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중인 개성공단에 더해 이곳에 남북한 역사문화 교류센터를 설립하고, DMZ의 생태 개념을 더한 공간을 조성한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격동하는 과정에서 광복 70년을 맞게 된 지금, 한국의 미래상을 그린 원대한 국가전략이 없다는 얘기가 많다. 이런 인식의 저변에는, 우리에게는 미래 전망적 역사의식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대중은 고대사에 대한 회고적 감상이나 일본과의 악연에 대한 정서적 대립구도에 익숙해 있으나, 통일이나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할 것인지에 대한 ‘역사하기(doing history)’에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지만 역사인식은 분절적이다. 타자에 대한 분개는 있으나 치밀한 대안적 역사 설계는 해본 적이 드물다. 한마디로 역사비전의 부재, 이것이 광복 70년을 맞는 한국인의 역사상이 아닐까 싶다.
‘남한 젊은이들에게 통일의 꿈이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가디언’이 지난해 5월 작가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소개하면서 꼬집은 말이다. 통일이 가져올 문화적·사회적·경제적 효과가 사회를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반 시민에게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의심, 그리고 반대를 증식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불확실성, 남북한 갈등과 통일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육박해 오는 중국과 일본의 공세에 대한 부담감에 ‘불길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제다. 오도된 역사인식에 근거한 데자뷰는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자충수일 뿐인데.
역사는 기억의 구성체다. 그러나 그것이 기억의 회로에 갇힌 골동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미래를 억압하는 족쇄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역사가 성찰의 역사라면, 우리는 시대정신에 맞는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시공간의 인식구조를 타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서 얘기한 고려시대 역사상의 복원이나 한반도에 드리워진 지정학적 단층선을 견고히 묶어내려는 의지와 노력이 ‘미래 100년 역사전략’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顚覆的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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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상황은 구한말 망국 때와 ‘절대로’ 일치하지 않는다. 문제는, 역사에 대한 전복적(顚覆的) 해석과 이를 실천하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명예와 안전을 동시에 지켜낼 역사의지를 확인하고 그를 지혜롭게 실천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고뇌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가 몇 배의 힘을 낼 텐데”라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낼 수 있는, 미래 100년을 통찰하는 ‘역사하는 힘’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입력 2014-09-19 10: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