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환바이칼 기차

2014. 9. 10. 22:52건강과 여행

 

바이칼 호수와 속 깊은 대화, 환바이칼 기차여행

글,사진:이종원

 

 

바이칼

한국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호수라기 보다는 거대한 바다처럼 보이니 그 격정적인 감동을 어찌 억제 할 수 있으리. 더구나 한민족의 뿌리가 이곳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바이칼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깊고 깨끗하며 담수량이 가장 많은 호수다. 최고 수심이 1,742m, 덕유산(1614m)을 거꾸로 넣어도 잠길 정도로 심연이며, 전 세계인이 매일 500ml 생수를 한병씩 마신다고 해도 40년이 걸릴 정도로 저수량이 많다.

 

이렇게 수심이 깊다보니 호수 주변은 급경사 절벽으로 이루어져 실은 접근 조차 힘들었다. 북쪽은 만년설산으로 덮여있어 좁은 길도 낼 수 없었다. 이런 척박한 환경 덕에 접근하기 힘들었으니 오늘날 바이칼 호수가 더욱 신비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런 신비의 호수를 가장 멋지게 느끼려면 환바이칼 관광열차에 오르면 된다. 크루즈에 올라 타 미항을 여기저기를 들리듯 경치가 빼어나고 스토리가 가득한 곳에 기차는 정차를 한다. 시속 20km, 달린다기 보다는 느릿느릿 걷는 것이 맞을 정도로 기차는 호수가를 천천히 더듬어 간다.

 

환바이칼 구간은 모스크바와 블리디보스토크를 잇는 시베리아횡단구간 9,288km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나며 특별한 구간이다.

 

 

 

이루쿠츠크역에서 일주일에 두 번, 08:16 기차가 출발해 슬루지안카까지 전기기차로 2시간에 주파하고 슬루지안카에서 30분간 멈춰 디젤로 동력을 바꾼다. 이곳에서 앙가쏠카-끼르끼레이-삘라빈늬-슈마허-바이칼포트까지 총 89km 거리를 8시간에 걸쳐 천천히 달린다. 바이칼포트에서 유람선을 갈아타고 리스트비앙카 항구까지 가서 이르쿠츠크까지 버스로 간다. 역순행 기차편도 있으며 하루를 꼬박 투자를 해야한다.

 

지도에서 보듯 환바이칼 구간은 꿀뚝에서 바이칼 포트 구간으로 보면 된다. 평균수심이 1,000m로 급경사산악지대이기에 철로를 놓는데 가장 힘든 공사구간이란다. 수에즈운하 공사비의 두배가 들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중국, 터키, 아르메니인까지 동원해 39개의 터널 뚫고 교량을 이어 만들었다.  

 

 

알렉산더 3세의 명으로 1891년부터 착공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바이칼 구간만 빼고 1900년 동서 구간이 모두 완공되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잇는데 사망한 인원만 만명이 넘는단다.

 

산악지역에다 수심이 깊은 바이칼 구간만은 철로를 놓을 기술도 부족했을 뿐더러, 막대한 돈을 댈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시베리에에 물자공급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쇄빙선이었다. 기차를 배에 싣고 포트바이칼에서 호수를 건넌 후 탄호이역에서 다시 선로에 올랐다. 그러나 1903년~1904년 겨울 얼음이 너무 두꺼워 쇄빙선마저 운행하지 못하자 러시아인들은 바이칼역에서 바부쉬킨 역까지 얼음 호수위에 빙상철로를 놓은 것이다. 호수 빙판 위를 달리는 기찻길을 만들었으니 인간의 상상력은 이렇게 대단하다.

