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 샘

2015. 4. 27. 02:35미술

마르셀 뒤샹의 <샘>

 

《샘》은 1917년 4월 10일 마르셀 뒤샹(1887∼1968)이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갤러리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그의 레디메이드(ready-made:기성품) 작품 중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남성용 소변기를 그대로 가져다가 ‘샘’이라 제목을 붙이고 예술 작품인냥 전시장의 좌대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손을 빌린 것이라고는 ‘R.Mutt, 1917'이라는 서명 뿐, 그것은 당시 미국의 남성 화장실이면 어디서고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변기일 뿐이었다.

 

뒤샹은 이 전시회의 작품 배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리처드 머트(Richard Mutt)라는 가명으로 《샘》을 출품했다. 뉴욕에서 새로운 미술을 장려하기 위해 창설한 독립미술가협회의 첫 번째 전시였던 이 전시는 6달러만 내면 누구든지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음에도 《샘...》은 출품과 동시에 전시가 거부되었다. 전시 조직위원회가 어떤 기준도 내걸지 않았지만, 그들의 생각에 합당하지 않은 작품은 당연히 검열 대상이었던 것이다. 즉, 참가비만 내면 누구든, 어떠한 작품이든 출품할 수 있다는 애초의 약속은 허울뿐이었다. 뒤샹은 《샘》을 제시함으로써 예술가의 ‘독립’이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음과 그들의 위선을 꼬집었다.

 

독립미술가협회 회장은 언론에 “《샘》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매우 유용한 물건일지 모르지만, 미술 전시장은 그에 알맞은 자리가 아니며 일반적 규정에 따르면 그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에 뒤샹은 《샘》이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었는가의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어 그는 “머트 씨는 세 가지 일을 했다. 그는 오브제를 선택했고, 그것에 ‘샘’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으며(더군다나 변기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물이 위로 샘솟는 것이 된다), 원래 지니고 있는 실용적 가치를 제거하고 그것의 환경을 완전히 변경함으로써 새로운 개념과 정체성을 창조해냈다.”고 주장했다.

 

뒤샹의 이 같은 발언은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 관념을 완전히 뒤엎는 도발이고 도전이었다. 그는 《샘》 이전에 이미 《자전거 바퀴》(1913)와 《병 건조기》(1914)라는 작품으로 관습적인 미의 기준을 무시하고 미술 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었다. 기성제품도 작가의 선택에 의해 어떤 주제와 의식을 불어넣으면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뒤샹의 혁명적인 제안은 현대미술에 커다란 개념의 변화를 몰고 왔다. 그래서 이제 예술가는 자신이 지닌 예술적인 기교나 솜씨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요소나 원래의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사물에 새로이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담하게 되었다.

 

뒤샹의 기존 미학에 대한 도전은 당시 전통 미학 추종자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신성 모독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사고의 폭을 넓혀 주었다. 그는 대량생산용품, 즉 이미 제작된 물건에 대해서까지 희소성에서 오는 미적 가치가 아닌 보편성 혹은 대중성으로 새로운 의미부여 행위가 가능하다는, 미적 가치의 새로운 다양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가히 현대미술의 혁명가라 할 만하다. 전후의 서구 미술, 특히 팝 아트 계열의 작가들과 신사실주의 및 개념미술 작가들은 그에게 빚진 바가 크다.

 

뒤샹은 《샘》 이후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 복제화에 수염을 그려 넣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통적인 미적 질서를 뒤집으면서 현대미술에 수많은 문제와 가능성을 제시했다. 《샘》은 2004년 영국 올해의 터너상 시상식에 참여한 미술계 인사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 작품’의 설문조사에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참고로 당시 설문조사에서 1위인 뒤샹의 《샘》에 이어 2위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 3위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마릴린 먼로 두 폭》(1962)이 차지했다.

 

1917년 전시회가 끝난 후, 뒤샹은 전시장 칸막이 뒤에 숨겨져 있던 《샘》을 발견하고 잡지 『눈 먼 사람 The Blind Man』에 게재하기 위해 《샘》을 촬영했다. 사진은 ‘291’ 화랑에서 앨프리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맡았다. 그 후 월터 아렌스버그(Walter Arensberg)에게 팔렸지만, 공교롭게도 작품이 분실되어 오리지널 《샘》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뒤샹의 허가 하에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토대로 몇 개의 복제품이 만들어져 런던 테이트모던, 파리 퐁피두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샘 [Fountain]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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