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쓰게 된 동기와 핵심 주장이 궁금하다.
수많은 언론들이 <21세기 자본>에 대해 다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의제”라고 선언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2015. 6. 1. 09:57ㆍ경영과 경제
<불평등>을 쓰게 된 동기와 핵심 주장이 궁금하다.
수많은 언론들이 <21세기 자본>에 대해 다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의제”라고 선언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 책의 목적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소득분배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하려는 데 있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 했다. 나는 낙관적인 편이다. 오늘날 세계가 거대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고 있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 앞에 섰을 때 집단적으로 힘을 모으면 무기력하진 않다.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가 불평등을 진짜 줄이길 원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앳킨슨 교수는 <불평등>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15가지 제안’을 던진다. 제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1) 정책 결정자들은 기술 변화의 방향에 분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노동자들의 고용 가능성을 높이는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 2) 공공정책은 이해관계자들 간 적절한 힘의 균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3) 정부는 실업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명시적인 목표를 채택하고, 원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공공부문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중략) 6) 모든 성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자본(최소한의 상속)이 있어야 한다. (중략) 11) 최신 재산 평가를 토대로 비례적이거나 누진적인 재산세를 신설해야 한다. 12) 아동수당은 상당한 비율로 모든 유아에게 지급되어야 하며 소득처럼 과세되어야 한다. 15) 부유한 국가들은 국민총소득 대비 공적개발원조 비율을 1%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당신이 책에서 세금 등 구체적 정책 제안들을 많이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만일 그중에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제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단 하나의 묘책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불평등을 상당히 줄이려면 경계를 넘어선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금이나 이전소득만으론 안 된다. 모든 정부기관을 아울러야 한다. 단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정부 간 조직까지,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모든 단위에 해당하는 과제다. 정부만이 이 책의 유일한 독자층이 아니다. 이 책은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교회나 캠페인그룹의 구성원으로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포괄한다. 나는 굳이 특별한 조처를 골라내고 싶지는 않다.
모든 성인에게 정부가 최소한의 ‘기초자본’(endowment)을 보장하자는 등의 제안은 매우 흥미롭고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면?
최소한의 기초자본 분배(minimum capital endowment)가 가능하다는 건, 영국이 2003년 이후 아동신탁펀드 형태(※모든 아동에게 정부가 250파운드의 바우처를 주어 펀드를 만들고, 부모가 일정 금액을 적립해 저축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었고 적립 금액은 세금을 면제받았다)를 도입한 사실에서 증명된다. 당시 노동당 정부가 펀드를 만들었고, 자녀가 만 18살이 될 때까지 부모가 일정 금액을 쌓아갈 수 있었다. 이 제도는 보수당-자민당 정부가 권력을 잡은 2010년에 폐지됐다. 나는 이와 같은 제도를 (개혁된) 상속세 재원으로 충당되는 정부 보조 방식으로 다시 도입하고 싶다. 시간이 갈수록 계좌에 돈이 쌓일 것이고, 이 돈은 18살부터 교육이나 훈련, 주택 구입 할부금 또는 소규모 창업자금 등의 목적으로만 쓰일 수 있다. 이 제안은 세대 간 불평등을 줄이는 방편으로 이해돼야 한다.
불평등에 대응하는 정책 제안들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진보적 개혁을 위해선 중간계급의 지지도 얻어내야 한다. 최근 한국 정부는 소득세 개혁을 시도했다가 수많은 중간계급 상위계층의 불만을 야기한 바 있다. 세제 개혁으로 부자(주로 상위 13% 이상에게 누진적)의 부담이 늘어났음에도, 세금을 조금 더 내게 된 중간계급들도 분노했다. 세금 인상 등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어떻게 정치적 지지를 동원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여러 해 동안 정치적 지도자들은 세금이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기능하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을 납세자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실패했다. 워싱턴의 미국 국세청 본부 건물 현관엔 ‘세금이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위해 지불하는 대가’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인들이 널리 퍼뜨려야 하는 메시지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세금을 낼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쪽으로 대중의 인식이 바뀌는 조짐은 있다. 탈세나 조세회피는 엄정하게 감독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여전히 낮은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보수세력과 재계는 한국의 자영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많은 중소기업이 생산성이 낮아 높은 임금을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국은 1999년 이래 최저임금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제도의 도입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평탄했다. 내가 책에서 설명했듯이 임금뿐 아니라 생산성도 올라 재계가 거기에 적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게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고용주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더 높은 생활임금을 지불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첼시 축구클럽이 최근의 사례다.(※올해부터 첼시클럽은 클럽이 고용한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인 시간당 6.5파운드보다 더 높은 생활임금인 9.15파운드를 지급하고 있다.)
