으로서 언론 탄압이 심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김중배 : 미디어와 언론이라는 말을 구분해 넓은 의미의 언론에 대해 말하겠다. 본래적 의미에서 언론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공론장'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언론계에 서너 가지 현상이 생겼다. 첫째는 탄압하고 억압하고 관리하는 기류다. 그것이 바로 <KBS>, <MBC>, <YTN> 등에서 나타난다. 인터넷 세계에선 '미네르바 사건'으로 대표되는 언론 행위들에 억압을 가하고, 선거법 등으로 사이버공간이 형성한 자유를 억압하는 기류가 있다.

반면에 친정부적인 미디어들은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들의 언론을 보면 좌우나 진보와 보수가 어떤 기준에 의해서 나뉘는지 모르겠다. 특히 좌파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한 언론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을 언급하며 '범좌파'라는 용어를 쓰던데, 그런 언론의 자유는 만발해 있다. 언론에서 원칙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좌우나 진보와 보수에 대한 기준은 시대·체제·나라마다 다르다. 좌‧우, 진보‧보수의
기준은 주관적일 수 있으므로 자기 미디어 나름대로 합의한 기준을 가지고 구분해야 할 텐데, 내가 보기에 기준도 없는 것 같다. 레드 콤플렉스의 시대를 장구하게 겪은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라는 표현은 배제의 논리에 입각했다. "그쪽 이야기를 빼고 말하자,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라는 식이 계속돼 왔다. 좌파라는 단어가 너무 오‧남용됐다.

둘째로 상품화 혹은 상업화가 가져온 언론의 왜곡 문제가 있다. 수용자의 수용 상황에 대해서 확실히 계량할 수 있는 기준이 발전했다. 방송에서는 시청률, 온라인은 클릭수다. 그런 흐름 속에서 공익 언론으로서의 장을 제공하는 일을 제치고 언론이 상업화되고 상품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자의 실명화 현상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일반적인 모든 기사가 익명으로 나갔다. 다시 말해 옛날에는 그 언론사의 기사인지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누구의 기사냐가 중요해졌다.

자기 이름을 떳떳이 밝히고 기사에 대해 책임지는 건 긍정적인 진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디어 자체의 판단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기사나 오피니언이 인기 영합적인, 혹은 인기의 척도를 올리는 경쟁으로 나아가는 속성이 있다. 언론 행위의 많은 부분에서 이런 경향이 침투하고 있다. 이게 우리 공론장을 왜곡시킨다.

프레시안 : 비판적 언론에 대한 억압이 일어나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과도한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고 했다. 언론의 상품화도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관련되는 문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들 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퇴행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김중배 : 많은 학자들이 그 정부의 언론 정책이 모든 정책이라고 얘기한다. 언론 정책을 보면 정부가 갖는 공공적인 감각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정도나 진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는 공론장이다. 미디어의 언론 행위,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광범하게 포함한 표현의 자유는 왜 있어야 하는가. 유권자들이 위임한 정부와 대의제의 대표를 선출하는 사람들이 공론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론장에서 "내 대표가 누구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이건 시장이건, 내 권력을 누구에게 위임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곳이 공론장, 소위 말하는 언론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다분히 관료적인 언론 정책이 추진됐다. 독재정권과 형태가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게 언론사에 관리자를 파견해서 언론 행위를 관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은 지상파 자체가 공공재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 속성이 있다. 지상파는 개인의 재산이 아니다. 현 정부가 그런 지상파마저도 공론장의 자유를 퇴행시켰다.

프레시안 : 김재철 MBC 사장의 선임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김중배 : 방송 경로는 거의 그렇다. 어떤 부분에서 제약하는지를 보면 관리 억압의 성격을 알 수 있다. <KBS>, <MBC>는 말할 것도 없이 관리 책임자들이 소위 앞으로 우리 대중매체들이 가야할 심층보도 부분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관리자들이 심층보도를 가로막고 있다. <PD수첩> 사태 등에서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종편의 폐해, 머독과 베를루스코니를 보라"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했다.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보수 성향의 언론이 지상파 방송과 다름없는 방송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면 의견의 대표성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보수 쪽이 많다고 본다.

