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분노를 넘어서서 일단 궁금해진다. 한국인 징용 피해자를 빼는 것이 뭐가 그렇게 거북해서, 또는 전범만 빼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비난과 항의 속에서도 끈질기게 갖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야스쿠니는 ‘한 번 합사된 혼은 분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고 한다. 한·일근대교류사 전문가 이종각 교수에 따르면, 합사된 혼은 “물항아리에 합쳐진 물”과 같아 “문제 되는 사람들만의 물을 따로 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논리라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자유를 달라!/ 내 찰나의 생에 끝이 다가오니/ 오직 간원하는 것은 이것./살아서든 죽어서든 속박 없는 영혼”이라는 에밀리 브론테의 시구처럼, 우리는 인간이 구속 많은 현실과 육체를 떠날 때 영혼이라도 자유롭고 독립적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야스쿠니의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은 살아서도 강제로 군국주의의 부속품으로 동원되었고, 죽어서도 영혼이 전범과 한 덩어리가 되어 전쟁 미화의 대상으로 숭배받길 강요당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체주의의 ‘끝판왕’이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최악의 상징적 말살 형태다.
과연 일본인 자신은 이런 전체주의의 부속품이 되는 것에 동의할까. 그간 야스쿠니 합사 및 참배 반대 시위에 한국인과 함께해온 일본 시민단체들이 있는 것처럼,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문득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이 몇 년 전 필자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일본인들도 광복절을 “해방의 날”로 축하해야 한다고, 가미카제 등으로 자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군국주의 정부에서 해방된 날로서 한국인과 함께 축제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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