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 일로

2016. 8. 25. 04:24물류와 유통

도략을 품은 일대일로(5)-칭기스칸 잠(jam)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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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는 몽골제국을 닮았다?

무슨 뜬금없는 얘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일리가 있는 얘기다. 일대일로를 주창한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주석이 칭기스칸을 사사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한때 나왔으니 말이다.
왜 그럴까.
 
지난 2014년 12월 9일, 스페인 마드리드 역에 갑자기 중국의 화물열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무후무한 이 열차 입성(?)을 다음날 중국언론은 ‘일대일로의 개통’ 운운하며 감격을 표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도 나왔다. 전달 18일, 중국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역을 출발한 화물열차가 21일 동안 유라시아 대륙 7개 국가 1만 3000여㎞를 달려  도착했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경유국을 보자면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벨로루시·폴란드·독일·프랑스 그리고 스페인 등. 열차가 스친 역만 1000여 개. 시 주석이 일대일로 구축을 선언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철의 실크로드 하나가 구축된 것이다. 이른바 중국의 세계 도략을 위한 인프라 구축 신호탄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시간을 13세기 초로 돌려보자.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스 칸이 제국의 통치를 위해 가장 먼저 한 게 무엇이었을까. 바로 도로와 도로를 연결하는 역, 즉 잠(jam) 건설이었다. 현대 중국어의 역을 뜻하는 잔(站)은 몽골어 잠에서 나왔다.

이 잠은 칭기스 칸에 이어 대칸에 오른 우구데이가 기본 망을 완성했는데 중국 대륙에만 1400여 개가 있었다. 이후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제국의 도로에는 수만 개의 역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비사는 당시 역참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방방곡곡의 천호(千戶)로부터 역참지기와 역사지기를 내어 자리자리마다 역참을 두고 사신이 쓸데없이 백성을 따라 달리지 않고 역참을 따라 달리게 하면 옳지 않겠는가."
 
이렇게 모든 역참에서 대기 중인 말이 무려 20만 마리. 숙식가능한 객사도 1만 개소에 달했다. 마참(馬站)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마참 옆에는 마차를 운용하는 차참(車站)있었고 바다와 강이 있는 곳에는 배를 준비한 해참(海站)과 수참(水站)이, 그리고 북방의 눈 덮인 지방에는 개가 끄는 눈썰매로 무장한 구참(狗站)이 준비돼 있었다. 몽골비사 등 사료에 따르면 이들 해참에도 배 6000척이 준비돼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잠은 한과 당, 청나라 때도 있었지만 대략 4가지 면에서 몽골의 잠은 이들과 달랐다.
 

우선 규모의 방대함이다. 당대에는 중국 전역에 걸쳐 1639개 소의 수역(水驛)과 마역(馬驛)이 있었다. 숫자로만 보면 몽골제국의 1400여 개보다 많다. 그러나 당대의 역참과 역참 거리는 15㎞ 정도였으나 몽골제국은 30㎞로 두 배였다. 몽골제국의 잠 총연장이 당대의 두 배가 넘는 6만㎞에 달했다는 얘기다.
 
 둘째 몽골의 역참은 공적 인원과 물자의 운송까지 담당하는 포괄적 운송체계였다. 그만큼 제국의 경영에 필수적인 교통 인프라였던 셈이다. 이전 왕조에서는 주로 사신과 관리들의 이동을 위해 잠을 활용했다. 
 
 셋째 역참의 운영을 전담하는 특별한 호구, 즉 참호(站戶)를 두었다. 이전 왕조는 역참의 운영비를 중앙 혹은 지방의 재정수입에서 충당했다. 역참에 근무하는 직원들 역시 국가에서 임명한 하급 관리였다. 그러나 몽골제국은 각 역참을 관리할 수십 혹은 수백 개의 가호를 지정해 그들에게 면세혜택을 주고 대신 역참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물자를 충당하도록 했다. 현대판 독립경영, 혹은 독립채산제를 도입해 역참 운영의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DA 300


 넷째 역참과 참호 외에 신속한 각종 문서 전달을 담당하는 전령시스템을 운영했다. 이는 통치와 행정의 효율성, 정보 유통의 신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몽골의 이 같은 역참제도는 명과 청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국가의 효율적 통치를 위한 기본 인프라로 활용됐다.
 
 다시 시간을 2013년 10월 돌려보자. 동남아를 순방 중이던 시 주석이 해상실크로드를 주창하면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거론하고 나섰다. 아시아 공동 번영을 위해 인프라 건설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AIIB는 한국과 영국 독일 등 57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1월 공식 출범했다. 초기 자본금 500억 달러는 앞으로 1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동남아 등 인프라 열악 지역에 철도와 도로 항구를 건설해 중국의 세계 도략에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현대판 칭기스 칸 제국 의 '잠'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최형규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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