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은 뒷모습이 고와야
수사와 재판은 법의 길 간다
하나 법적 판단은 치유가 아니다
법의 궁극에 있는 것은 사람이다
박근혜는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국민과 화해 서두르길 기대한다
![김영희칼럼니스트·대기자](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3/17/7eabab16-b56b-48f6-8edb-abfd14208e35.jpg)
김영희칼럼니스트·대기자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덮으려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이어가다 대변인 론 지글러를 시켜 “이제 이 방법은 작동이 안 된다(inoperative)”는 논평을 내고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잘못으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을 사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빠른 힐링(치유)을 희망했다.
대조적으로 우리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의 옛집으로 돌아가서 집 앞 골목길에 모인 지지자들을 상대로 “시간이 걸려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탄핵 불복을 선언했다.
박근혜와 닉슨은 어디가 다른가. 닉슨에게는 큰 것을 보는 대국관(大局觀)이 있었다. 반면에 박 전 대통령은 아직도 사태를 총체적으로, 개념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전 아이슬란드 대통령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가 말한 “무엇이 정말로 국가에 이익이 되는가를 국민 전체의 보편적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윤리적 이해력(ethical literacy)”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3/17/32bb9be2-0211-43dc-baae-7eec386d7934.jpg)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 하루빨리 치유돼야 한다. 집 앞 골목길의 지지자들의 아우성은 그를 점점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권력 남용과 뇌물수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뒤따를 재판 과정 내내 나라를 탄핵 지지자와 반대자의 분열·대결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박 전 대통령에게는 치유의 자산이 있다. 그는 2013년 중국 방문 때 시진핑 주석의 모교인 칭화(淸華)대에서 강연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대학 측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칭화대의 대학원장을 지낸, 서예로도 유명한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이 89세이던 1984년에 쓴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798~756)의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이라는 시의 족자다. 박 전 대통령이 펑유란의 『중국 철학사』를 메모까지 하면서 탐독한 것을 안 펑유란의 외손녀가 간직하고 있던 족자를 선물로 내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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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셋째와 넷째 줄이 박 전 대통령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질 만하다. ‘낙양의 벗들이 내 안부를 묻거든(洛陽親友如相門)/ 옥 항아리 속 한 조각 얼음같이 맑게 살고 있다고 전하게(一片氷心在玉壺).’ 박 전 대통령이 이 족자를 청와대에 두고 나왔는지, 집으로 가지고 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펑유란의 『중국 철학사』를 그렇게 열독했다면 펑유란이 쓴 왕창령의 시를 잊었을 리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가끔 요즘 유행하는 ‘멍 때리기’라도 하면서, 그리고 좋아하지만 칠 기회가 없었던 피아노를 치면서 옥 항아리 속의 한 조각 얼음 같은 사심 없고 냉철하고 맑은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는 골목길에서 아우성치는 지지자들을 이용해서도 안 되고,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지지자들 중에는 자신들의 존재감 과시와 공직 출마를 위한 보수층의 인기몰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떠나는 사람은 그 뒷모습이 고와야 한다. 검찰 수사와 재판은 법의 길을 간다. 그러나 법적 판단은 치유가 아니다. 법의 궁극에 있는 것은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과의 화해를 서두르기를 기대한다.
전직 대통령은 자연인이라도 공공선에 봉사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