 

1902년 스루지안카에서 바이칼까지 공사를 시작했고 드디어 1904년에 86km 바이칼 철도가 완성되면서 시베리아 9,288km 구간은 완성되었고 1905년 드디어 환바이칼 철도가 운행하게 된다.  터널 39개, 회랑 16개 다리와 같은 인공구조물이 470여개 가 된다. 1915년에는 복선이 완성되어 비로서 철로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되었다. 얼마나 힘든 구간이었으면 이곳을 골든버클이라 불린다.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황그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1956년 이르쿠츠크를 지나는 앙가라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바람에 강이 불어 철로는 수장되고 만다. 이에 이르쿠츠크에서 슬루지안카까지 산을 관통하는 우회철도가 놓이면서 환바이칼 구간은 제 역할을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70년에 들어서 복선 중  단선만 보수해 오늘날까지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노동자의 희생이 있기에 오늘날 가장 바이칼 다운 기차를 타게 된 것이다.

 

 

 

아침 8시 16분  기차에 오르려면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앙가라 호숫가에 자리한 메리어트 호텔에서 이르쿠츠크 역까지는 도보로 10분 남짓, 그러나 차로 가자면 배나 시간이 걸린다. 출근시간 러시아워까지 겹친데다가 역까지는 일방통행길로 에둘러 돌아가야하기에 시간이 지체된다. 시내는 전차가 관통하기도 하지만 한국의 중고 버스도 인기 있다. 동래지하철역에서 해운대까지 가는 80번 버스가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코리아에 대한 동경때문일까, 한글까지 지우지 않을 뿐더러 어떤 차는 기사 핸드폰 전화번호를 그대로 달고 있다.

 

같은 경도에 있는 블리디보스톡이 한국보다 2시간이 빠르지만 바이칼은 한국과 시차가 같다. 거기다 한글을 달고 있는 버스까지 있으니 우리땅 같다. 바이칼이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말은 굳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이르쿠츠크역은 연두와 주황색을 지닌 예쁜 역사다. 관광안내도가 있길래 사진 한장 찍으려고 했더니 연인이 아침부터 부둥켜 안고 서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 찍겠다고 비켜서라고 얘기하고 싶었건만  말이 통하지 않을 뿐더러 괜히 비켜 찍었다가 오해 살 것 같아 꾹 참았다.  안개와 스모그가 뒤섞인 잿빛 하늘. 우울한 러시아의 분위기를 말해주기에 충분하다.

 

철로에는 밤새 시베리아를 달렸던 열차들이 다리를 길게 내뻗으며 쉬고 있었다. 8시 16분 정확하게 기차가 플렛홉으로 들어왔다. 연착을 밥먹듯이 하는 중국과 사뭇 달라 조금은 어색했다.

 

 

관광열차는 최고급 기차로, 러시아 서민들이 감히 타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고 한다. 러시아 노부부, 동유럽인, 중국인들까지 탑승했으니 오늘은 다국적 기차였다. 8시에 출발해 해질무렵 돌아와야 하니까 하루를 몽땅 투자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좌석배열은 양쪽으로 2인승, 3인승 의자가 서로 마주보게 했다. 지하철처럼 옆으로 앉는 의자도 있고 1인승 의자도 보인다. 앞에 탁자가 있기 때문에 간식이나 음료를 먹기에 그만이다. 호수를 보겠다면 2인승에 앉아야 제격. 대신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옆으로 된 의자도 보인다.

 

 

10~12시간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간식준비는 필수. 뜨거운 물까지 있어 뜨끈한 컵라면 먹기에 그만이다. 러시아를 석권한 팔도 도시락면을 먹는다면 기분이 색다르다. 오징어, 땅콩을 파는 카트 아저씨가 없기에 간식 준비해야 한다. 전날 수퍼마켓에서 과자와 술을 잔뜩 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러시아 맥주가 진하고 입에 맞아 아침부터 맥주를 들이켰다. 음~~취한다.

 

우리야 약한 술을 마시지만 어느 러시아사람들은 아침부터 보드카를 즐기더니 결국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욱하는 성격하며, 술 좋아는 것 보면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차창 밖은 짙은 안개다. 현지 여행사 BK투어의 박대일 사장은 안개가 많으면 날씨가 쾌청할 것이라 쾌재를 부른다. 정말 그럴까.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안개가 걷히자 황금빛 자작나무 군락들이 세상을 호령하고 있었다. 타이가 침엽수림을 가로지르는 열차는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시선을 모우게 해준다. 이보다 더 멋진 안주가 어디 있으랴?

