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인권 알레르기 정권

2013. 2. 13. 01:40정치와 사회

인물과 화제
“MB,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도 안 받았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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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촛불이후 조직 축소 등 탄압”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4·사진)가 과거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을 되돌아본 회고록 <좌우지간 인권이다>를 12일 출간했다. 인권위원장을 그만둔 지 3년7개월 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명박 정부는 ‘인권 알레르기 정권’ ‘민주주의 알레르기 정권’ ”이라며 “ ‘인권=민주주의=반정부=좌파’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를 넘어 실체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인권정책을 펴달라”고 당부했다.

안 교수는 2006년 10월 제4대 인권위원장에 취임해 2009년 7월 임기를 3개월가량 남기고 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당시 이임사에서도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조직으로 만들어 독립성을 훼손하려 했고 조직을 축소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안 교수는 인권위원장 재임 당시 틈틈이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책을 출간했다.


안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회고록은 원래 몇 십년 지나서 쓰는 것인데 그때는 인권위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3년 남짓의 인권위원장 재임 기간을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에 나눠 근무한 특별한 체험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권은 인권위를 ‘좌파 정부의 전위대’로 오해해 탄압을 저질렀다”며 “인권위는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립된 기구로, 박근혜 정부는 인권위가 어떤 기관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 기록을 참고해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의 서문을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인권위를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로 2008년 ‘촛불정국’ 이후 조직 축소를 꼽았다. 안 교수는 “인권위 조직 축소는 촛불집회에서 경찰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의견서에 대한 보복조치였다”며 “작은 정부라는 구호와 명분의 표적 제물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직후 감사원은 인권위에 대해 예정에 없던 직무감사를 실시했다. 당시는 촛불집회에서 경찰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이 쇄도하던 때였다. 이어 정부는 2009년 4월 인권위 조직 축소를 단행해 정원의 21%를 줄였다. 안 교수는 “2009년 3월30일부터 7월8일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긴 100일이었다. 하루도 편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 홀대도 폭로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 공식, 비공식 요청을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다. 초기에는 미뤘고 나중에는 아예 묵살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인권위가 2010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차기 의장국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 교수의 아쉬움도 담겨 있다. 그는 “인권위는 2009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 부의장국으로 2010년 3월 의장국을 수임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져 있었지만 끝내 무산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 언론·출판·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 한국의 인권상황은 급격히 추락했으며,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방한하는 등 국제 인권사회에서 치욕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에 대해서도 “예상 밖의 후임자”라고 말문을 연 뒤 “그 힘든 인권위 수장 자리를 국내외 인권 옹호자들의 사퇴 요청에도 3년간 버티고 유례없는 재임에까지 성공했다. 남다른 끈기와 저력이 부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독립기관인 인권위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인권위 구성원의 화합을 앞장서 해친 잘못까지 범했다”며 공개적으로 현 위원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책에 촛불집회 결정문,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 인권위 조직 축소에 반대하며 대통령을 상대로 최초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서 등 인권위의 수난사를 상징하는 자료들도 함께 첨부했다. 그러면서 “인권위에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권위의 헌법기관화와 인권기본법 제정, 인권위원 자격 심사제도 도입, 인권위원 인사청문 대상 확대 등을 제안했다.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라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유신시대의 정치관이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극복하고 진정한 선진국이 그러하듯 경제와 인권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가치임을 입증해 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