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란 무엇인가?

2013. 2. 15. 18:28정치와 사회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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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회주의란?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는 대중들이 권력의 수단을 통제하는, 다시 말해 생산 수단을 통제하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을 핵심 이념으로 삼는 사상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음 단계이며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계급 억압이 차츰 약해짐에 따라 최종적으로 공산주의로 발전한다.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는 둘 다 사회주의의 한 계열이다.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19세기에 파생되었다. 영국에서는 감리교 노동 공동체를 구상하던 로버트 오웬을 따르는 이들이 1827년 자신들을 설명하는 데에 처음 사용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1832년 이상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생시몽의 이념을 따르는 이들과 앙시끌로뻬디 누벨의 저자 삐에르 레로와 J. 레노들이 사용하였다. 그 후 이 용어는 사회주의자들과 그의 비난자들이 폭넓게 활용하였다. 사회주의 단체들 사이에 이견은 존재하나 이들은 대체적으로 19세기와 20세기 산업·농업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공유하고 있으며, 연대의 원칙과, 소수가 아니라 폭넓은 대중에게 유리한 경제 체제가 근간이 되는 평등한 사회를 부르짖는다는 것에 합의를 본다.

 

2. 분파

 

19세기 이후 사회주의 이념들은 다양한 분파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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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로 불리는 주요 사상들은 다음과 같다.

- 아프리카사회주의

- 자유사회주의

  아나키조합주의

  아나키공산주의

  의회공산주의

  자율주의

- 기독교 사회주의

- 이슬람사회주의

-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  민주사회주의

- 국제사회주의

- 조합주의

- 유토피아사회주의

- 이 중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전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사회정치적 또는 이론적 움직임들은 다음과 같이 세분화 할 수 있다.

- 의회공산주의

= 좌익공산주의

- 레닌주의

- 룩셈부르크주의

- 마오이즘

- 마르크스주의적인본주의

- 스탈린주의

- 트로츠키주의

- 상황주의

- 주체사상 (논란)

몇가지 "사회주의"의 형태들은 더 급진적인 세력들에게는 사회개량주의 또는 수정주의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다.

-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 진화론적 사회주의

- 페이비안주의

- 사회민주주의

- 대중 사회주의

- 중국적 사회주의와 여러가지 형태의 시장사회주의

- 베른슈타인주의

- 카우츠키주의

- 티토주의

- 노동시온주의

 

(1) 민주사회주의

민주사회주의(民主社會主義, Democratic Socialism)는 혁명을 부정하고, 의회제 민주주의 내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정치 사상이다.

자본주의의 점진적 개량을 추구하고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에 베른슈타인등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 1951년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채택했다. 독일의 좌익당과 같이 공산주의자가 자칭하는 예도 있다. 엄밀하게는 사회민주주의와 구별된다.

(가) 사회민주주의와의 차이

사회민주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원래 공산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 겨우 수정주의를 채택한 독일 사회민주당등을 중심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수정 사회주의를 의미하게 되어 갔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대전 후, 1951년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민주사회주의를 정식으로 채택함으로써 국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사회주의와 기본적으로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 즉,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가리킨다.

(2)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는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보는 사상으로, 나눔과 참여를 통한 평등실천을 주장한다. 넓게 보자면 해방신학과 사회복음주의가 이 부류에 들어갈 수 있다.

(가) 기독교사회주의의 이념

감리교 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한국교회사)에 따르면, 기독교사회주의는 빈부의 격차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제시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갖고 있다.

-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19장 18절 말씀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라"는 마태복음서 7장 12절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원리가 되어야 한다.

- 빈부의 격차문제,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계층과 빈곤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학적 모색과 선교적 실천을 추구해야 한다.

- 경제적 소외와 빈곤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임을 인식하여, 그 해결을 개인의 결단에만 의지하지 않고, 공동체적 관심과 사회적 책임의 틀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믿는다.

- 기독교사회주의는 창의적 생산을 촉진시키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바탕으로 한 시장주의 경쟁을 인정하지만, 자유와 경쟁이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문제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함을 믿는다.

- 나눔과 참여를 통해 인간평등과 부의 균형적 분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믿는다.

- 기독교 사회주의는 생산과 분배의 물질적 바탕과 수단이 개인이나 국가 또는 어느 집단의 독점소유물이 됨을 경계하며, 모든 물질의 소유권은 하나님(하느님)에게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관리해야 함을 믿는다.