김중배 : (언론 재벌인) 미국의 루퍼트 머독과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경우를 보면, 미디어 독점이 어떻게 진전되는지를 알 수 있다. 아주 수구적인 미디어도 머독이나 베를루스코니의 독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다면 그 폐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베를루스코니에게는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머독의 언론사에서는 도청사태 같이 언론사에서 있을 수 없는 행위가 일어났다. 미국에서 방송과 종이신문이 장악되자 미국 언론이 어떻게 됐나.

이 과정에서 소위 미디어렙의 문제가 떠올랐다. 방송사를 경영해 보면서 나도 한국방송공사(코바코)라는 독점적인 미디어렙이 사실은 곪았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사가 개별적으로 광고를 수주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코바코가 독재정권에서 창시된 것이기도 하지만, 광고주와의 직접관계, 다시 말해 자본의 압력을 완충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디어렙이 있어도 언론사에 광고주가 보내는 압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미디어렙이 어느 정도 필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종편에는 미디어렙 적용을 예외로 하는 것이 민주언론 혹은 공익언론 정책으로서 건강할지 의문이다. 나는 종편을 미디어렙에 포함시키려는 언론 노동자들과 같이 싸우고 싶은 열정이 있다.

프레시안 : 종편 사례도 '정치적 상황에 의한 언론 상황의 악화'로 볼 수 있다. 이는 아까 언급한 언론의 상업화나 기자의 실명화와는 다른 측면이다. 상품화, 상업화, 계량화와 관련해 우리에게도 실용적인 고민이 있다. 인터넷 신문도 클릭수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을 낚시한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하는 고민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론장에서 중요한 의제가 되는 건 사람들이 거의 안 본다.

김중배 :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내가 <동아일보>에서 편집국장을 할 때도 한 기자가 "왜 국장은 사람들이 잘 안 읽는 기사만 좋아하느냐"고 질문하더라. 참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그래서 '당의정(糖衣錠)론'을 말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쓴 약을 쓰다는 거부감 없이 먹게 하기 위해 당의정을 만들지 않았느냐. 누군가 "정말 알아야 할 사안은 외면하는 대중의 행위는 정말 좋은 것을 막는 갑옷과 같다"고 했다. 그 갑옷을 어떻게 무장 해제시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됐다. 그것이 점점 심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전에는 지하철에 신문 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신문 보는 사람은 없고 다들 스마트폰으로 본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재밌어서 한다. 그렇다면 편집자나 기자들은 중요한 기사를 재미있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재미라는 것은 그냥 선정적인 흥미만이 아니다. 대중은 심지어 제일 딱딱한 부분이라는 지적 호기심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SNS를 왜 하는가, 조사결과 1위가 재미 때문이더라. 마찬가지로 유익한 정보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여러 호기심이나 재미를 북돋아줄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프레시안(손문상)
"SNS의 시대,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프레시안 : 기자들에게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SNS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매체일 수 있고, 자발적이다. 그런데 프레시안 기자는 언론을 전업으로 삼고 있다. 직업적 언론인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가?

김중배 : 아까 말한 재미를 다시 강조하고 싶다. 인터넷 미디어의 현실적인 존립과 번영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 다시 말해 저널리스트들의 활로에는 복합적인 성격이 있다. 여러 가지 폭의 재미 중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어떤 것이 더 많은 다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가, 어떤 서술 방식이 호소력을 갖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SNS도 어떤 부분에서는 높은 경지에 올랐으니, 그 부분을 외면하거나 능가하기에는 어려운 현실도 있다. 결국은 종합능력, 분석능력을 통해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SNS는 대중매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보성을 갖고 있다. 이는 얼마 전 '서울 물난리'를 기존 언론보다 트위터 등이 더 빠르게 전달하면서 여실히 확인됐다. 이제 전통적인 언론에 생존과 발전의 영역은 어디에 있는지는 자명하다. 속보성의 기능이 상실되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심층보도다. 구조의 바탕을 들여다보고, 스토리뿐 아니라 히스토리를 생각하는 언론 행위를 해야 한다.