 

 

큰 원을 그리며 산 하나를 휘감아 도니 여기저기 환호성이 들린다. 산아래 바이칼 호수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은 열차여행이 끝나는 차 포트 바이칼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 초심은 8시간을 지속해야하는데~실은 나중엔 거의 다 뻗어 버린다.

 

 

푹신한나 열차에 엉덩이를 붙이고 바이칼 유람에만 취한다면 곤란하다. 조선시대 봉건지주와 수탈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에 터를 잡은 까레이스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로 조선정부의 차별로 푸대접을 받은 조선유민이었다. 일제 강점기때는 신한촌을 건립해 무장투쟁을 벌였고 스탈린 정권하에 이들은 블라디보스톡역에서 강제로 기차로 태워졌다. 가족들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기크탄, 타지스탄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그들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알아채렸을 것이다. 유민들은 바이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딱딱한 바닥에 흔들리는 기차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끼니는 걸러야만 했다. 몇날을 서쪽으로 달리고 달려 또 이름모를 역에서 다른 열차로 갈아탔다. 이렇게 가족들은 생이별을 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밤길을 달릴때 기차 판자에서 새어나는 바람이 어찌나 차가운지 눈물마저 얼어 붙었을 것이다. 그 한숨과 탄식소리가 바이칼 호수에 한동안 떠다녔을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자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쟁취하면서 까레이스끼는 서로 다른 여권을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 우스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핏줄은 하나인데 국적은 이렇게 달랐던 것이다.

 

 

 

저 멀리 안개를 머금고 있는 슬루지아카가 보인다. 거대한 호수의 서쪽 끝이며 기차는 타원을 그리며 바이칼스크, 븨드리노, 탄호이, 바부쉬킨을 거쳐 울란우데로 향한다. 여기서 남쪽으로는 몽고 울란바토르와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개 바이칼 호수가 급경사지역인데 반해 이곳은 충적지로 평원이다. 자작나무 숲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멀리서 내려다보니 호수를 휘감아 도는 철길이 유난히 예쁘다.

 

20분 정도 슬르지얀카에 머물렀다. 본격적인 환바이칼을 가려고 채비를 갖추는 모양이다. 전까지는 전기로 왔다면 환바이칼 구간은 디젤로 달려야만 했다.

 

아까와 반대로 기차가 달린다. 2인승 자리가 바이칼을 보게 했다. 호수 반대편을 보니 산위로 우리가 지나온 철로가 보인다. 호숫가를 내달리다가 기차가 멈춘 곳은 꿀뚝역. 이곳에서도 관광객이 여럿 탑승한다. 아무래도 남쪽 울란우데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호수가에 선을 그은 듯이 철길은 호수와 붙어 있다. 하루종일 바이칼을 품에 안으며 달려야 한다.

  

 

철교를 지나 멈춘 곳이 앙가쏠까. 호수와 붙었을 정도로 철길은 가까이 있다. 20여분 자유시간을 준다.

 

 

레리흐 갤러리가 있어 미술관을 둘러봐도 좋다. 몽골, 티빗. 히말라야 여행을 하면서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있는데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바이칼에 자생한 야생화를 모아둔 정원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자작나무 숲과 잘 어울린다.

 

 

내 생애 이런 자작나무 숲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무는 바이칼의 신비를 더해주는 조연이다.

 

 

 

 

 

엉겅퀴가 활짝

 

 

호수물을 마시러 물가로 내려갔다.

 

배를 끌어올리는 구조물

 

기차가 바이칼 호수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기차역표시. 잉가쏠라역이라고 썼을텐데~~도저히 러시아 글자는 읽기가 어려워

 

 

 

 

연인들은 단풍에 관심없나보다.

철로에 앉아 밀어만 나눌 뿐이다.

  

기차에는 가이드가 탑승해 연신 바이칼의 역사와 얽힌 이야기등을 애기해주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모니터는 삼성이네

  

 공법이 서로 다른 다리

 

 

 또 다른 곳에 도착했는데 역사 이름을 잊어 먹었다.