- 기독교 사회주의는 유물론과 유심론을 양자택일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종교적 각성과 훈련을 통해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신의 조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이 생산과 분배의 조화를 이루어 인류 평화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나) 기독교사회주의 정당

- 에콰도르 기독교민주연합(Christian Democratic Union, Ecuador)

- 이탈리아 기독교사회당(Social Christians,Italy)

- 에콰도르 기독교사회당(Partido Social Cristiano,Ecuador)

- 칠레 기독교좌파당(Christian Left Party,Chile)

- 네덜란드 기독교 사회주의연합(League of Christian Socialists,the Netherlands)

- 네덜란드 기독교사회당(Christian Social Party (Netherlands)

- 스위스 기독교사회당(Christian Social Party,Switzerland)

- 슬로베니아 기독교사회당(Christian Social Party, Slovenia)

 

(3)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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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共産主義, communism, 라틴어: communis "함께하는")는 생산재의 공공 소유에 기반한 무계급· 무국가 사회 조직에 관한 이론, 또는 그러한 체제를 목표로 삼는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정치 운동들을 일컫는다.

이론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19세기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논의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정치 사상에 그 기원을 둔다. 인류의 초기 사회 조직은 "고대의 공산주의"라 정의될 수 있겠으나 정치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일반적으로 아직 현실화된 적이 없는 미래의 사회 조직을 제시한다.

스스로 공산주의자라 부르는 공동체들 사이에는 상당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와 블라디미르 레닌 (레닌주의)의 사상에 근접하다고 인식되는 일련의 분파들은 20세기 초 이후 국제 정치계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이에 관하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참고하라)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계급 투쟁은 핵심적인 역할을 지닌다. 이를 따르면 공산주의 체제의 형성은 자본가 계급 (자본을 소유하는 이)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의 최정점이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서 공산주의 생산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 불리는 과도기적 기간이 불가피하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형성되는 공산 사회는 역사적으로 실현된 적이 없음으로 하나의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공산당 지배하에 있는 정치경제적 체제를 일컫는 일에 흔히 사용된다.

(가) 공산주의의 유래와 발전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유럽 전역에서 사회당의 결성을 부채질 했으나 이들 당의 정책은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이른바 "개량"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예외였으니 바로 당내 한 분파인 볼셰비키가 레닌의 지도 아래서 1917년 혁명을 일으켜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국가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1918년 당은 이름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으로 바꾸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는 혁명을 통한 사회변혁을 주장한다는 의미로, 사회주의는 빈부의 격차에 반대하여,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이해되었다.

10월 혁명이 성공한 이후 해외의 수많은 사회당들은 공산당으로 변하고 소련 공산당과 다양한 종류의 관계를 맺었다. (국제 공산주의를 참고하라).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막 후 스스로를 공산주의라 칭하는 체제들이 동유럽에 들어섰다.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그 해 10월 31일 중국을 건국하였다. 기타 사회주의 정부 형태를 채택한 제3세계 나라들 중에는 쿠바, 북한, 베트남, 라오스가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 전 세계의 1/3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살게 되었다.

(나) 냉전과 공산주의

1) 반공주의 정부 지원

자본주의 국가들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전파를 막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는데 이 중 미국을 대표로 정치경제학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필리핀, 대한민국, 남베트남 등지에는 미국의 전면적 후원을 등에 업은 강력한 국가주의 정부가 들어서 반공산주의 교육을 강화하며 국내 진보사회운동 세력들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며 정치계에서는 극단적인 반공주의로 불리는 매카시즘 등으로 진보 진영 분열을 꾀했다. (자세한 것은 코인텔프로를 참고하라)

2) 미국내 반공산주의

이러한 반공주의는 미국에서도 극심하였다. 1950년-60년대이후 미국의 공산주의 탄압은 겉으로는 공산주의자와 간첩 추방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뉴딜정책 관련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힘없게 하려는 미국 공화당의 정치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미국정부는 지적 반공주의 그러니까 반공주의 지식인들의 활동을 CIA에서 거액보조금으로 키우는 방법으로 정치와 외교문제에 대해 자유주의 견해를 주장하는 미국내 자유주의자들의 수를 급감시키기도 했다. 매카시 광풍이 1954년 막을 내린 이후에도 미국내 공산주의 탄압은 계속되어 미국 지식인 사회는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는 미국 지식인사회에서 활약하던 진보주의자들은 물론, 공산주의자들과 지지자들이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출판계도 마찬가지여서 미국 출판사 편집자들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진보적 작가들의 책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출판인들은 유럽 출판계와 협동하거나, 다른 출판사에서 외면받은 작가들과 계약하는 등 공산주의 탄압으로 침체된 미국 지식인 사회를 회복시키고자 하였다.그 실례로 미국 랜덤하우스 계열사였던 판테온 출판사는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p.톰슨《영국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es), 에릭 홉스봄,E.H 카등의 저서,미국 노예제도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노예제도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Slavery, 유진 제노비스 저)등을 출판하였다.[1]

