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2012. 4. 8. 19:56정치와 사회

한국사회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국가경쟁력과 사회통합의 위기... 문제는 일.자.리

 

현대사회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도 한다. 사회환경의 급변에 따른 불확실성은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한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더욱 혼란스런 상황에 처해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최근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공직자 인선에서부터 한반도 대운하를 위장한 4대강 사업, 요즘 전국을 들끓게 하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가운데 아마도 가장 큰 비용은 신뢰의 위기일 것이다.

 

신뢰는 인적 자본, 물적 자본에 이어 최근 지역 내지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구성요인이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간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자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회일수록 거래의 안전이 보장되어 생산성과 경제성장이 제고된다. 따라서 국가의 부와 사회 안정을 동시에 증진하기 위한 핵심조건이며, 기업의 신기술 창출과 제품혁신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취약한 사회적 자본이 높은 거래비용을 유발하여 경제의 고비용 구조화를 초래하며, 노사갈등 등 각종 사회문제를 확대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동일한 양과 질의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를 투입하고도 다른 성과가 나오는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의 존재가 확인된다. 사회적 자본은 축적이 가능하고 다른 생산요소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무형자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신뢰와 규범이 대표적 사회적 자본으로 논의되나 이 외에 다양한 개념 요소가 존재한다. 시민의식, 네트워크의 수준, 구성원의 자발성, 소득균형(협력을 촉진하는 구조적 요인) 등도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은행 수석연구원 스티븐 낵과 필립 키퍼의 조사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국가 신뢰지수가 10%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은 0.8%p 하락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거래비용을 절감하여 인적, 물적 자본의 효율적 투입과 운용을 가능케 하는 요소이라는 점에서 세계은행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신뢰, 규범과 같은 무형자본이 자연자원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회일수록 교육, 보건, 치안, 경제․사회적 평등 수준이 높아짐을 볼 수 있고, 지식창출과 제품혁신, 창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신뢰(Trust)’에서 무형의 사회적 자원으로써 신뢰가 21세기 선진사회의 조건이며, 사회적․정치적 발전과 안정은 물론 경제발전과 성장의 필수적 요소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 지수는 신뢰, 사회규범, 네트워크, 사회구조 등으로 구성되는데, 사회적 자본 지수로 볼 때 한국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OECD 29개국 중 하위권인 22위로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

 

[한국의 분야별 사회적 자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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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삼성경제연구소,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CEO Information, 2009.        
 

한국의 부문별 사회적 자본 수준은 133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경쟁력(2009년 9월 8일 기준) 평가에서도 사회신뢰와 규범준수 등의 영향을 받는 정치신뢰 및 노사협력 부문 순위에서 정치인에 대한 기업인의 신뢰는 2008년 25위에서 2009년 67위로, 노사협력의 수준은 2008년 95위에서 2009년 131위로 하락했다.


최근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0명 중 3명만이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한다고 한다. 이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물론 중국과 베트남 같은 개도국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를 개인보다도 더 신뢰하지 못하며, 법․제도가 공정하게 집행된다고 믿는 사람도 적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신뢰수준은 1980~1990년대를 거치면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사회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취약한 사회적 자본이 선진화를 가로막고 성장비용을 더욱 크게 만든다.


한국사회의 신뢰 수준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사실은 최근 조사(최향섭, 2007, 정보사회의 신뢰와 사회적 자본, 정보통신연구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다른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킬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사회, 다른 이를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회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정부관료, 경제인, 지식인, 정치인 등 리더십에 대한 불신으로 생활세계 속까지 불신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이러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지도층의 올바른 리더십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의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된다. 신뢰는 크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적 영역에서의 신뢰라면 공적 영역에서의 신뢰는 사람보다는 제도나 체제에 대한 신뢰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국민이 정부와 기업, 그리고 법제도를 비롯한 공적 영역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공적 영역에 대한 부패인식도는 최악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기관별 부패인식 지수는 일본과 더불어 평균 3.9점으로 최하위그룹에 속해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공적 신뢰가 무너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한편 세계 금융위기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영국도 각각 3.7점, 3.3점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 지수가 낮게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 네델란드, 핀란드, 덴마크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기관별 부패인식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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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Transparency International, Global Corruption Barometer 2009