 

 

근사한 아치를 가진 다리는 공법이 서로 달랐다. 아무래도 처음에 단선으로 건설하고 훗날 복선을 연결해 신 공법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돌은 터널을 뚫으면서 나온 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노동자의 손 때가 아직도 묻어 있었다.

 

 

이렇게 개울이 흘러 바이칼에 모인다.

 

강과 호수의 습기를 머금어서 그런지 유난히 단풍 색이 곱다.

 

다시 기차에 올랐다. 차창밖으로 자작나무 한그루가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세찬 바람에도 굳굳히 버틴 나무는 연해주에서 활동한 무명 독립투사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차창밖으로 힐끗 보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급경사 절벽이다. 저길 어떻게 철길을 낼 생각을 했는지

 

다음에 정차한 곳은 끼르끼레이. 설악산을 연상케하는 암산으로. 낙석과 지반 붕괴로 사고가 가장 많았던 구간이란다.

 

잘 빠진 기차만큼이나 늘씬한 여인네가 걸어가고 있다. 왠지 러시아가 자꾸만 좋아진다.

 

30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곳에 정자에 서 있어 도시락 먹기 딱 좋다.

 

고려인에게 특별히 부탁한 도시락. 바이칼변에서 자란 고사리가 맛난다.  실은 기차에서 김치를 꺼내 먹기가 영 미안했는데 다행이다.

역시 김치와 상추를 먹어야 힘이 솟는다.

 

10분만에 식사를 끝내고 끼르끼레이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다.  코발트 호수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기차. 어느곳에 대고 사진을 찍어도 엽서사진이 나온다.

 

박사장이 터널 위에서 내려찍으면 멋지다고 해서 기어올라갔다.

 

18번째 터널은 1904년 완공되었다고 적혀 있다.사람이 다듬어 돌의 질감이 전해온다. 110년이 된 터널이네

 

 

 

 터널에서 내려다본 풍경~~역시 바이칼은 바다가 틀림없다. 해운대에서 울산가는 기차풍경이 이렇다.

 

 

동유럽에서 단체로 온 팀인데. 단체사진 찍는 것은 우리네와 다름이 없다.

 

 

승무원에게 손짓 발짓으로 사진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냥 찍으란다.

큰 인심 썼다.

 

처녀때 러시아여인들은 얼마나 날씬한지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모두 뚱보가 된다. 쌍둥이를 가져 하나는 낳고 하나는 몸에 숨겨둔 모양이다.

 

역사가 예쁜 마리뚜이. 1950년대 이전 환바이칼 열차가 다닐 때 가장 번창했던 마을이란다. 지금은 기차만 다니는 오지중에 오지. 봉화의 승부역쯤 될까.

 

러시아는 온수 인심이 푸짐하다. 포트에는 물이 가득 담겨 있어 컵라면 먹으면 딱 좋다. 보드카 안주에 신라면을 따라올 수 없다. 이런 핑계로 한 잔, 저런 핑계로 한 잔~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가 자꾸만 좋아진다.

 

 

맥주와 섞어 마시는 보드카 폭탄주도 좋다.

 

현지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대일 사장에게 가장 큰 선물은 한국산 라면

 

아무리 취해도 시야는 바이칼을 향하고 있다. 필름모양의 프레임창에 바이칼의 풍경이 영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리 취하고 저리 취하는 사이, 기차는 환바이칼 여행의 하이라이트격인 빨라빈늬역에 닿는다. 빨라빈늬는 중간역이란 의미. 환바이칼 구간 중 딱 반쯤 차지하고 있다.

 

말이 역이지 실은 간의역에 불과하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시간을 내 줄 정도로 볼거리가 풍성한데 특히 러시아 시골 인심을 느끼에게 좋은 곳이다.

 

역에서 내리자 도시락과 기념품 파는 탁자가 반긴다.

 

엄마보다 애가 먼저 나왔다. 우리야 끼르끼레이에서 도시락을 까먹었으니 다른 관광객이 식사할때 구석구석 둘러보면 된다.