3) 유럽 공산주의

197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공산당등의 서구의 공산당들은 유로공산주의(Eurocommunism)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소련 특히, 스탈린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이며 무조건적인 지지의 전통에서 분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당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의미있는 유세 득표율을 거두어 프랑스 공산당의 경우 1970년대 프랑스사회당과 함께 7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소련의 위성 국가들의 붕괴 이후 유럽에서는 프랑스의회에서 공산당의 의석차지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등, 공산주의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쿠바, 베트남 등은 여전히 공산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다)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 주류 경제학으로부터의 비판 :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적 체제로서,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망'을 무시한 체제이다. 개인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공산주의 체제는 낮은 생산성과 개인의 불행이 만연한 체제가 되었다.

-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의 비판 : 공산주의의 역사적 단계론은 근대주의적 사고 방식이다.

- 무정부주의로부터의 비판 : 공산주의 이론은 레닌주의에서부터 잘못되었다. '국가'라는 것은 영구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권위체임에도 불구하고, 레닌주의는 국가를 절대화시켰다

(라) 스탈린주의에 대한 문제

일반적으로 스탈린주의는 공산주의의 한 분파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일부 트로츠키주의(국제 공산주의)에서는 스탈린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한 변형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제기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한 공산주의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계급이 생산수단을 공동소유하고, 생산물의 공동소유 및 분배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공산주의는 본래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 급진적 풀뿌리 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벌어진 러시아 내전의 과정 이후, 노동자 계급의 생산수단 공동소유라는 공산주의의 기본 원리가 크게 퇴색되고, 병영국가적인 모습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대공황을 극복하고, 큰 폭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자, 대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공산주의의 전형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스탈린에 의해 권력에서 쫓겨난 트로츠키마저도 자신의 저서인 "배반당한 혁명"(Revolution Betrayed)에서 1930년대 소련의 사회체제가 왜곡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소련은 노동자 계급의 공산주의 국가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트로츠키주의 소수파였던 국제공산주의경향(International Socialist Tendency)은, 소련에서 민주주의적 측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점, 민족주의적 선동구호가 난무한다는 점, 스탈린을 위시한 소련공산당 관료들이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을 독점하면서 소련의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스탈린주의의 소련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닌 국가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하였다.

즉, 국제공산주의경향에 있어서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유럽과 미국의 정부가 국내외의 자본 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크게 개입한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을 북한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남북한이 동일한 5개년 경제 개발 계획을 세우고, 강대국의 원조 하에 정부 주도의 산업화를 벌였던 것(남한의 새마을 운동과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마) 남한에서 공산주의의 위상

남한에서 공산주의는 경제적이고 학술적인 공산주의의 의미가 아니라 왜곡되고 적대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주로 한국 전쟁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으로, 한국 전쟁 20년 전후로 출생하였고, 일제 식민치하에서 일본인들이 교육과 관직을 독점한 상황에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와 경험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는 것을 금기시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과 미국의 반공주의에 편승한 1950~80년대 남한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반공주의(정확히 말하면 반북한주의) 교육을 벌였으며, 이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보다, 대체적으로 공산주의란 대단히 나쁜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경제체제가 아닌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로 오해되고 있다. 그것은 북한의 정치 경제 권력이 김일성,김정일 일가에 독점되는 독특한 시스템과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정권들을 거치면서 공산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의 반의어인 것처럼 쓰였다. 하지만 옛'공산주의'정부들이 민주적이지 않은 것과 상관없이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그 실례로 옛 동독의 정식국명은 독일민주공화국(DDR)였으며, 북한의 정식국명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한국에서 공산주의는 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라는 독특한 북한의 정치 시스템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다.

남한의 군인 대통령 시대를 지나 사회가 선진국식 민주화와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점차 진행하면서,공산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상당히 없어졌다. 하지만 남한 내에서 공산주의 자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매우 부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남한에서 공산당을 구성하는 것은 불법이며, 공산주의를 전면적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정치세력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바) 사회, 공산주의의 대표적 인물

- 카를 마르크스 : 공산주의 이론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 프리드리히 엥겔스 : 카를 마르크스와 공동 작업.

- 블라디미르 레닌 :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인물.

- 레온 트로츠키 :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 주도.

- 이오시프 스탈린 :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의 지도자가 됨.

- 로자 룩셈부르크 : 러시아 혁명의 시기에 독일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함.

- 안토니오 그람시 : 러시아 혁명의 시기에 이탈리아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함.

- 피델 카스트로 :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을 주도함.

- 에리히 호네커 : 동독의 마지막 지도자.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 공산주의 루마니아의 마지막 지도자.

- 마오쩌둥 :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지도자.

- 덩샤오핑 : 중화인민공화국 2세대 지도자.

