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상징, 애기봉

2014. 12. 21. 07:59정치와 사회

여적
[여적]애기봉
김석종 논설위원
북한강·남한강을 합쳐 도도히 흘러온 한강과, 한탄강물을 이끌고 온 임진강이 경기도 김포반도 애기봉(154m) 앞에서 몸을 섞는다. 여기부터 서해(염하)로 흘러드는 물길을 조강(祖江)이라 한다. 조강은 북한의 예성강까지 받아들인 뒤 바다로 휩쓸려든다. 강 건너는 북한 황해북도 판문군(옛 개풍군)이다. 탁류의 강심 한가운데 떠 있는 부표가 휴전선이다.

이 경계(境界)의 강변에 있는 애기봉의 옛 이름은 쑥갓머리산. 산 아래 서해 뱃길과 한양·개성을 잇는 조강포가 있었다. 전쟁 전에는 남북 나루터가 조강리라는 이름의 한동네였다. 뱃사공과 장사꾼들로 떠들썩한 나루터 풍경이 백운 이규보의 조강부(祖江賦)에 비친다. 황포돛배는 조강포에서 물참(만조)을 기다렸다가 밀물을 타고 단숨에 한양까지 내달렸다. 토정 이지함이 사공들에게 ‘조강물참’을 노래로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피란길에 조강을 건너지 못하고 청군에 붙잡혀 끌려갔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애기)이 ‘임’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죽어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그 얘기를 듣고 “애기의 한(恨)이 바로 이산가족의 한”이라며 ‘애기봉(愛妓峯)’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전망대에 오르면 개성 송악산까지 훤히 보인다. 1971년 십자가가 달린 18m짜리 드높은 철탑을 세워 성탄 때마다 불을 밝혔다. 개성시내에서도 그 불빛이 눈을 찌른다고 북한의 불만을 샀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불을 껐고, 악화되면 점등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군에서 안전성 등을 이유로 낡은 등탑을 철거했다.

올해 기어코 애기봉에 성탄트리를 세우고 말겠다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불안한 주민들의 반대와 기독교계 내부의 비난 때문에 뜻을 꺾었다고 한다. 백 번, 천 번 잘한 일이다. 긴장·갈등·공포를 키우는 트리는 존재 의미가 없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유독 아픔이 많았던 한 해. 우리 모두 트리에 불을 밝히기 앞서 예수 탄생의 참뜻을 되새길 때다. 상처받은 이웃과 가난한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묵상하며 깊은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옳다. 기억하기로 애기봉에 가서 본 조강의 낙조는 참 고왔다.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