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수사, 천만 서울시민을 향한 친위쿠데타

2013. 3. 15. 13:11정치와 사회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섬 시칠리아. 불과 20여전 전만 해도 이곳은 마피아에 의해 지배받던 곳이었습니다. 시칠리아 마피아가 악명 높았던 이유는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난사하고 폭탄을 터트려 살해해도 행정력과 경찰력까지 완전히 장악한 그들을 통제할 국가는 없었습니다. 마피아는 1992년 본토에서 군대가 파견되기 전까지 약 200년간  폭력과 공포를 통해 시칠리아를 지배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조직은 ‘책임지지 않는 조직’입니다.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조직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조직이 하나 있습니다. 책임질 줄 모르는 한국의 검찰은 마피아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표적을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려 하는 속성도 이와 유사합니다.

 

검찰역사에 길이 남을 굴욕적인 판결문

 

지난 2009년 12월 검찰은 총리 재임 시절인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곽영욱 전 사장으로부터 대한석탄공사 사장 선임 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한명숙 총리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소환에 응하지 않은 한 전 총리에게 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고 총리 공관에 대한 현장검증을 진행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6개월 뒤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던 상황. 항간에서는 이런 검찰의 태도를 선거를 앞두고 유력 여권주자의 발을 묶으려는 표적수사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선거직전이었던 2010년 4월 한 전 총리는 13번의 공판 끝에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초방빅 경합이 펼쳐지던 상황에서 후보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그 후보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는 오세훈 47.5%, 한명숙 46.8%로 0.7%포인트 격차로 여당후보의 승리. 검찰의 수사가 서울시장 선거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여기서 남는 것은 '과연 검찰의 수사가 적절한 것이었나'하는 문제입니다.

 

어제 그에 대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4일 한 전 총리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깨끗하게 무죄. 재판의 결과뿐 아니라 재판부의 판결문은 검찰입장에서 볼 때 차마 눈물 없이 읽어 내려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굴욕적입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뇌물공여를 한다는 곽영욱의 진술은 한명숙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무조건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실제로 만난 날이 오찬일 밖에 없다보니 생겨난 이상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이 들고, 또 곽영욱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두 사람은 금품수수를 약속하지 않았는데, 한명숙이 이를 '센스'로 알아차렸다는 것을 전제로 일사분란하게 돈 봉투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것을 상정한 검사의 주장은 상황적 타당성이 결여됐다. 오찬이 끝나면 오찬장 문 앞으로 와 있는 수행과장은 물론, 열린 문을 주시하며 오찬장 앞을 주목하고 있었을 경호팀 등이 있어 방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인데, 한명숙이 대담하게 돈을 받아서 서랍장 등에 숨겨두고 나온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의심이 든다. 한명숙이 돈봉투를 받아 서랍장이나 드레스룸의 문을 열고 숨겨 놓으려 했다면 한명숙은 오찬 참가자 중 가장 늦게 나와야 하는데, 이는 의전이나 사회통념 그리고 일상적인 총리공관 오찬의 관례 등에 비추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임에도 이러한 이례적인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명숙의 손가방이나 핸드백은 오찬 중에는 수행과장이 갖고 있었고, 당일 한명숙은 코트도 입고 있지 않았으며, 입고 있던 옷은 3만 달러와 2만 달러가 든 편지봉투가 들어가기에 너무 작은 점, 당일 일정이 많아 서둘러 집무실로 가야할 상황이어서 한명숙이 두툼한 돈봉투 2개를 받아서 이를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고 떠났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총리공관 및 동석자가 있는 오찬자리라는 상황, 오찬을 마친 후 의전에 따라 퇴장과 배웅이 이루어진다는 의전 정황 그리고 오찬 중에는 동석자간에, 오찬 후에는 경호원과 수행과장 등 다수의 주시 속에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정황 등을 고려하면, 한명숙이 오찬 직후 다른 사람들 모르게 곽영욱으로부터 돈을 수수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2010년 4월 1심 판결문 중

 