- 장쩌민 : 중화인민공화국 3세대 지도자.

- 김일성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지도자.

- 김정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2번째 지도자.

- 호찌민 : 베트남의 공산주의 혁명가.

 

(4) 자유 사회주의

자유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계급과 폭력적, 강제적인 명령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공평하게 정보 및 생산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다. 권위적 명령체계와 사유재산를 폐지하고, 노동계층과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생산수단과 자원의 직접 통제함으로써, 목표(자유와 평등)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사상은 또한 정체성을 찾는 것, 사회 전반의 불법적인 권위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는 것, 그 권위의 해체를 실천하는 것 등의 생각을 담고 있다. 자유 사회주의자는 모든 형태(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성적인 형태 등)의 관행화된 권력 행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와 영향을 받는 자들 모두를 잔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사회주의 사상들이 국가통제와 사회공학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나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에 반해, 자유 사회주의자들은 무역 연합, 노동자 의회, 지방자치제, 시민 집회, 기타 비관료주의적·분권적 행위 수단 등을 그들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자유 사회주의자들은 국가 체제를 자본가 계층의 보루로 인식하며, 이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지지한다.

정치철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상들이 자유 사회주의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 다양한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 포함)

- 무정부주의적 집산주의(anarchist collectivism)

- 무정부주의적 노동 조합 운동(anarcho-syndicalism)

- 상호주의(mutualism)

- 사회 생태주의(social ecology)

- 의회 공산주의 (또는 칼 마르크스 또는 레닌에 의해 묘사된 사회주의 발전의 이후 단계로서의 공산주의 그 자체 포함)

자유 사회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와 자유 공산주의는 동의어가 아니라고 한다. 한편, 몇몇 학자들은 자유 사회주의를 무정부주의와 동의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5)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社會民主主義, Social democracy)는 19세기말에 고전적인 사회주의로부터 등장한 정치 사상이다. 초기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블라디미르 레닌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카를 카우츠키와 장 조레스(프랑스 사회당 당수)등의 개량주의·진화주의자들을 동시에 포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민주주의는 비혁명적 접근법과 동일시되었다. 현대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더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점진적인 의회주의적 개량 프로그램을 강조하여 이론적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최종 목표는 아예 잊거나 또는 친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또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창하는 특정 사회 형태를 의미 할 수도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정당들을 포괄하는 전세계적 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사회민주주의"를 대리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로 정의한다. 이러한 형태는 자유 민주주의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다음의 원칙을 중시한다. 첫째로는 "자유"가 있으며 이는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차별을 당하지 않을 자유와 생산 수단의 소유주 또는 폭압적인 정치 권력의 대리인 들에게 의존하지 자유를 포함한다. 둘째로는 "평등과 사회 정의"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법으로만 존재하는 정의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정의를 포괄하고 모든 이들, 구체적으로는 육체·정신·사회적 장애를 겪는 이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연대"가 있으며 이것은 불의와 불평등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 대한 동정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단결을 뜻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도정을 추구하며 이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1980년대, 서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식의 사회주의 추구에 회의를 품었으며 특히, 결국에는 결별한 사례도 있다.

(가) 사회민주주의 정당

수많은 민주주의 나라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존재한다. 20세기를 전후하여 프랑스의 사회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 그리고 영국의 노동당을 비롯한 유럽의 유사 정당들, 또한 캐나다의 신민주당,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그리고 노르웨이의 노동당등은 강력한 노동법, 주요 산업의 공기업화(이전에는 국유화), 그리고 사회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을 소개했다.

(나) 한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대한민국의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과 진보신당도 사회민주주의 성격의 진보정당이며, 죽산 조봉암이 당수였던 진보당도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였다. 조소앙은 해방후에 한국독립당과 결별하여 사회당을 창당하였다.

(다) 사회민주주의자 목록

  * Karl Ast

  * Pavel Axelrod

  * 헬렌 클라크

  * Fedor Dan

  * 밥 호크

  * Toomas H. Ilves

  * Ricardo Lagos

  * 마크 레이썸

  * Jack Layton

  * Mihkel Martna

  * Julius Martov

  * Aleksandr S. Martynov

  * Georgi Plekhanov

  * August Rei

  * 세골렌 루아얄

  * 케빈 러드

  * 게르하르트 슈뢰더

  * Vera Zasulich

  * Einar Gerhardsen

  * Jens Stoltenberg

  * Bulent Ecevit

 

3. 영향

(1) 마르크스주의

 

파일:Marx Engels Lenin.svg 

 

마르크스주의(Marx主義, 독일어: Marxismus, Marxism)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언론인, 혁명가였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기반을 둔 사회이론 및 정치 행위이다. 마르크스는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철학,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 및 파리 꼬뮌에 기초,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이상적 사회주의 및 프루동의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당시 사회주의 이론들은 너무 이상에 치우진 이론이었기 때문이었다.[1]마르크스의 사회 비판은 《자본론: 정치경제학비판》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공산주의 국가 밖에서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규모는 이탈리아 등 남유럽과 일본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작은 편이다.