이러한 공적 영역에서의 신뢰,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당과 정부, 기업의 활동이 투명하고 제도나 정책의 준수 여부에 따른 상벌의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야 한다고 판단되며, 이러한 토대가 구축되면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신뢰수준이 낮은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의 패거리문화, 폐쇄적 집단문화 때문이다. 안으로만 충실하고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한국적 특성으로 전체 생활세계에서의 신뢰가 낮아지는 것이다. 바로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연고주의가 심각한 사회적 신뢰의 저하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연고주의로 인한 폐쇄적 네트워크는 국가나 사회 단위에서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는 분절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기업 간 네트워크 역시 폐쇄적, 수직적으로 운영되어 산업 클러스터나 개방형 혁신 등 기업 외부 네트워크의 활용이 취약하게 된다.


한국사회 분열의 핵심에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소득 불균형 문제이다. 이를 진단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소득분포의 불평등도를 측정하기 위한 지니계수는 외환위기인 1997년을 전후로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대규모 실업 등으로 소득격차가 커지면서 한국의 지니계수가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또한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득불평등(지니계수) OECD 주요 국가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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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OECD통계 2009


한편 위의 사회기관별 부패인식 지수에서 본 것처럼 일본, 영국, 미국의 지니계수는 우리나라보다도 소득격차가 더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 독일, 네델란드, 덴마크 등은 낮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독일의 지니계수는 통독 이후 구 동서독간 소득격차가 반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양호함을 알 수 있다. 통독 전 구 서독의 지니계수는 0.26으로 다른 유럽 선진국들과 차이가 없었다.


소득 분배 구조를 보여주는 또 다른 개념으로서 소득양극화를 들 수 있다. 소득양극화는 중산층이 감소하면서 소득 분포가 양극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소득 분위별 분배 상황이 고르지 못한 정도를 보여주는 소득불균형과는 구별된다.


한국의 소득양극화의 정도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소득불평등(지니계수)과 유사하게 소득양극화 지수(ER지수)에 있어서도 한국, 미국, 영국의 소득양극화 정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는 반면, 독일, 프랑스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국의 소득양극화는 소득불균형과 같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중산층이 해체되면서 심화되기 시작했다. 소득양극화의 원인으로는 세계화 진전, 비IT 부문 생산성 약화와 함께 기업․금융․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을 들 수 있다. 세계화의 진전은 고급 인력과 단순 노동력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켰고, 비IT 부문의 생산성 약화는 관련 부문의 고용을 감소시켰다. 기업․금융․노동시장의 구조조정은 실직자들의 자영업 진입과 경쟁을 심화시켜 자영업자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켰다. 한국의 소득양극화 문제점은 중산층의 축소가 대부분 하위 소득계층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소득양극화 지수(ER지수) 주요 선진국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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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삼성경제연구소 2006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사회의 소득불균형 혹은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신뢰제고, 연고주의 타파, 열린 네트워크, 합리적 소통 등으로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 나갈 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청년실업 100, 대기업의 정규직채용의 지속적 감소, 비정규직 900만 시대 등이 웅변하는 한국사회의 고용없는 성장대란이 10여 년 이상 개선의 조짐이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신뢰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모든 사회적 신뢰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최근 독일경제연구소(DIW)의 연구 결과는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일자리 문제가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아래 []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용수준에 따라 신뢰수준의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직 상태에 있는 사람보다 정규직 근로자, 자영업자의 신뢰도가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인구학적 특성에 따른 신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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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독일경제연구소(DIW) 2009


 

신뢰의 구축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첩경이다. 최근 보여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신뢰의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연구 결과가 우리 사회에도 유의미하다면 그 해결방안은 일정부분 명백해질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호 뉴스레터에서는 이를 전제로 우리나라의 일자리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OECD  국가의 신뢰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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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삼성경제연구소 2009

 

[OECD  국가의 사회규범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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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삼성경제연구소 2009

 

[OECD  국가의 네트워크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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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삼성경제연구소 2009

 

[OECD  국가의 사회구조 요인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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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삼성경제연구소 2009

 

[부패인식 지수(CPI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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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Transparency International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