앳킨슨 교수는 <불평등>에서 지난 100년에 걸쳐 불평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지니계수 추이를 보면, 1945년에서 1970년대까지 소득 분배 정도가 비교적 나아졌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불평등이 더 커지는 ‘불평등으로의 회귀’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상위 1%는 전체 총소득의 5분의 1 가까이를 가져간다. 오늘날 상위 1%의 몫은 10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그들의 인구 비중에 비례하는 몫의 20배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주류 교과서는 기술이나 세계화처럼 중요한 요소들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두 가지 면에서 불충분하다. 첫째, 기술과 세계화의 영향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인지는 기술 진보의 본성과 노동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조절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각 나라 내부의 분배 상태는 각 나라의 정책에 달려 있다. 둘째, 다른 불평등의 중요한 요인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주류 교과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단지 노동소득에만 집중할 게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국민소득 중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은 자본의 몫이 줄어들고 부가 덜 집중됐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과 달리 증가하고 있으며, 부 소유의 불평등 감소 추세는 멈추었다. 우리는 재정적 재분배를 고민해야 한다. OECD가 지적했듯이 최근 몇십 년간의 불평등 증가는 복지국가의 후퇴에서 비롯됐고, 불평등은 누진세와 부를 이전하는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정치의 역할을 좀더 진지하게 고려해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 오늘날 경제학의 한계는 무엇인가.
첫 번째 도전은 불평등이 경제학의 중심 주제로 복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불평등 자체가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불평등 연구가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계급 사이의 분배를 “정치·경제학의 주된 문제”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제학 모델은, 동일한 대표적 경제주체의 가정에 따라 이것을 완전히 무시한다. 분배의 문제,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경제학의 유일한 초점은 아니겠지만 본질적 부분이어야 한다.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행동을 하려는 욕구가 있어야 하며, 여기에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불평등과 정치의 상호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에 관해 염려하는 중요한 수단적 논리는 부와 소득의 집중으로 정치적 힘과 영향력도 옮겨간다는 것이다. (중략)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은 정부의 전 부처에 걸쳐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략) 여기서 제시한 방안을 실행할지, 그 구상들을 추구할지 여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개인들이다. 개인들은 소비자로서, 저축자로서, 투자자로서, 근로자로서, 또는 사용자로서 그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의 크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불평등> 중에서)
<21세기 자본>과 피케티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최근 피케티는 ‘r(자본수익률) > g(경제성장률)’ 부등식의 역할 등을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몇몇 국내 언론은 “피케티가 오류를 인정했다”고 보도했지만, 그의 논문은 자신의 주장을 둘러싼 오해와 논쟁에 대해 대답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내가 보기에 피케티가 ‘r > g’라는 공식을, 불평등을 증대시킨 메커니즘으로서 너무 강조한 면도 있는 것 같은데.
피케티는 불평등이 심각한 정도를 각성하게 하고, 오늘날 불평등이 이전 세대보다 더 심해졌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했다. 그가 자본의 역할을 강조한 건 정당하다. 다만 ‘자본’과 ‘부’를 명확하게 구분짓는 게 필요해 보인다. 부는 한 세기 전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지만, 사람들이 소유한 부의 상당 부분은 자기 집 밖의 경제의 생산활동에 대한 통제와 거의 관련이 없다. 생산활동에서 자본을 활용하는 것은 부의 소유와는 엄연히 다른 차원이다.
자본이 행사하는 통제는 소유권과 사회제도에 의해 좌우된다. 그것은 기업과 노조의 활동 규칙을 결정하는 법 체제 안에 내재돼(embedded) 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정치와 제도의 역할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데 십분 공감한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선, 소비자와 노동자의 대항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힘의 재균형(rebalancing)이 필요하다. 부의 불평등이 최근 증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최고세율이 낮아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진세로 되돌아갈 것을 기대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은 불평등이 왜 나쁘다고 생각하나.
실 내 책은 불평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와 함께 시작한다. 나는 기회의 평등, 혹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출발선상에 설 수 있도록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목표이긴 하지만, 나는 과도한 결과의 불평등이 있는 한 이 목표가 도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보상(결과)의 불평등’이 다음 세대에겐 ‘기회의 불평등’을 낳고 있다. 오늘날 ‘결과의 불평등’의 수혜자들은 자녀에게 불공정한 이득을 넘겨줄 수 있다. 이것이 현재보다 낮은 수준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할 중요한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등을 통해 그간 많이 논의됐는데, 경제적 불평등이 오늘날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사회적 통합 결여, 범죄 증가, 질병 증가, 10대 임신, 비만 등. 정치학자들은 소득 불평등과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는 돈의 역할 사이에 쌍방향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학자들 역시 불평등 증가가 경제적 성과의 악화로 이어진다고 보고한다.
앳킨슨 교수는 2020년 이전까지 받을 책의 저작권료를 옥스팸, 에마우스유케이, 퀘이커하우징트러스트 등의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책에서 밝혔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작은 실천인 셈이다.
이강국 교수의 인터뷰 후기
앳킨슨 교수와의 인터뷰는 <불평등-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출판 후반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전자우편을 통해 이뤄졌다.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적 주제로 복귀시켰다면, 앳킨슨의 책은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진단하는 깊은 통찰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그의 우려는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책에서 상세하게 제시한 여러 정책들은 한국에서도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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