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이 전 총리는 조사에 앞서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이 발언을 제목으로 반영했다. 

이런 와중에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야 유력 정치인 3명에게 건넨다며 현금 6억 원을 1억∼3억 원씩 3개의 가방에 나눠 담았다는 성 회장 측 인사의 증언이 나왔다. 이 중 야당 인사 1명은 명단에 없는 새로운 인물이다. 동아일보의 단독보도이다. 

1990년대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민주화 운동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강씨의 누명이 이제서야 벗겨진 것이다. 신문들은 일제히 사설에서 이를 비판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궁극적 진실은 강씨 본인이 아는 것"이라고 사설에서 언급했다. 

 

   
▲ 경향신문 1면 기사
 

피의자 된 이완구, 핵심 쟁점 3가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전 총리가 검찰에서 15일 오전 0시55분까지 14시간 넘게 조사한 뒤 귀가했다. 리스트 거명 인사의 검찰 출석은 지난 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우리는 짧게 묻고 (이 전 총리는) 길게 답하도록 했다"고 말해 이 전 총리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음을 내비쳤다.

소환조사의 핵심 쟁점은 이 전 총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2013년 4월4일 독대 여부, 3000만원 수수 여부, 증인 회유 의혹 등 3가지다. 먼저 독대여부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이 전 총리는 “만난 기억이 없다”고 했다가 이후 “인사한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대한) 기억이 없다”면서 따로 만난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경향신문은 "3000만원 수수 여부를 두고서도 검찰과 이 전 총리는 맞섰다"며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 금모씨(34)와 운전기사 여모씨(41), 비서 임모씨(39)로부터 자금을 준비한 과정과 구체적인 전달 상황에 대한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마지막은 회유 의혹이다. 수사팀은 전날 운전기사 등에게 전화해 ‘동선 짜맞추기’를 했다는 의혹을 산 이 전 총리의 최측근 김모 비서관(43)을 불러 조사했다. 수사팀은 김 비서관 조사를 통해 이 전 총리가 펼칠 방어 논리를 예측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 전 총리는 이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면서 자세하게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리는 자료는 별도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제목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소환조사에 앞서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는데 조선일보(피의자 신세 이완구 "진실 이기는 것 없다" 조사내내 혐의 부인)동아일보(완구 "진실 이기는 건 없다" 결백 호소), 중앙일보(15시간 조사받은 이완구 "회유할 이유 뭐가 있겠나")이를 반영했지만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은 이 전 총리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제목을 내보냈다.

 

   
▲ 동아일보 3면 기사
 

동아일보 "성완종, 야당 의원에게도 돈 건넸다"

이런 와중에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이 여당은 물론 야당 유력 정치인에게도 돈을 건넸다는 증언이 나왔다. 성 전 의원의 해외 사업 파트너의 증언이며 동아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는 총3명의 정치인이 거론됐는데 이 중 여당 정치인 2명은 성 회장이 남긴 ‘메모 리스트’에 적힌 8명에 포함돼 있으며 야당 인사 1명은 명단에 없는 새로운 인물이라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성 전 의원의 해외 사업 파트너였던 A 씨는 13, 14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2012년 10월 성 전 의원과 함께 현금 뭉치를 나눠 돈 가방을 만든 얘기를 털어놨다. A 씨는 “성 회장이 2012년 10월 중순 토요일 오후 9시경 서울 여의도 I빌딩 3층 사무실로 검은색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혼자 찾아왔다”며 “캐리어 안에는 3개 시중은행 띠지로 묶여 있는 5만 원권이 가득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동아일보에 당시 성 전 의원이 이 돈 가방들을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그때를 전후해 성 전 의원이 했던 발언 내용으로 미뤄 볼 때 새누리당 인사 2명과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의원 등 3명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또 성 전 의원이 이 야당 중진 의원에 대해 ‘수시로 관리해 왔다’는 표현을 썼으며, 나중에 “대선 때 야당의 누구를 도왔느냐”고 묻자 성 회장이 이 인사를 거명했다고 A 씨는 전했다.

A 씨는 14일 동아일보 기자와 다시 만나서도 “성 회장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내가 역할을 다 했다. 양쪽에 모두 충분히 해뒀으니 어느 쪽이 (대통령이) 돼도 상관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성 전 의원이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 리스트와 육성 인터뷰에는 금품 제공 대상에 야당 인사가 없었으나, 처음으로 야당 인사가 등장한 셈이다. 

 

   
▲ 한겨레 6면 기사
 

조선일보 "강기훈 유죄 판사들도, 양심에 따랐을 것"

1990년대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 상고심에서 "필적을 감정한 국과수 감정서를 믿기 어렵고, 검찰의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자살방조 혐의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서울고법은 강 씨의 필적과 유서의 필적 중 ‘ㅎ’과 ‘ㅆ’의 필법이 다른 점에 주목했다. 유서의 ‘ㅆ’은 제2획이 없는 독특한 글씨체였지만 강 씨의 글씨는 그런 특징이 없었다. 결국 서울고법은 감정을 맡은 김형영 전 국과수 실장 진술의 오류와 허위를 지적하며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배척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14일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것이다.

지난 24년에 대해 신문들은 사설 등에서 국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했다. 국민일보는 이 날 사설에서 "역사가 왜곡되고 국민 한 사람의 삶이 철저히 망가졌는데 함구로 일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제라도 검찰과 법원, 국과수는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는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진실은 승리했지만 반성과 사과는 끝내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과 경찰, 법원 등의 국가기관은 진실을 조작하고 오랫동안 은폐하는 데 한몸이었다"며 "24년 동안 한 인간을 병마에 몰아넣을 정도로 고통을 주고 괴롭힌 것을 사과하거나 위로하지도 않았고, 정의의 실현을 지연시킨 데 대해서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강씨에게 유죄를 내린 법관들도 법에 따라 양심껏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재판하는 것이 사법 제도의 기본 정신이다. 모든 법관은 자신들의 판단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사실을 무겁게 봐야 한다"며 "궁극적 진실은 강씨 본인이 아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 조선일보 사설
 

그때 그 검사들, 승승장구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강씨가 지난한 법정 싸움을 벌이는 동안 이 사건을 담당했던 판검사들 대부분은 요직을 거치고 퇴직했다. 1991년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으로 강씨 사건의 주임 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는 이후 대검찰청 중수2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과 3차장을 거쳐 광주고검장을 지냈다.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남기춘 변호사는 울산지검장·서울서부지검장을 역임했다. 남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사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척도로 옛날에 한 판결을 다시 하면 결론이 달라질 것”이라며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한 판결도 지금의 잣대로 하면 결론이 달라지는 게 많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수사 검사였던 곽상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곽 이사장은 “(당시) 서강대 가서 참고인 두 사람을 조사한 것 외에는 관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역시 수사 검사였던 임철 변호사는 유서대필 사건 자체가 ‘조작’이라는 강씨 측의 주장에 대해 “조작이라면 무엇이 조작인지 증거를 갖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라”고 반박했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수사를 지휘한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지냈다.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15·16·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현 정권에서 1년6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24년 동안 아무런 처벌도, 책임도 지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