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

2016. 9. 23. 10:42경영과 경제

문화책과 생각

“내가 만난 평범한 한국인들은 다 시인이었다”

등록 :2016-09-22 18:15수정 :2016-09-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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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고려인 3세’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

‘러’ 작가 중 노벨상 후보 1순위
“러시아어로 글쓰는 한국인이라는
경계인 정체성 덕에 작가로 승리”

경주 세계한글작가대회 참석차 방한
신작 ‘낙원의 기쁨’ 국내 번역 기대
“이상과 같은 강릉김씨여서 작가로”
아나톨리 김.
아나톨리 김.

아나톨리 김은 현존 최고의 러시아 작가로 꼽힌다. 1938년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3세로 태어난 그는 파스테르나크나 솔제니친 같은 러시아의 노벨상 수상 작가들에 견주어진다. 아나톨리 김 본인은 노벨상에 대한 언급이나 그를 위한 정치적 행보 등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1970년 수상자인 솔제니친 이후 다시 러시아 문학에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그 주인공은 ‘아나톨리 김’이라는 게 많은 러시아 문학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장 이상문) 주최로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20~22일) 참석차 2년 만에 방한한 그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21일 오후에 만났다.

-세계한글작가대회의 취지를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인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이나 기업, 브랜드 등은 잘 알고 빠른 발전에 놀라워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한국인의 혼과 정신, 의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문학은 바로 그런 정신과 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런 행사를 통해 한국의 본모습을 외국인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선생님은 고려인 3세이긴 하지만 러시아에서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신다. 선생님 문학에서 한국과 한국적인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평생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했고 그걸 훼손하는 일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작가로서도 나는 한국인의 눈으로 보고 한국인의 마음으로 느끼며 한국인의 손으로 쓴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러시아어로 쓰지만 내 안에는 한국인의 혼이 들어 있고, 그 결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나만의 문학을 하게 됐다. 경계인적 정체성과 그에 대한 자각 덕분에 작가로서 나는 승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작품은 30개 말로 번역되었을 정도로 세계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 선생님의 문학에서 한국적 정체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내 소설에 대해 비평가들은 ‘대체로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그 안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비범하다는 점이 아나톨리 김 문학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작고한 러시아 작가 발렌틴 라스푸틴도 ‘어떻게 러시아어를 이토록 깊게 표현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다람쥐>나 <아버지 숲> 같은 내 소설들은 여러 층위와 뉘앙스를 지니며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 사람들끼리는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내 문학이 바로 그런 한국적 특성과 관련된다고 본다.”

-2013년에 낸 신작 <낙원의 기쁨>에도 그런 한국적 특성이 들어 있나?

“그렇다. 이 작품에서는 한 장(章) 전체가 한국과 관련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작품은 한국인의 정신으로 빚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전생과 후생 개념을 통해 인간의 불멸 가능성을 다루었다. 전생이니 후생이니, 러시아어에는 없는, 한국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2008년 석 달 가까이 전북 남원에서 생활했던 경험도 모티브로 담겼다. 그때 내가 만난 우체부나 산림지기 등 평범한 한국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시인이었다. 그때 그린 수채화와 데생을 모아 러시아에서 책으로 내기도 했다.”

-<낙원의 기쁨>에서 추구하신 인간의 죽음과 불멸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말하는 불멸은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 없이 다 누리며 오래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원시적인 생각이다. 내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한 불멸은 인간 내면에 고유하게 간직된 잠재력으로서 불멸이다. 사람은 물론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죽음이 있으면 탄생도 있는 법이고 이 둘은 상보적이며 대등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탄생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멸을 이해하게 되면 인간은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신앙을 가지고 계신가?

“그렇다. 나는 러시아정교도로 그리스도를 믿는다. 신께서 나를 부르셨고 그 때문에 내가 문학을 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선생님은 한국의 고전소설 <춘향전>을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공역)하시기도 했다. 다른 한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신 적도 있는지? 그리고 <춘향전>은 러시아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동백꽃’ ‘백치 아다다’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같은 1920~30년대 단편들을 모아서 번역 출간한 일도 있다. <춘향전>은 한국적 여인상과 사랑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자랑스러워하며 번역했다. 나는 <춘향전>을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견주곤 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사랑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소녀를 위대한 여성으로 만들어 준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김시습과 이상(본명 김해경) 같은 강릉 김씨 가문의 ‘문재’를 타고났기에 작가가 되었다고 말하는 아나톨리 김. 러시아어 통역을 거쳐 대화하면서도 “내 남원 최부잣집에 살믄서리” “그리 보구서리”처럼 북방 말투 한국어를 종종 구사하는 그에게서는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최근작인 <낙원의 기쁨>이 하루빨리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주/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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