 

식당도 딱 하나밖에 없다. 호수 옆 호숫가에 자리잡은 집.

 

따사로운 볕을 받으며 외국인들은 식사를 한다.

참 이들에게는 우리가 외국인이지.

 

올가할머니 집을 찾았다. 전형적인 러시아 판자집

 

혼자 살지만 흐트러짐을 찾을 수 없다. 살림을 잘 정돈해 놓았다.

 

10년은 넘은 것 같은 냄비

 

 

지금은 주름이 자글거리는 할머니지만

 

예전엔 예쁜 슬라브미인이다.

잘생긴 남편은 살아 있을까. 남북분단처럼 금이 간 액자가 맘에 걸린다.

 

 

이 외딴 곳에서 소박하게 산다. 100년은 넘은 것 같은 카핏은 어디에서 왔을까. 장식장에는 위스키잔이 가득했다. 저 잔에 보트카 한잔 담아 마셨으면

 

 러시아 빨레찝개

 

러시아 난로인 토치카 옆에서 귀염 표정~앞으로 내 트레이드 마크 할거야.

 

올가 할머니 보다 더 연세가 있어 보이는 할머니는 9월 태양볕을 쬐고 있다. 지금이야 황홀한 계절이지만 추운 겨울 이들은 어떻게 겨울을 날 것인가.

 

 

러시아 화장실. 남자는 M, 알겠지만 여자는 요상한 글씨다.  박대일 사장님 말로는 1은 서있는 사람. X는 NO. 그러니까 서서 소변보지 마라. 즉~여자를 말한다고 하는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퍼세식이니 본질적인 향내는 감수해야 한다.

  

마을 호수로 달려갔다. 연인이 앉아 있으니 그야말로 그림이다.

 

거위가 바이칼 관광열차처럼 천천히 물위에서 논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자작나무 단풍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한국에 돌아가도 이 노란 색감이 떠오를 것 같다.

 

 파스텔 풍경이 눈부시다. 가히 골든버클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의 산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질풀도 보인다.

 

아주 맘에 드는 사진이다. 이들은 나의 최고의 모델.

 

한국 토종닭과는 생김새가 약간 다르다.

 

언덕에 오르니 호수와 기치 그리고 단풍이 어울리는 포인트가 나온다.

 

이곳에 1시간 30분이나 시간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기 위함이다. 모래가 있어 거의 해수욕장을 방불케 한다.

 

수영장 내려가는 길 나무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라는는데

이 좋은 풍경을 보고 한 잔 마시지 않으면 자연에 대한 모독이다.

 

공기 좋고 경치가 좋아서인지 순싯간에 다 마셔버렸다.  

술이 아쉬운 사람은 물 마시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렸단. 바이칼 생수는 바로 심층수를 뽑아 올린 물이라 하던데~~한국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마음껏 마셨다.

 

백두산 천지 물 맛이 나는 걸 보니 우리 조상의 땅이 맞아~

날만 따뜻했다면 비키니를 입은 러시아 여인들을 볼텐데~~그냥 상상만 할뿐이다.

 

 

 

철길을 산책하니 마을 전경이 들어오는 포인트가 나온다.

여기서 보니 호수가 아니라 넓은 강이었다.

 

환바이칼을 달렸던 화차. 시베리아를 횡단했던 멋진 놈이다.

 

근사한 철다리도 보이고

 

전쟁영화에 나오면 딱 맞을 작품

 

 

철교에서 바라본 마을

 

 

 

야속한 기차는 또다시 기적소리를 낸다. 벌써 1시간 반이 지나갔단 말인가~~빨리 오라고 외쳐도 연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이들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순간~~

 

다시 기차에 올랐다. 그렇게 신물이 나도록 본 바이칼이지만 난 지칠수가 없었다. 혹시 그 감동이 신기루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눈과 마음을 비워두고 계속 바이칼 물을 담고 있었다.

깜빡 졸고 있는 사이 기차는 마지막 정착지인 슈미하에 내려준다. 이번에는 철로를 걸을 수 있도록 기차는 저멀리 가버렸다.

 

낙석방지를 위해 만든 구조물 같다.

