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서울광장에서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
1971년 47명으로 시작해 현재 1만3000명
냉장고 없던 시절, 주부 활용 방문 판매
단순한 제품 판매·배달 사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이모’ 같은 친근한 존재
개인사업자 지위이지만 경쟁 부담 없고
평균 월 170만원 수입에 탄력적 근무
대형 유통 확산 시대에 지속 가능할까
‘고비용’ vs ‘여전히 유효’ 전망 엇갈려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원인 ‘야쿠르트 아줌마’ 김재숙(62)씨는 서울 용산전자상가의 터줏대감이다. 1989년, 용산전자상가가 막 조성되기 시작한 무렵부터 허허벌판에 자리잡고 앉아 상가 사람들에게 야쿠르트를 판매해왔다. 일단 담당 판매구역을 배정받으면 일을 그만둘 때까지 구역을 바꾸지 않는 한국야쿠르트의 방침 덕에 26년간 그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상가에 입점해 있는 상인들과 ‘끈끈한 엑기스’ 같은 정이 있어. 내 자식보다 어린 아이들이 ‘이모’ 하며 턱 안기면 아들 같고, 장사 안돼서 다른 건물로 갔다가 잘돼서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 있으면 반가워서 포옹도 하지.”
지난달 16일 서울 서초구 한국야쿠르트 본사에서 만난 김씨는 ‘아이들’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일터에서 그는 ‘아줌마’가 아니라 ‘이모’다.
“사람들이 바쁠 때는 ‘걱정 마, 내가 해줄게’ 하고 커피도 대신 사다 주고, 배달이나 심부름도 해줘요. 상가 직원들은 커피믹스에 ‘이모 거’라고 써놓고 제 몫을 챙겨주죠. 용산역에서 헤매다 전자상가로 넘어온 ‘시골 양반들’에게는 길 안내도 해줍니다.”
발효유 등 건강기능식품 전문회사 한국야쿠르트가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방문판매를 처음 도입한 것은 회사 태동기인 1971년이었다. 47명으로 시작해 90년에 7342명으로 늘었고, 2000년대에도 꾸준히 늘어 2005년부터는 1만3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매출 1조원가량, 발효유 시장 점유율 1위(41%)인 이 회사 매출의 95% 이상이 전국 방방곡곡에 포진한 야쿠르트 아줌마로부터 나온다. 사업 초기엔 냉장물류 시스템도 없었고, 냉장고도 널리 보급돼 있지 않아 손수레에 싣고 가 집집마다 야쿠르트를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기혼 중년 여성의 일자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야쿠르트 아줌마의 인기는 높았다. 89년 야쿠르트 아줌마 생활을 시작한 김재숙씨는 “나도 모집에 지원해 1년이나 기다려 겨우 자리가 났다”고 회상했다.
기혼 여성의 일자리로 야쿠르트 아줌마는 ‘괜찮은 일자리’일까? 우선 짚고 가야 할 것은 야쿠르트 아줌마가 한국야쿠르트 ‘사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므로 회사에서는 4대 보험 가입, 교통비·식대·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기본급도 없다. 토요일을 빼고 주 6일 일하는데 연차휴가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아프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를 대비한 지원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않다. 다만 일하다 다쳤을 경우 회사에서 치료비를 지급하고, 퇴직금은 아니지만 이율이 높은 목돈마련제도인 ‘적립금’을 운영한다. “개인사업자다 보니 딱히 ‘정년’도 없고 해고할 수도 없다”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실제로 78살의 최고령 야쿠르트 아줌마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와 같은 고용 형태를 회사 쪽에서는 ‘개인사업자’, 노동계에선 ‘특수고용직 노동자’라고 부른다. 보험모집인, 정수기 관리사, 학습지 교사처럼 명목상 ‘개인사업자’이지만 독자적 사무실도, 작업장도 없이 사실상 다른 사업자의 사업에 편입돼 근로를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야쿠르트 아줌마가 ‘괜찮은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중년 여성 일자리에 견줘볼 때 ‘나쁜 일자리’로 볼 수도 없다고 말한다. 평균연령 44살인 야쿠르트 아줌마는 하루 평균 6.8시간 일하고 월평균 17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야쿠르트 제품을 1개 사면 제품값의 25% 정도가 야쿠르트 아줌마의 수입이다. 마트 수수료(18%가량)보다 높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3년 여성가족패널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19~64살 여성 가구원 1만1234명 중 여성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수입은 140만원가량이었고, 여성 특수고용 노동자의 월평균 수입은 158만원이었다.
근무지가 집과 멀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근무시간이 비교적 탄력적인 것은 육아며 가사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기혼 여성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집안일이 있을 경우 아침에 배달 업무만 마치면 퇴근해도 규제하는 사람이 없고, 정해진 휴가는 없지만 한동네에서 오래 일한 덕에 소비자와의 관계가 돈독해 양해를 구하고 2~3일치 배달을 미리 하는 방식으로 ‘짬’도 낸다.
26년째 ‘야쿠르트 아줌마’를 하고 있는 김재숙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