이 깨알 같은 판결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검찰이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을 책으로 펴낸다면 아마 한권도 팔리지 않을 겁니다. 야권과 한명숙 씨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써낸 검찰의 이번 소설은 그만큼 유치찬란합니다. 검찰은 1심에서 저런 굴욕적인 판결문을 받아들고도 고법에 상고했으나 서울고법 제4형사부(재판장 성기문 부장판사)는 2012년 1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무죄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오히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피고 곽영욱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강압적인 수사를 벌였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피고인 곽영욱이 뇌물공여를 자백했다가 번복하자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됐고, 곽영욱은 당시 상황에 관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고 진술한 점, 이런 상황에서 곽영욱으로서는 뇌물공여를 진술하라는 검찰의 추궁에 부합하지 않는 진술을 하는 것은 기소된 횡령죄, 증권거래법위반죄 사건의 처리와 관련해 불이익한 처분을 받아 그가 가장 두려웠던 구금의 장기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곽영욱은 당심에서 '하라는 대로하면 내보내 준다고 해서 비자발적으로 진술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곽영욱은 뇌물공여에 관한 검찰 조사 당시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한 상황에 있어 장기간 구금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자신과 가족의 재산상 이익, 궁박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검찰의 뇌물공여 조사에 협조하며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또 곽영욱은 검찰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있어 검찰의 의도에 영합하게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2년 1월 2심 판결문 중

 

어제 대법원의 판결 역시 “곽영욱이 검찰에서 처음으로 뇌물공여 사실을 진술할 당시의 심리적·신체적 상태, 곽영욱에 대한 최초의 혐의 내용과 실제로 기소된 범죄사실 내용의 차이 등에 비춰 곽영욱이 검찰의 수사협조에 따른 선처를 기대하고 허위사실을 진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런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선거개입과 허위자백유도,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 검찰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1심부터 어제 대법원의 판결을 모두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은 대체 왜 그랬을까?

 

정치적 입장을 떠나,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검찰은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한 한명숙이라는 정치인에게 타격을 입힐 목적으로 <표적기획수사>를 벌인 것이죠. 이것은 단지 한명숙이라는 정치인에게 타격을 준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검찰은 선거기간에 천만 서울시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제공함으로서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수사기관의 선거개입은 사실상의 ‘친위쿠데타’나 다름없습니다. 2010년 선거에서 두 후보의 표차는 불과 0.7%였습니다. 서울시민 1000명중에 4명만이 검찰의 잘못된 신호를 받아들였다 해도 결과가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서울시민은 결국 검찰의 의도대로 애초 얻었어야 할 시장을 잃었고, 검찰이 ‘임명한’ 시장을 얻었습니다. 검찰이 기소권을 이용해 천만 서울시민들을 상대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한명숙 씨가 아주 탁월한 정치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분노하는, 분노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특정 정치인에 대한 입장과는 무관한 이나라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대체 어디에?>

 

지난해 대선에서도 이와 비슷한 데자뷰를 경험했습니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경찰이었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직후인 12월 16일 밤 11시경 “국정원 여직원이 제출한 컴퓨터 2대의 하드디스크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기습적인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박빙의 레이스를 달리던 두 후보의 지지율에 경찰의 발표가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선승부가 갈린 뒤 국정원 직원의 혐의가 속속 드러났고 경찰은 수차례 뻔뻔한 말바꾸기를 해야 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수십 개의 아이디로 새누리당에 유리한 수백 개의 글을 작성한 흔적이 발견되었음에도 수사시작 3개월이 지난 오늘까지 수사는 별다른 진척이 없습니다. 대선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해 피의자 소환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찰에게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번 수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권은희 수사과장은 별다른 이유없이 좌천됐고, 사건의 진상을 세상에 알린 국정원 내부고발자들은 해고됐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경찰이 수사권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검찰과 경찰은 현재 수사권조정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국민들은 참 난감합니다. 검찰은 기소권을 이용해서, 경찰은 수사권을 이용해서 권력에 부역하는 상황에서 누가 뭘 갖든 그런게 뭐가 중요할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수사권을 누가 갖든 '부역의 방식'만이 달라질 뿐입니다. 3년의 터울을 두고 검찰과 경찰, 양대 수사기관이 살아있는 권력의 편에서 선거에 개입했고, 그들의 의도했던 대로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참 무섭고도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선거에 개입하여 국가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음에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않는 검찰과 경찰. 이 나라의 마피아들입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국민의 선출’이 아닌 ‘수사기관의 임명’을 받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덕과 윤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