돌이 떨어지며 저 공간으로 들어가도록 한 것은 아닌지~

 

 

파란 바이칼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바닥이 훤히 보일것 같은 데 수심이 500 m가 넘는단다.

 

야속하게도 기차는 먼저 가버린다.

 

7,8월이면 철로변은 온통 야생화가 가득하다고 하는데 내년에 모놀식구들과 이곳을 거닐 것이다.

 

 

세상에서 기차길을 만들기에 가장 힘들다는 환바이칼 구간. 우린 너무나 행복하게 걷고 있으니 이길을 만든 철도 노동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도 자갈 사이로 풀이 자라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 육중한 기차가 지나쳐도 그들은 말 그대로 잡초처럼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것이다. 한 많은 우리 민족처럼 말이다.

 

 

 

이렇게 철길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는다. 그냥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난 항상 길에서 죽는 것을 꿈궜는데 이왕이며 바이칼에서 죽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서니 청량하다.

한여름에도 이렇게 냉장고 같은 느낌이란다.

 

터널을 지나니 마을이 슈미하 마을이 나왔다.

그림에 나옴직한 러시아 목조건물들이 너른 터에 자리하고 있다.

기적소리에 다시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젠 더 이상 정차할 곳이 없다. 바이칼 역까지 내달리면 된다.

기차도 조금은 속력을 내는 것 같다. 벼랑에 비스듬히 자라고있는 자작나무를 보며 다시금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과연 이번 여정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4시쯤이다. 석양에 물든 나무는 더욱 진노랑빛을 띈다. 호숫물은 남색이다. 마치 동해 남부선 추암해변을 지나는 것 같다.

이제 얼마 후면 바이칼과 이별하며 짐을 챙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야 한다. 이 너른 호수를 보니 세상을 좀  큼지막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해본다.  그래야 내가 다시 바이칼을 볼 것 만 같다.

 

 

 

 

그냥 편히 앉아 바이칼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

기차내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맨 앞칸 운전칸이 보인다. 제복을 입은 여승무원은 빨리 퇴근하고 싶은지 벌써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관사와 잡담을 나눈다. 저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

러시아이니 가능한 일이다.

 

 

슬슬 민가가 보인다. 마지막 종착역인  바이칼역이 가까워졌나보다. 예전 포구 자리는 허물어졌고 자작나무 씨가 날아와 자라고 있다. 어찌 곳에 나무가 자랄까. 아...난 잠시 바다로 착각했다.

 

 

동해항에 입항한 명태잡이 러시아 선박이 이렇게 녹이 잔뜩 쓸어 있었다.

 

집집마다 안테나를 높이 세웠다. 우린 위성한테나인데

 

드디어 바이칼역. 전통 러시아 가옥 모습을 하고 이다. 딸지민속촌에서 본 기억이 난다.

 

5시 30분~드디어 바이칼 역에 도착해다. 기차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고 내일 다시 관광객을 태우고 이르쿠츠크로 갈 것이다.

 

여행은 이곳에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유람선으로 올라타 리스트비안카로 가면 된다. 20분 소요

 

 

여행객은 배에 올라타야 한다.  바이칼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가는 앙가라강이 보인다. 중간쯤 바위가 하나 솟아 있는데 바로 샤먼바위다. 아무리 추워도 이곳만은 얼지 않는다고 하는데 강아래 폭포수처럼 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살이 센 곳에 팔뚝만한 고기가 잡힌다고 하는데 실제 낚싯배들이 이곳에 몰려 있다.

 

승무원이 어찌나 예쁘고 참하던지 사진 한 컷 몰래 찍었다.

 

 

리스트비안카 항구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 타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다시 자작나무 바다를 만난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대동맥인 시베리아 철도. 그 한가운데 시베리아 진주인 바이칼이 자리하고 그 호수를 연결한 곳은  골든버클인 환바이칼철도다.

 

바이칼 호수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환바이칼 열차에 올라 타라. 그리고 호수를 앞에두고 마음껏 자문자답 해보라. 대자연으로부터 무언의 조언을 들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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