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1. 19:35ㆍ경영과 경제
‘명예’보다 ‘소신’ 택한 현대 경제학계의 양심 |
폴 크루그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
준비된 노벨상 후보의 수상 2008년 10월 13일 아침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오늘 아침 내게 묘한 일이 벌어졌다”는 한 줄짜리 짤막한 문장을 올렸다. 바로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알리는 문구였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수상 이유로 “신무역이론을 통해 국제무역과 세계화의 영향을 설명했고 국제무역에 게임이론을 접목해 ‘전략적 무역’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또 이전에는 별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던 국제무역과 경제지리학 분야를 통합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밝혔다. 두세 명의 공동 수상이 관례로 굳어진 요즘 보기 드물게 단독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점도 큰 화제였다. 그만큼 한림원이 크루그먼의 업적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크루그먼의 수상 시점이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이란 사실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 개입보다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해온 소위 신자유주의학파(시카고 학파)는 1990년대 이후 노벨경제학상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발발 후 이들의 이론이 금융위기의 배후로 불리며 그 세가 상당 부분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시장에서의 정부 역할을 중시하는 신케인스 학파에 속하는 크루그먼 교수가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노벨상을 단독 수상했다는 점을 예사롭게 볼 수 없다. 경제학자의 영역을 단순히 순수 학문 연구뿐 아니라 칼럼니스트, 사회운동가 등으로 확대한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동시에 열정적인 저술 활동 와중에도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학문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다른 경제학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수상 직후 NYT와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이날이 오리라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라는 너무나도 솔직한 소감을 밝혀 화제를 모았다. 다만 그 역시 “노벨상 수상 소식만을 평생 기다리고 사는 경제학자가 너무 많다. 마냥 수상을 기다리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이롭지 않다고 생각해 그간 노벨상에 대해서는 일부러 아무런 생각을 않고 지내왔다. 영예로운 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지금 당장은 나에게 삶을 바꿔놓는 경험”이라며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노벨상 수상 직후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회의에 참석한 그의 손에 ‘세계 제1의 경제학자’라는 문구가 새겨진 컵이 들려 있었다는 사실도 한동안 화제가 됐다. 천하의 크루그먼이라도 노벨상 수상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 앞에서는 다소 유치한 면모를 보인 것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당시 NYT에 기고한 ‘폴 크루그먼을 기리며’라는 글을 통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크루그먼처럼 상을 받기도 전에 유명했던 경제학자는 없었다”며 그의 예견된 수상을 축하했다.
양극화 해소 없는 미국 미래 암울 크루그먼 교수가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가 탄탄한 중산층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대부분의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로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집을 소유한 채 죽을 때까지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고, 이것이 미국 번영의 근원이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보수주의자들이 급부상하면서 미국 사회의 평등을 지지하던 각종 제도가 무너졌고 상위 1%가 가진 부가 나머지 99%보다 많은 극단적 불평등 시대가 도래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그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노동운동의 몰락이다. 1960년대 미국노동자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은 30%가 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 비율은 11%로 뚝 떨어졌다. 노조의 몰락은 단순히 임금 수준의 전반적 저하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척도와 규범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미국 정치권의 화두인 최저임금 인상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기독교 근본주의의 급부상이다. 기독교 우파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공화당이 감세, 규제 철폐, 작은 정부를 부르짖으며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한다는 것.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하는 공화당 극우파 모임 ‘티파티’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해법은 있을까. 크루그먼 교수는 은행의 부분 국유화 등을 포함한 정부의 강도 높은 금융권 개입, 의료보장제도를 포함한 사회복지제도 개혁을 거론한다. 하지만 오바마케어 도입 논란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는 데서 보듯 제도 개혁에는 극심한 반발과 진통이 따른다는 게 문제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미국 연준이 펼치는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정책에도 분명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2014년 1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그는 “미국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과도한 긴축 정책을 편다. 특히 미국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은 2013년 경제성장률을 1.5~2.0%포인트 떨어뜨렸다. 미국 경제는 아직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미국 경제가 과거 평균 성장 추세에 여전히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은 “2009년 이후 4년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에 못 미치는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고 높은 실업률에 따른 민간 소비 현상이 여전하다”며 통화완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0년대는 고금리 때문에 소비가 둔화된 측면이 있었지만 현재는 저금리에도 소비가 늘지 않으며 이는 미국 경제가 부진에서 벗어나는 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멍청한 ‘자기파괴적’ 정부 정책이 사라져야 미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로선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이 맞을지 연준의 행보가 맞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리 그가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라 해도 공직에 몸담지 않은 일개 자연인인 그의 주장이 정책 집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분명한 건 그의 독설엔 성역이 없으며 그가 한 말 중 꽤 많은 부분이 훗날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 워싱턴의 유력 정치인, 월가 황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의 고위 관료 등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그가 경제학자 겸 칼럼니스트로서의 열정을 오랫동안 불태워주기를 바라는 이유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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