주석

[1] 《교실 밖의 세계사 여행》/김성환 지음/사계절

 

(2) 아나키즘

 

파일:Anarchy-symbol.svg 

 

아나키즘의 대표적 상징인 Circle-A 문양.

 

아나키즘(Anarchism, 프랑스어: Anarchisme 아나르시슴[*])은 모든 정치적인 조직·권력 따위를 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를 전파하고 실현하려는 운동으로, αυ(없는)와 αρχοζ(지도자)가 합성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αυαρχοζ)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라고도 불리지만,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즘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며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 꺼려한다. 대신에 자유연합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출처 필요] 역사에서는 고대의 공동체에서 비롯하여 갖가지 공동체나 고대의 철학, 사상에서도 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나 근대에 이르러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발로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함께 발흥하였으며 페미니즘, 펑크 문화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아나키즘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포용하는 중용이념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가) 사상

아나키즘은 그 특징때문에 다른 사상들과 달리 정의내리기가 매우 까다롭다. 일반적으로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을 말하며, 이 외에도 다양한 성향이 있다.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일어난 만큼 평등을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현대의 일부 아나키스트들이나 개인주의자들은 평등보다는 자유를 중요시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국가와 권력에 대한 반대로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하기에 공산주의와 대립한다. 이와 같은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기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반대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공산주의와 세를 다툴 만큼 세계 도처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였으나, 권력이 부여되는 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성향으로 차츰 세력을 잃었지만, 혁명 운동이 일어난 어느 곳에서나 아나키즘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 살아났다. 대표적인 아나키즘의 투쟁은 파리 코뮌, 에스파냐 내전, 그리고 프랑스 학생혁명이며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에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참가 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발흥한 니힐리즘과의 차이점은 허무주의가 구제도 모두를 부정하고 철저한 파괴를 주장하면서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이 없었으나 이에 반해 아나키즘은 새로운 대안을 공동체 자치에서 찾았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파괴나, 몰락후의 계획 경제를 대안으로 하였으나, 아나키즘은 계획 자체를 부정하고 공동체 내의 자립, 자치, 자영 경제를 대안으로 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 역사

정치적 아나키즘의 탄생은 윌리엄 고드윈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아 저술한 《도덕과 행복에 대한 정치정의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출판된 1793년으로 간주되며, 고드윈은 이 책에서 모든 형태의 정부를 개인의 개화를 가로막고 부패로 이끌 뿐이라고 비판했다. 막스 슈티르너의 저작 《유일자와 그의 소유》은 헤겔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맡았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아나키사회를 위계질서와 권위가 부재된 것으로 간주했으며, 권위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종교, 국가, 군대 등이 권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다) 흐름

아나키즘 운동에는 크게 세 조류가 존재하는데,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환경주의적 아나키즘이 있으며 환경주의적 아나키즘은 최근에 생겨난 조류이다. 현재 다양한 아나키즘 이론이 공존하고 있으며, 아나키스트로 자신을 정의하는 집단들 가운데서도 전략, 전술, 조직, 정치철학, 경제학, 사회학적인 면에서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

1)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혹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상호호혜주의, 공산주의, 노동조합주의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유재산의 말소와 생산수단의 공유를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프루동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으며 후에 바쿠닌과 그의 추종자들은 제1인터내셔널에서 중요한 세력을 형성했으나 카를 마르크스와의 대립으로 바쿠닌이 국제당에서 축출된 이후 독립된 세력이 되었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항하며 공동체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연방주의등의 형태로 사회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다리 역할로 간주된다.

하위분류로 다음과 같은 분파들이 존재한다.

-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 공산주의적 아나키즘

- 아나코생디칼리즘

- 프루동주의

- 무장아나키즘

- 후기아나키즘

2)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자유지상주의적 개인주의는 사유재산의 소유를 인정한다. 이들에 따르면 권위주의 조직은 민중의 외면 속에서, 혹은 투쟁의 결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이며 이것은 사회에 의해 억압받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본다. 국가에 대한 견제 목적으로 개인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중간적 조직들은 군대를 조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국가적"인 조직이 되지 않는 한 올바른 것으로 본다.