전문적인 기자는 누구인가, 어떤 기자인가에 대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이제는 기자도 스페셜리스트를 넘어서 프로페셔널한 게 필요하다.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섭하는 능력까지 요구되는 추세라고 본다. 물론 이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남는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은 그런 자질을 강요한다.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기자들은 접근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출입처다. 네티즌은 출입처가 없다. 그런 쪽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인터넷신문이 등장해 공론장에 영향력을 미쳤다. 이제는 올드미디어가 됐지만, 독립형 인터넷 매체가 10년간 해온 역할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김중배 : 사람들은 시민단체나 매스미디어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지만, 나는 보수미디어와 진보미디어라는 구분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사주미디어와 기자미디어라고 구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구분 방식에서 봤을 때 독립형 인터넷 매체는 기자미디어다.

사주미디어는 동질성이 많다. 그런데 독립 언론을 비롯해서 기자들이 주도하는 기자미디어는 사주미디어와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반드시 정체성 구축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쌍방향적인 소통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터넷은 기존 방송이나 신문처럼 일방적인 통보 식의 미디어가 아니라 좀더 쌍방향적인 미디어다.

SNS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수평적, 쌍방향적, 역동적인 특성이 있다. 이제는 이러한 뉴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명의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본다. 그 문명의 전환을 어떤 쪽으로 끌어갈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

"언론의 자본 예속화 심화될 것"

프레시안 : 김중배 선생은 1990년 12월 기자협회가 처음 시행한 '전국 기자가 뽑은 올해의 인물'에 압도적 표차로 선정됐다. 그해 <동아일보> 편집국장에서 사실상 해임되면서 "앞으로 언론은 언론 자유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제약세력인 자본과의 아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금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에는 왜 앞으로 언론이 자본과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김중배 : 지금도 대형미디어들이 겪는 문제가 있다. 바로 광고주의 압력, 자본의 압력이다. 요즘에는 심지어 '기자의 사원화'라는 말이 있다. 내가 편집국장을 했을 때 기자의 영업 사원화 현상은 없었다. 광고행위를 하는 자본의 위력은 일상적으로 느꼈지만, 기자들이 광고를 따오는 일은 없었다. 요즘은 미디어의 사주들이 광고주가 압력을 행사하기도 이전에 알아서 자본을 대변한다.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사주의 자본 대변화에 대한 압력이 크진 않았지만, 내가 전망하기에는 그 징조가 너무 커져 있었다. 내 예측이 적중한 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다.

정치권력이 먼저 손을 내밀었든 기업이 먼저 손을 내밀었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동반자적 관계임은 무시할 수 없다. 과장이길 바라나 정치 지도의 원리가 시장 지도의 원리 속에 예속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자본 예속화도 심화될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정치 지도 원리가 시장 원리에 굴복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한 바 있다.

김중배 : IMF 사태 때 이미 그런 징조가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장의 힘이 확대됐으면 확대됐지, 축소되지는 않았다. '정리 해고'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김대중 정권 때 만들어졌다. 그것을 노무현 정권이 이어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FTA 추진과 이라크 파병을 통해서 그런 길을 걸어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자본 권력이 점점 비대화되고 막강해졌다. 국가 중요정책은 대기업 임원실에서 결정된다는 말도 있더라.

