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9. 21:16ㆍ건강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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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소리 없이 솟아올랐고,두물머리 강가에 정박한 돛단배는 맑은 아침 햇빛을 받으며 고요한 시간을 음미하고 있었다.아직은 바람의 미동도 없는 이른 아침이기에 돛을 펼치지 않고 그저 돛대만이 꼿꼿한 고집처럼 수직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거울처럼 맑은 강물에 산과 나무와 햇살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그 수정 같이 맑은 고요와 반영이 분주한 삶에 지친 여행자에게 작은 휴식으로 다가왔다.
♠운길산과 수종사가 만들어 낸 고즈넉한 풍경화
운길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급한 경사길을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다가 중간쯤에서 차를 멈췄다.새벽의 평화로움을 깨기 싫었고,이런 자연 속 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자연을 느끼고 호흡하며 걸어야 제맛이지 않겠는가.이른 아침이어서인지 햇살은 비추지 않았고,산속에는 짙은 안개로 인해 온 세상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조심조심 내딛는 발길 앞으로 구불구불 나 있는 작은 길만이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문득 포르투갈 신트라의 깊고 울창한 산속에 있는 페나 궁전을 찾아가던 날이 떠올랐다.그때도 안개가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오히려 안개로 인해 앞으로 만날 풍경이 더욱 기대되었다.안개 낀 신트라의 골목길 산책이 내게 안겨 주었던 감동과 여행의 미덕을 운길산을 오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수종사는 해발 610여m의 운길산8부 능선쯤에 위치한다.마치 속세를 벗어난 진정한 수도승처럼 세상을 발아래 두고 청정한 운길산의 자연과 고요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수종사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양수리는 속세와는 작별한 듯 새하얀 안개 속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안개 걷힌 맑은 날이면 산 아래로 양수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드러났을 테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좀체 안개가 사라지지 않았다. 안개가 끼면 어떠랴. 다 드러내기보다는 살짝 가려져 있기에 자연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해탈문(解脫門)틈 사이로 산사(山寺)의 고즈넉한 처마가 엿보인다.
차가워진 몸을 녹일 겸 수종사 다실(茶室)로 발걸음을 옮겼다.다실 입구의 현판에 적힌 글을 조용히 읊조렸다. 자연방하(自然放下),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다 내려놓고 욕심 없이 살아가라는 뜻이다. 수종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는 대웅전이 아닌 삼정헌이라는 다실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산길을 땀 흘리며 굽이굽이 올라온 사람들을 위해 수종사는 가장 좋은 자리를 사람들에게 내주었다.이 얼마나 넉넉한 산사의 인심인가.수종사 다실이 열기를 기다렸다가 첫 손님이 되어 그윽한 녹차 향기에 취해 보았다. 녹차가 우러나기까지 기다린다. 차를 마신다는 건 어쩌면 기다림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도(茶道),차 한 잔 마시는 것도 도를 깨치는 것이다. 깊은 바다처럼 고요한 찻잔에 내 마음을 비춰 본다.
탁류(濁流)같은 세상에서 맑은 차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탁류 속에서 꽃피우는 수련(水蓮)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야겠지.창 너머로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고,어느새 햇살이 다실 안과 찻잔을 환하게 비추었다.그 찻잔 속 수련이 내 눈에 맺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훈훈한 차로 따스해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실을 나서는 순간,서늘한 가을바람이 문지방을 넘어와 대웅전 처마 밑 풍경을 스쳐갔다.
<여행 정보>
#도착하기
대중교통- ➊ 지하철:지하철 중앙선 용문행 이용,양수역1번 출구로 나가 길 따라 걷다가 큰 삼거리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간다.다리를 건너 표지판을 만나서 왼쪽으로 가면 두물머리 산책로가 시작된다.팔당역에서 내려167번 버스를 타고 양수리 종점에서 내려도 된다.
➋ 버스:서울 청량리,상봉역,광나루역에서 양수리로 가는167, 88, 2000-1번 버스를 이용한다.
자가용- 강변북로나88고속도로 이용▶6번 국도(양평 방향)▶조안 교차로▶45번 국도(청평/대성리 방향)▶진중 삼거리▶양평 방면 우회전▶(구)양수대교▶양수 사거리 우회전▶두물머리 마을길 왼쪽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두물머리 산책로를 따라10~15분 정도 걷는다.(양평관광031-773-5101)
#따라가기
두물머리 입구▶두물머리 산책로 중간에 위치한 연꽃밭▶두물머리 느티나무▶산책로 따라 나오기▶나오는 길에 석창원 들르기▶시간이 더 있다면 두물머리 길 건너편 세미원 들르기▶수종사
추가 추천 코스: 경기도 양평군의 두물머리 산책로와 경기도 남양주군 다산길의2, 3코스의 일부가 연결된12km의 거리를 걸을 수도 있다. (양수역▶두물머리 산책로▶두물머리▶석창원▶양수대교▶중앙선 폐철로▶조안초등학교 입구▶고랭이마을▶다산 삼거리▶능내역▶마재마을▶다산유적지▶마현갤러리▶팔당호수변공원▶중앙선 폐철로▶봉쥬르▶봉안터널▶팔당댐▶팔당역)
#먹어 보기
새벽에 갔다면 두물머리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맛이 일품이다.또 바로 옆에 있는 아담한 미술관 겸 찻집 수밀원도 있다.수종사 다실에서 멀리 남한강을 바라보며 음미하는 녹차 한 잔은 필수이다.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조안면 경찰서 옆에 있는'기왓집 순두부'(031-575-9009)에서 담백한 순두부나 고소한 콩비지찌개에 금방 버무려 주는 배추 겉절이를 먹으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그 옆 넓은 한옥 커피점인'고당'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나들이가 된다.만약 기왓집 순두부와 고당을 놓쳤다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아쉬움을 달래 줄 퓨전 한정식 레스토랑'하늘정원'(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504-16, 031-521-7777)이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롯데호텔 조리장을 역임한 주인장이 엄선한 재료와 특별한 솜씨로 이루어진 퓨전 한정식,강이 보이는 예쁜 정원에서의 차 한 잔은 행복한 여유를 선사해 준다.
출처 : 유럽같은 국내 여행지
저자 : 백상현 지음
출판사 : 넥서스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