-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 자유방임적 아나키즘

- 그리스도교 아나키즘

- 자본주의적 아나키즘

- 시온주의적 아나키즘

3) 환경주의적 아나키즘

환경주의적 아나키즘은 모든 형태의 산업화 경제와 자연의 파괴를 거부하며, 산업화를 주장한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들에도 반대한다. 현재 아나키즘의 세번째 극으로 자리 잡혔으며,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산업화와 기술의 지배를 거부하며 원시적 사회로의 회귀를 주장하기도 한다.

- 환경주의적 아나키즘

- 원시주의적 아나키즘

- 녹색아나키즘

4) 아나키즘에는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분파들이 존재한다.

- 인식론적 아나키즘

- 아나코페미니즘

- 아나코펑크

- 초월주의적 아나키즘

- 크립토아나키즘

- 국가아나키즘

5) 결론

아나키즘의 다양한 성향들은 개인의 자유가 노동조합, 공동체, 법, 정부를 비롯한 어떤 조직의 권위에도 억압받지 않는 자유지상적인 사회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영감을 얻은 흐름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때로 고전적 자유지상주의를 전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아나키즘의 배경이 되는 철학의 다양성은 아나키즘 내의 다양한 흐름의 존재에서 드러나며, 이 때문에 동일한 목적을 가진 아나키스트들이라고 해도 그 강령적인 부분에서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통일된 운동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라)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 미하일 바쿠닌

  *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 레프 톨스토이

  * 머레이 북친

  * 엠마 골드만

  * 노암 촘스키

  * 막스 슈티르너

  * 벤자민 터커

  * 윌리엄 고드윈

  * 신채호

  * 박열

  * 이회영

  * 하기락

  * 구승회

  * 박홍규

  * 조약골

(마) 한국의 아나키스트 단체

1) 의열단

의열단(義烈團)은 약산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아나키스트 성격의 무장독립운동단체이다. 이들은 프랑스 조계지역(외국인 치외법권지역)인 중국 상하이에서 폭력항쟁으로 대일본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한 이유는 프랑스와 일본의 대립으로 인해, 프랑스 경찰이 백범 김구선생을 포함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의열단은 광복을 위해 폭력만을 수단으로, 암살만을 정의로 삼으면서, 5개소의 적 기관 파괴와 7악의 제거를 위해 파괴활동을 벌였다. 이때 5개소의 적 기관은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경찰서·기타 중요 기관이며, 7악은 총독부 고문·군 수뇌·대만 총독·친일파 거물·밀정·반민족적 토호·열신(劣神)이다.[1]

가) 주요 의거

  * 1920년 9월 14일 박재혁의사가 부산 경찰서에 들어가 경찰서장을 폭사시켰다.

  * 1920년 12월 27일 최수봉의사가 밀양경찰서 소속 모든 경찰이 모인 가운데 폭탄을 투척하였다.

  * 1921년 9월 12일 김익상의사가 조선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 폭발로 청사 일부가 부서졌다.

  * 1922년 3월 김익상, 이종암, 오성륜이 상해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었다.

  * 1924년 1월 5일 김지섭의사가 도쿄의 궁성 정문 앞 이중교에서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하였다.

  * 1926년 12월 나석주 의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습격하였다.

의열단의 의열투쟁은 김지섭 의사의 도쿄거사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김원봉 단장은 무장투쟁이 단원들만 희생된 채, 큰 성과를 내지 못함에 따라,의열단의 투쟁노선을 재정립하고 방향을 전환할 것을 검토했다. 이후의 활동들은 의열단 지휘부의 체계적인 투쟁이 아닌, 개별적인 투쟁이었다. 1928년 의열단은 '창립 9주년에 즈음하여'라는 성명서를 내고, 향후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투쟁에 역점을 두어 활동하겠다는 점을 밝혔다.

나) 단원

창립단원

윤세주, 이성우, 곽경, 강세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 김상윤, 신철휴, 배동선, 서상락, 권준, 이수택, 이낙준

1923년 상해 일본 총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의열단 단원이 천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926년 이후 많은 수의 의열단원들은 중국 국민당정부의 북벌을 위한 학교였던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정치교육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의열단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조선민족혁명당이 각 파벌의 권력투쟁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않아 의열단은 조선민족독립당으로 새출발을 하고 11명의 위원을 선출했다.

다) 공약 10조

  * 천하에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기로 한다.

  *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희생하기로 한다.

  * 충의(忠義)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으로 한다.

  * 단의 뜻을 우선하고 단원의 뜻을 실행하는데 속히한다.

  * 의백(義伯,올바른 성품을 가진 지도자) 한 사람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하게 한다.

  * 언제 어디서든지 매월 일차씩 상황을 보고한다.

  * 언제 어디서든지 모이도록 요청하면 꼭 응한다.

  * 죽지않고 살아있어 단의 뜻을 이루도록 한다.