의사결정의 주도권이 대기업에 넘어가고 있다는 사례는 방송 관련 정책에도 나온다. 내가 MBC에 들어가기 전에 언론개혁시민운동 대표일 때부터 방송에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 모델을 미국식으로 할 것인지 유럽식으로 할 것인지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방송업계의 의견은 한마디도 묻지 않고 이미 미국식으로 해버린다고 결정해버렸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은 이미 미국식 제작을 추진하고 있었다.

마침 대만에서 방송대표단이 왔기에 "대만에서는 새로운 디지털 방식을 어떻게 결정했느냐"고 물어봤다.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정부가 방송협회에 다 일임했다. 현업에 있는 사람이 어떤 것이 좋은지 결정하지, 정부나 업계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더라. 너무나 상식적인 답변이었다. 한국에서는 의견이 도저히 조정이 안 되니 결국 이동통신은 DMB로 하고, 일반 모니터 방식은 미국식으로 한다고 절충됐다. 이처럼 결정하는 게 정부만의 힘은 아니다. 그 정도로 자본의 권력이 막강해졌다.

민주당에서 '119회'를 만든다. 헌법 119조 2항을 만드는 데 공헌한 사람이 바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김종인 전 수석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화가 있다. 6월 항쟁 이후 헌법을 '직접선거'로 바꾸는 과정에서 김종인 수석은 경제관계 위원장이었다. 경제통인 그가 "전망컨대 자본 권력의 비대화가 심해지는 게 현실이다. 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고 했다. 그러니 대기업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시장 논리에 안 맞는다고 주장해서 그가 전두환 대통령 앞에 불려갔다더라.

어떻게 전두환을 설득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고 했다. "대기업 권력이 엄청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대기업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정말 일탈적인 행동을 해도 정부가 조정할 길이 없어집니다." 전두환이 단순한 사람이니 "그래? 그럼 넣어라"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IMF 구제 금융사태가 진행됐다. 자꾸 정리해고 이야기가 나오니 경제 전문가도 아닌 내가 답답해서 어떤 매체에 '헌법 119조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헌법에 따르면 긴급명령도 발동할 수 있으므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 조치도 안 됐다. 그만큼 자본의 권력이 커졌다.

한국에는 맹신적인 시장근본주의자들이 많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미국 정부가 몇 개 은행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공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맹공을 가했다. 그들은 망할 회사는 망하게 내버려두고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시장이 살아난다고 했다. 시장근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신앙처럼 갖고 있는 사람이 미국과 한국에 많다. 그래서 10여 년 전에 그 글을 써놓고도 괜히 건드렸냐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은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헌법 119조 2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을 끼워 넣는다. 어쩌면 저들이 그 조항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내가 괜히 썼다는 생각도 들더라(웃음).

ⓒ프레시안(손문상)

"'안티 이명박'으로는 호응 못 얻는다"

프레시안 : 시장권력, 자본권력에 언론과 정치까지도 잠식됐다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을 내세웠는데 못했다. 우리는 성장 지상주의, 시장 권력에 대해 제대로 된 저항을 왜 못했는지 의문이 든다.

김중배 : <조선일보>가 '자본주의 4.0 시대'를 얘기했다. 나도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을 읽어봤다. 우리나라 분류법에 의하면 그 사람도 좌파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아주 보수적인 시장주의를 존중하는 사람이더라. 그는 자본주의라는 큰 줄거리를 유지하면서 현실의 부족함을 채우자고 주장했다.

적어도 칼레츠키가 얘기하는 '자본주의 4.0'에서는 현재 시장주의로는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만은 분명했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항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조선일보>만 '자본주의 4.0'과 같은 해법을 내거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바꾸자는 세계적인 기류가 있다. 금융위기 때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청문회에서 질문을 받고 지금까지의 시스템에 결함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신자유주의 총수가 그렇게 말했다. 크리스티앙 라가르드 IMF 총재도 각국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요구한다. G20에서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앞으로 정부 개혁은 중요하다고 성명을 냈다. 프랑스의 경우는 시장 가격과 사회적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가치조사위원회'를 만든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적어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기 이르렀다. 그것을 표현하는 바가 자본주의 4.0이다.

