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과 아타튀르크

2016. 7. 23. 11:21정치와 사회

술탄 vs 아타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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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말 파샤 이후 터키 군부는
정교분리 등 세속주의 옹호
이슬람주의 기댄 에르도안과
국가 정체성 두고 대립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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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술탄.’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수식어로 자주 붙는 아랍어 단어다. 술탄은 알라로부터 종교적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인을 의미한다. 600년 이상 중동 전체를 아우르던 오스만제국 황제의 공식 칭호였다. 중앙아시아에서 중동으로 이동해 제국을 건설한 튀르크족이 다수의 아랍 및 중동 부족을 다스리기 위해 이슬람주의를 이용한 것이었다.

반면 아타튀르크는 ‘튀르크의 아버지’라는 뜻의 튀르크어다. 세속주의 터키공화국을 건국한 무스타파 케말 파샤에 대한 터키인의 존경이 담긴 칭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편에 서면서 패전 후 패망의 길로 가던 터키를 다시 일으킨 인물이다. 유럽 강대국이 이미 잠식한 방대한 영토의 이슬람제국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나톨리아 튀르크 민족을 위한 공화국을 세웠다. 터키의 살길을 개혁과 개방으로 인식하고 강력한 서구화로 나아갔다. 정교분리를 받아들여 세속주의를 표방했다.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1930년대에 이미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아타튀르크가 구축한 세속주의와 유럽식 민주주의 절차·제도를 수호해 온 주축 세력이 군부였다. 군인 출신 초대 공화국 대통령 아타튀르크를 보위하면서 터키 개혁의 선봉에 선 것도 군이었다. 1950년 민정이 시작된 이후 정부가 이슬람주의나 비민주적 권위주의로 나아가려는 조심이 보이면 쿠데타를 일으켰다. 네 차례의 쿠데타를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다시 막사로 돌아갔다. 이런 터키 군부의 독특한 역할을 보면서 정치학자들은 국가 권위 위에서 그리고 막후에서 언제든 영향력을 행사하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는 이론도 만들었다. 4권 분립이라는 용어도 나왔었다. 터키에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외에 군부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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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이번 터키의 쿠데타도 군부의 딥 스테이트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11년간 총리를 지내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 실질적 권력을 장기화하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저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지식인과 세속주의 세력도 군부의 이런 역할을 은근히 기대해왔다. 언론을 탄압하고, 시위를 강력히 진압하고, 대통령 모욕죄로 수천 명을 기소해왔던 현 정권에 대한 불만세력을 대표한 주축이 군이었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그것도 6시간 만의 진압이었다. 군부가 간과한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두터운 지지였다.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를 가미한 에르도안의 정책은 서민에게 훌륭한 대안이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추진했던 ‘지나친’ 경제 개혁과 세속주의 정책은 90년대 경제 파탄만 가져왔다. 이를 극복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고 이슬람 본연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지도자가 에르도안이었다. 정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식에 행동에 나선 것도 이들 지지자였다.

따라서 보다 큰 틀에서 보면 현재 터키의 정치 상황은 정체성의 대립이다. 아타튀르크로 대변되는 세속주의와 ‘술탄’의 이슬람주의다. 물론 에르도안은 온건한 이슬람주의자다. 술탄이라는 칭호를 거부한다. 1922년 술탄 이슬람제국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아타튀르크 주도의 세속주의 군부가 그동안 터키의 실질적 권력이었다면, 이제 서서히 이슬람주의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에르도안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체성의 대립과 경쟁이라는 점에서 터키 사태는 장기화할 것이다. 1798년 프랑스가 이집트 북부를 점령한 이후 중동에서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결구도하에 있었다. 대부분 기간은 세속주의가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슬람주의가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역시 쿠데타로 몰락했지만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에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치러진 총선과 대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하기도 했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과격이슬람주의 테러세력이 국가를 선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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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군부와 법조계로 대표되는 세속주의 세력을 최대한 축출하려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대규모 시위나 또 다른 쿠데타의 가능성도 있다. 가뜩이나 IS와 인구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도전으로 어려운 국내 정치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진행될 것이다. 국내 정치에 몰입하면서 IS 격퇴전에 대한 터키 정부의 관심과 참여도 더욱 낮아질 것이다. 오히려 에르도안 정부가 쿠데타 배후로 지목하고 있는 재미 이슬람 지도자 펫훌라흐 귈렌의 신병 인도 문제로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도 악화할 수 있다.

터키는 서방과 중동 이슬람권을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 유럽으로 향하는 중동의 원유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국가다. 또 중동 이슬람국가 중 제조업이 가장 발달해 우리와의 경제협력도 끈끈한 파트너다. 한국을 형제국가로 생각하고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자신을 ‘한국인’이라는 의미인 ‘코렐리’로 부른다. 가뜩이나 혼란한 중동 정세와 침체된 세계 경제 속 터키의 향방에 면밀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론] 술탄 vs 아타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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