  * 한 사람을 다수은 위하여, 다수는 한 사람을 위하여 헌신한다.

  * 단의 뜻에 배반한 자는 처살한다.

라) 의열단 선언

김원봉은 1923년 북경을 방문하여 당시 임시정부의 외교우선론에 반대하고 무장투쟁론을 주장하던 단재신채호선생을 만나 의열단의 정신을 문서화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신채호는 김원봉을 따라 상해로 와서 폭탄 만드는 시설을 살펴보고, 약 한달 동안 여관방에 앉아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의열단선언 즉,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다. 그들은 의열단 선언을 인쇄하여 살포하였고 단원의 필독서로 지정하였다. 의열단원들은 거사 후에 본 선언문을 남겨 거사의 뜻을 전달하였다.

-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 암살· 파괴·폭동으로써,

-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조선혁명선언 제 5장 마지막 문장>

이 선언에서 신채호는 독립투쟁방법으로 이승만의 외교론과 안창호의 준비론 등을 모두 부차적이라고 설득하였으며, 무장투쟁을 최우선하는 의열단의 뜻을 분명히 밝혀주었다.

마) 임시정부와의 관계

임시정부 초기에 안창호는 부분적인 모험행동을 피하고 적응 시기에 대거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폭탄을 기율없이 단독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임시정부 군사당국에 예속하여 실력을 점축한 뒤 상당한 때에 대거하라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김원봉은 임시정부의 활동을 미온적인 것으로 보았고, 이승만의 신탁통치 제안이나 임정내의 파벌 싸움에 매우 실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자신들의 의열투쟁을 '모험행동'으로 보는 것도 받아 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개조파는 국민대표회의의 실패 이후에 창조파를 소외시키기 위하여 의열단과 제휴하였다. 이 후 의열단은 임시정부의 한 축이 되었다. 또한 김구선생도 의열단의 활동에 크게 고무되어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무장투쟁이라는 같은 방법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석

[1] 임종국 (1991년 2월 1일). 《실록 친일파》,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서울: 돌베개, 128쪽. ISBN 8971990368.

2) 한국 자주인 연맹

 

(3) 노동조합주의

민주주의(社會民主主義, Social democracy)는 19세기말에 고전적인 사회주의로부터 등장한 정치 사상이다. 초기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블라디미르 레닌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카를 카우츠키와 장 조레스(프랑스 사회당 당수)등의 개량주의·진화주의자들을 동시에 포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민주주의는 비혁명적 접근법과 동일시되었다. 현대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더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한 점진적인 의회주의적 개량 프로그램을 강조하여 이론적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최종 목표는 아예 잊거나 또는 친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또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창하는 특정 사회 형태를 의미 할 수도 있다.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정당들을 포괄하는 전세계적 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사회민주주의"를 대리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로 정의한다. 이러한 형태는 자유 민주주의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다음의 원칙을 중시한다. 첫째로는 "자유"가 있으며 이는 개인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차별을 당하지 않을 자유와 생산 수단의 소유주 또는 폭압적인 정치 권력의 대리인 들에게 의존하지 자유를 포함한다. 둘째로는 "평등과 사회 정의"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법으로만 존재하는 정의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정의를 포괄하고 모든 이들, 구체적으로는 육체·정신·사회적 장애를 겪는 이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연대"가 있으며 이것은 불의와 불평등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 대한 동정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단결을 뜻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도정을 추구하며 이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1980년대, 서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식의 사회주의 추구에 회의를 품었으며 특히, 결국에는 결별한 사례도 있다.[1]

(가) 사회민주주의 정당

수많은 민주주의 나라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존재한다. 20세기를 전후하여 프랑스의 사회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 그리고 영국의 노동당을 비롯한 유럽의 유사 정당들, 또한 캐나다의 신민주당,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그리고 노르웨이의 노동당등은 강력한 노동법, 주요 산업의 공기업화(이전에는 국유화), 그리고 사회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을 소개했다.

1) 한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대한민국의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과 진보신당도 사회민주주의 성격의 진보정당이며, 죽산 조봉암이 당수였던 진보당도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였다. 조소앙은 해방후에 한국독립당과 결별하여 사회당을 창당하였다.

(나) 사회민주주의자 목록

  * Karl Ast

  * Pavel Axelrod

  * 헬렌 클라크

  * Fedor Dan

  * 밥 호크

  * Toomas H. Ilves

  * Ricardo Lagos

  * 마크 레이썸

  * Jack Layton

  * Mihkel Martna

  * Julius Martov

  * Aleksandr S. Martynov

  * Georgi Plekhanov

  * August Rei

  * 세골렌 루아얄

  * 케빈 러드

  * 게르하르트 슈뢰더

  * Vera Zasulich

  * Einar Gerhardsen

  * Jens Stoltenberg

  * Bulent Ecevit

주석

[1]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 대한민국 교육인적자원부

 

(4) 국제주의

국제주의(internationalism, 인터내셔널리즘)은 독립된 주권국가의 공존(共存)을 전제로 하여 국가주권의 제한에 의하여 조직화된 초국가적 사회의 형성을 이상으로 하면서도 그러한 전체사회의 부분으로서의 주권국가의 독립적 기능을 긍정하는 사상이다.