자본주의 4.0의 논리에 수긍하지 않아도 그 문제의식만은 발휘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도처에서 사회복지 등을 요구하는 전환점에 와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다가 '공정사회'를 말하고, 조금 후에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고 이제는 '공생발전'을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적 입장에 섰던 이들도 이제는 돌아섰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방치한 채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만 사라지면 될 것처럼 말한다. 한쪽에서 신자유주의를 맹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권력의 문제, 이명박 식의 퇴행적인 전체주의가 있다. 여기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제대로 된 민생 문제의 목표를 어떻게 잡으면 좋을까?

김중배 : <조선일보> 스스로도 자본주의 4.0이 애매하다고 했다.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우리가 더 집중적으로 전환 논리를 모색해야 한다.

ⓒ프레시안(손문상)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과소평가할 부분이 아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과 무상보육을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도 복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복지, 어느 정도의 복지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 정치가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추구하는 추세다. 시장도 혼자 생산하고 판매할 수 없다. 다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근본적인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이기주의, 개인주의, 공동체의 상과는 거리를 둔 삶'이 인류가 살아가는 데 합당한 목표이고 방법인지에 대해 세계적으로 많은 회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도 이번 시장선거부터 총선, 대선에서 상당히 '공생 발전'과 비슷한 정책 목표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도 대안이 있어야 한다. '안티 이명박 정부'만 가지고는 별 호응을 못 얻을 것이다. 지향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손석춘 씨가 <미디어 오늘>에서 "우리에게는 대안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대안이 대안다우려면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고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이어야 한다. 그러한 대안 제시가 있는지를 다시 따져야 한다.

야권도 단일화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당 내에도, 야권 전체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통합이 지금 가능할 것인가는 얘기 못해도, 야당들과 일부 시민사회가 적어도 공약수적인 목표, 정말로 추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를 찾아야 한다. 그러한 가치를 기본으로 한 선택이 있어야 한다.

야당의 구호가 선동적이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승만 독재 시절에 '못살겠다 갈아보자'만한 캐치프레이즈가 없는 것 같다. 그런 류의 방향을 압축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어야 한다. '행복추구', '같이 살자'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정파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권 통합은 되도 일정한 동거상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야권연대가 가능하더라도 그게 유권자 마음을 움직이는지 여부와는 별도지만, 많은 국민이 적어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정치현상의 시작에 불과"

프레시안 : 국민들이 적어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을 계기로 '안철수 바람'이 불었다. 이와 동시에 안철수 현상에 대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안철수 사태가 벌어진 5일간 사회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정치 가능성 보여준 것일까, 아니면 문제 있는 현상인가?

김중배 : 안철수 현상도 소셜네트워크 문화 현상과 닮았다. 안철수 교수가 SNS 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가 SNS에 집중돼 있다. 안 교수가 대중적으로 접촉한 일이 두 가지다. 하나는 백신을 무료화한 것이다. 인터넷하는 사람 중에 안철수 백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는 그 백신을 무료로 제공했다. '프리 소프트웨어 운동'과 닮은 공익적인 행위다. 이는 SNS 문화와 매우 닮았다고 본다. 기존 정치 질서에서 보면 불신과 반동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한나라당이 안철수를 검증하는 건 한나라당이 안철수 백신을 검증하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한 안 교수의 '청춘콘서트'가 매우 SNS스럽다. '청춘콘서트'는 기존의 강연 형식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서 쌍방향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를 긍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하기 전에 이는 분명한 현상이다. 일부에서는 안철수 현상을 거품이라고 하는데 나는 거품은 현상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다. 원인 없이는 현상도 없다. 거품에도 현상에서 생긴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정치 현상의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안철수 교수의 말에 힘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수평적인 리더십에는 적합하다. 지금은 그런 호환적인 리더십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프레시안 : 안철수 현상은 SNS 현상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기존 정당과는 다른 SNS적 정당이 새로운 정치색을 띠는 것도 가능할까.

