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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논설주간
한·미 당국이 사드 배치를 발표하던 8일 오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찢어진 양복을 수선하기 위해 강남의 백화점에 갔다. 북한이 시위하듯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스커드미사일을 쏘아올리고 시진핑과 푸틴이 공동으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와중의 일탈(逸脫)이다. 평소 허점을 보이지 않는 윤 장관의 기행(奇行)은 안보라인이 독주하는 정부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무언의 항의가 아니었을까.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 농민들에게 감금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법치가 설 땅이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다. 농민들의 행위는 분명 잘못됐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면 선량한 농민이 폭력을 휘둘렀을까. 대통령의 친위세력이라는 TK 의 ‘진실한 사람들’이 저만 살겠다고 반기를 든 것도 충격적이다. 이렇게 소통 부재로 내부가 무너진다면 눈에 핏발이 선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한다는 것은 잠꼬대 같은 소리다.
2016년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반도 상황은 세계 최강 국가의 패권 전장(戰場)이라는 점에서 반세기 전 쿠바 위기와 흡사하다. 물론 강도는 핵무기가 가세하고 3차 세계대전의 공포가 밀려 왔던 당시가 훨씬 심각했다. 대결의 선두에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섰다. 물러설 수 없는 치킨 게임이었지만 두 사람은 타협과 평화를 선택했고, 인류는 아마겟돈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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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의 고령인 프로스트는 소련에 도착하자 피로에 고열까지 겹쳤다. 흐루쇼프는 자기 주치의를 보내 치료하게 했고, 병상으로 찾아가 한 시간 반 동안 감동적인 대화를 나눴다. 임종 직전의 창백한 모습이었던 프로스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스포츠와 과학·예술·민주주의에서 고귀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로스트는 “위대한 나라가 위대한 시인을 만들고, 위대한 시인이 위대한 나라를 만든다”는 자신의 경구를 들려주었다. 흐루쇼프는 ‘평화로운 경제 경쟁’을 하자고 거든 뒤 “당신은 시인의 마음을 가졌다”고 화답했다. 프로스트는 ‘우정의 라이벌 로버트 프로스트가 흐루쇼프 서기장에게’라고 적은 자신의 시집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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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쇼프는 우달과도 따로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의 11월 중간선거가 끝날 때까지 베를린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겠다는 비밀 메시지를 케네디에게 전달했다. 그루지야산 와인을 선물로 주면서 케네디가 빠른 시일 내에 부인과 딸을 데리고 자신의 흑해 별장으로 와주기를 희망했다. 케네디가 프로스트를 보낸 것은 타협하겠다는 의사였고, 흐루쇼프는 화답했던 것이다. 그해 11월 말 케네디가 공식적으로 쿠바 봉쇄를 해제하자 프로스트는 우달에게 “당신과 나는 흐루쇼프의 마음이 진심으로 서쪽을 향해 기울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찬사를 받아야 한다”는 전보를 보냈다. 그가 1963년 1월 30일 세상을 떠나자 케네디와 흐르쇼프는 조사(弔辭)를 썼다.
54년 전의 케네디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안간힘을 썼다. 2016년의 한국 정부는 위기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불통과 일방주의로 외부 설득을 위한 내부 동력을 모으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과는 논의도, 요청도, 결정도 없었다는 ‘3No’를 반복하다가 느닷없이 사드 배치를 발표하니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발표 9일 전 중국에서 시진핑과 만난 황교안 총리에겐 귀띔해 줄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살리지 못했다. 외교부 장관은 양복을 수선하러 백화점에 갔고, 정권 실세는 반발하는 농민을 설득하는 대신 정부를 비난하는 서명에 가세했다. 인류의 절멸을 막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프로스트의 ‘마지막 헌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실망스러운 장면들이다.
이하경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