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휴전과 공조

2016. 2. 5. 10:28정치와 사회

[김영희 칼럼] 미·중 ‘휴전’과 공조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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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오늘의 동북아는 김정은이 4차 핵실험을 하기에 알맞은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편이 되어 한반도에서 인도양까지 초승달 모양의 중국 포위망을 좁혀 간다. 중국은 그 포위망을 뚫으려고 남태평양에 여러 개의 인공섬과 그 위에 활주로를 만들고 있다. 그들 인공섬을 기점으로 영해를 선포했지만 미군 함정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언제든지 미·중 간에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동북아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지지 아래 집단자위권 행사를 국방정책의 기조로 삼아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한다. 오바마의 아베 압박으로 성사된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타결로 미국은 중국 포위망의 마지막 연결 안 된 고리(Missing link)로 남은 한국을 끌어들일 조건을 갖췄다.

 미·중 마찰과 오바마의 발목을 잡는 시리아·이라크 사태는 김정은에겐 청신호였다. 김정은은 박근혜·오바마·아베를 조롱하고 시진핑의 뒤통수를 치고 수폭인지 뭔지의 실험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대응책도 자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일본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잠시 ‘휴전’하고 북한 제재에 공조를 하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는 소리만 요란했지 실효가 없다. 이유는 첫째 중국이 북한에 숨 쉴 구멍(Loop hole)을 열어주기 때문이고, 둘째 북한이 철저한 고립에 익숙해 국제 제재에 비명 소리를 지를 만큼의 타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미·중·일이 손발을 맞춰 미국은 광범위한 금융 제재로 김정은의 돈줄을 막고, 일본은 대북 송금과 북한 선박의 입항 및 사람의 왕래를 다시 금지하고, 중국은 북한의 개인 구좌까지 포함한 모든 금융 거래를 차단해 미국의 금융 제재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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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의 4차 핵실험은 누구보다도 시진핑에 대한 모욕이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서열 5위 류윈산이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북한은 김정은이 아끼는 모란봉악단을 베이징에 보낼 때까지만 해도 북·중 간의 오랜 냉기류가 온기류로 바뀌는가 싶었다. 그러나 모란봉악단이 돌연 베이징 공연을 취소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면서 북·중 관계는 류윈산의 방북 이전의 상태로 후퇴했다. 그리고 바로 압록강 국경 너머 중국 땅까지 지진파가 미친 핵폭발이 일어났다. 지금 시진핑의 가슴이 얼마나 부글거릴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가슴이 부글거리는 시진핑이 북한의 돈줄을 막고, 그래도 김정은이 버티면 북한의 생명줄인 에너지와 식량 공급을 잠시라도 끊어야 한다. 시진핑의 사적 분노가 공적 영역에서 동북아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딜레마에 빠진 시진핑의 고민이 이번에는 동북아 안정을 위한 차원의 결론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한국에 북한 징벌 수단이 없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확성기 방송 재개? 그걸로 김정은이 눈 하나 깜짝하겠는가. 유엔 안보리가 차려놓은 별로 먹을 것 없는 밥상 한 귀퉁이에 숟가락 하나 들고 앉는 것 말고는 취할 조치가 없다. 심각한 것은 앞으로 닥칠 안보 위협이다. 북한이 실험한 것이 수소폭탄이든 그 전 단계의 증폭핵분열탄이든 핵탄두의 소형화 실험이라는 것과 북한의 핵전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핵무기라는 것은 실전용이기보다 위협용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수천 개의 핵탄두로 상호 확정적 파괴력을 확보해 전쟁을 방지한 핵무기의 아이러니가 증거 사례다. 한반도에서 북한 핵과 미국 핵우산이 상호 확정적 파괴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자칭 수폭 실험에 이성을 잃은 과민반응과 핵주권론이 적절한 대응책이 못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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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위협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그들이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면 한국의 미사일 요격 체계인 킬체인은 무용지물이 된다. 핵탄두와 미사일을 실은 북한 잠수함이 미국 서해안까지 도달할 능력이 입증되면 미국의 핵우산도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 미국이 서해안 주요 도시에 대한 핵 공격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에 핵우산을 씌워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남은 건 중·장기 대책이다. 동북아평화협력기구를 출범시켜 북한을 참여시켜야 한다. 동시에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과 다자와 양자 대화를 계속하면서 무엇보다도 북한이 원하는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 미국의 대북정책이 적대적인 것이 아님을 납득시켜야 한다. 강 대 강 대응이면 김정은은 핵·미사일과 잠수함 개발을 더 서두를 것이다. 김정은은 슬기롭고 교활하게 “약자의 힘”을 극대화하고 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출처: 중앙일보] [김영희 칼럼] 미·중 ‘휴전’과 공조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