김중배 : SNS가 제3의 정치세력화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정당이 해체되고 재편성되는 근원적인 정계 개편까지 이뤄지리라고는 예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존 정당 체제의 내용은 상당히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에도 많이 변화해왔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공천이나 경선대회가 없었다. 그전에 없던 현상이 새로 시작하든지, 언젠가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오프라인적인 정당조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언젠가 체제에도 변화가 있을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안철수 교수는 5일 만에 퇴장했고, 다시 박원순 변호사가 나섰다. 창비주간논평이 이를 두고 "정당 정치의 위기가 아니라 야당의 위기"라고 했다. 야당의 위기를 보완하기 위해서 시민단체로부터 정치인을 추모하는 선순환적인 구조를 통해 극복하는 게 어떻겠느냐면서 박원순 후보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나왔다. 이전까지는 대개 시민운동은 시민운동, 정치는 정치였는데, 요즘은 시민운동가가 정치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박원순을 정치가로 호명하는 게 당연하고 좋은 것일까?

김중배 : 기존 정치 제도가 말도 안 되는 준거로 구분했던 부분이 있다. 정치를 장내정치와 장외정치로 나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전부 민주주의의 장이지, 국회만이 민주주의의 장이라는 것은 이상한 발상이다. 그런 말은 대의제에 대한 협소한 지지자들이 하는 얘기다. 꼭 정당이 영입해서 커리어를 쌓게 하는 정치인만이 정치인이 되지는 않는다. 안철수, 박원순 변호사의 성격이 장내와 장외의 구분을 SNS라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해체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협소한 울타리들이 점점 해체되는 과정에 있다. 시민운동과 정치의 경계가 해체된다.

정치 영역은 다원성이다. 시민사회가 현실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지만, 정치를 감시하고 견제하고 정책 대안을 공급하는 성격상 (시민운동도) 넓은 의미에서는 정치활동이다. 우리 사회는 대학교수들이 폴리페서 노릇하는 것은 괜찮다고 하면서 다른 영역의 정치 참여에는 너무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자체 시장 같은 직위는 오히려 시민생활에 밀착한 활동을 해온 시민사회 사람들이 도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손문상)

"젊은 시절 내게 의욕을 불어넣어줬던 건…"

프레시안 : 끝으로 이제 10년을 맞은 <프레시안>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한다. 특히 <프레시안> 기자들은 10년차 이하가 대부분인데 젊은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 달라.

김중배 : 나는 1957년에 처음에 <한국일보>에 입사해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 신문이었다. 지금의 '수습기자'에 해당하는 '견습기자' 자리에 젊은 기자들이 많이 들어갔다. 당시 편집국장이 30대였다. 장기영 사주가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20대 편집국장 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결국 20대 편집국장도 나왔다.

당시 <한국일보>는 젊은 활기가 남달랐다. 날마다 시험을 봤다. 신문 보는 순간 지면 배치로 내 기사에 대한 성적표가 나오지 않나. 기자는 독자적인 직업이다. 고독할 때는 고독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조간이니까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일하기도 했다. 그때 고단함을 풀어주고, 자꾸 의욕을 낳게 했던 사람들이 바로 동료와 선배들이었다. 문제를 해소하고 다스리는 건 궁극적으로 개인이 하지만, 협업관계가 한편으로는 필요하다.

동료나 선후배가 술을 마시면 늘 신문 얘기만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한다', '네가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박이 오고갔다. 술은 미디어라고까지 생각했을 정도다(웃음). 당시에는 여러 열정의 폭발이 있었다. 요즘은 술 마시는 방식을 권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윤나영 기자(=정리)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