중세적 보편국가(普遍國家)의 점차적인 붕괴와 더불어 성립된 유럽의 주권적 민족국가의 초기에 보여지는 국제주의는 왕조간(王朝間)의 그것이었으나, 그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19세기 전기에 있어서의 신성동맹(神聖同盟)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사이 시민계급은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으나 곧 19세기 중엽 이후 그들을 담당자로 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등장한다(유럽 협조). 그러나 그 후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단계에 돌입하고 양차대전의 경험을 거쳐 형성된 국제연맹 및 국제연합의 현실은 자본주의적 틀 속에서의 19세기적인 국제주의의 발전의 여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것에 대하여 19세기 중엽부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등장하였다. 이것은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는 상호일치·공통한 것이며 그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함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투쟁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굳게 단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말한다.

 

(5) 실용주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또는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쳐 미국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미국의 독자적인 철학사상이다.

식민시대 이래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사상계는 주로 독일 관념론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에 급속한 발전을 본 미국의 자본주의는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사상면에서도 유럽으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독자성을 확립하게 하였다.

프래그머티즘의 발생 동기는 자본주의의 근대과학적 사고방식과 미국의 전통적 퓨리터니즘과의 조화를 꾀하려는 일군의 학자들(메타피지컬 클럽)에게 귀착된다. 그들 가운데는 철학자를 비롯해서 자연과학, 법학, 역사학, 신학, 심리학 등 여러 전문분야의 인사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프래그머티즘은 어떤 일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당시의 미국적 현실에서 결실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이라고 해서 유럽의 전통적 사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유럽의 새로운 경험론이나 과학주의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그것에 머무름이 없이 종래의 추상적·관념적인 철학상의 여러 논쟁을 지양하려는 데에 독자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다.

프래그머티즘이란 용어는 희랍어의 '프라그마(pragma)'에서 유래한 것이다. 퍼스는 이 용어를 실천이성의 명령을 프래그티슈(praktisch), 프래그매티슈(pragmatisch)로 나누어 전자를 선험적(先驗的) 또는 정언적(定言的), 후자를 경험적 또는 가언적(假言的) 의미로 사용한 칸트의 용법에 따라서 채용하였다. 퍼스의 이론은 '의미의 이론'이라고 불리는데, 그에 의하면 사물에 관한 명확한 관념은 필연적으로 실제상의 결과나 가능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념을 명석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관념의 실제적 결과나 가능성을 고찰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관념이나 사고활동은 회의를 해소하고 확고한 행동을 가능케 하는 신념을 확립하는 데 있다. 신념이란 곧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퍼스의 원리이며 또 프래그머티즘의 근본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퍼스의 '의미의 이론'에 더욱더 행동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프래그머티즘을 '진리의 이론'으로 전개한 사람은 제임스이다. 퍼스의 이론에 있어서는 대상에 관한 우리의 사고가 명확한 판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만 우리의 사고 안에 일정한 신념을 확립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제임스에 의하면 우리의 관념이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실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실천적 차이를 나타내는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관념의 진위는 그 자체로서는 결정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이 사실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보아서 결과가 유효하다고 검증(檢證)된다면 그것은 참(verity)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는 없으며 진리의 기준은 오로지 우리의 실생활에서의 유용성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상대적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프래그머티즘은 듀이에 의해서 그 행동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었고 개인적 관심에서 사회적 관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듀이의 철학은 보통 '도구주의(instrumentalism)' 또는 '실험주의(experimentalism)'라고 불린다. 우리의 모든 관념이나 사상은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organism)의 일종인 까닭에 환경과의 상호작용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경험이란 곧 이러한 상호작용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경험이 순탄하지 못할 때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기능이 다름아닌 사고작용인 것이다. 생활경험의 한 가지 기능으로서 발달하여 장래를 예상할 수 있는 지성을 특히 창조적 지성(creative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 장래에 더 잘살기 위한 불가결의 방법이며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말해서 프래그머티즘은 생활의 철학이요, 상식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진리를 실생활에 있어서의 유용성에 의해 결정하는 점에서 공리주의적이며, 진리는 경험에 의해서 검증되고 변화한다고 보는 점에서 경험주의적이며, 지식보다는 행동을 중시하는 점에서 반주지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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