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적, 미국 지지 없어 발전 어려워
북한 덕 볼 일만 하면 중재 노릇도 못해
그렇다면 ECSC가 유럽연합(EU)으로 컸듯 철도공동체도 우리 생명을 지켜줄 다자안보체제로 진화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일까지 뛰어들 철도공동체를 만드는 것부터 벅차지만 설사 돼도 다자안보체제까지 넘보는 건 물정 모르는 한여름 밤 몽상이다.
남북한과 중·러 철도를 잇자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김대중 정권 이래 노무현·박근혜 정권 때도 ‘평화번영정책’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이름 아래 비슷한 사업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늘 비용과 북한의 비협조가 문제였다. 2009년 철도연구원은 북한에 들어가 인프라 상태를 훑었다. 그 결과 해방 이래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60년 넘게 그대로임이 드러났다. 레일·침목이 모두 삭을 대로 삭아 시속 40~50㎞가 고작이었다. 급커브도 많아 아예 철로를 새로 깔아야 하는 곳도 적잖다. 남측 고속전철이 달리려면 철로를 완전히 개·보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모든 난관을 풀려면 최소 4조원, 최대 38조원이 들 것으로 추정됐다. 물론 외국 돈이 투자되면 훨씬 부담이 줄겠지만 북핵 뇌관도 빼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외국 기업이 돈을 대겠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남북과 중·러 철도를 잇는다고 지역 통합이 이뤄져 평화가 깃들 가능성은 너무나 작다. 무엇보다 ECSC를 통해 유럽 국가,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뭉칠 수 있었던 건 소련이란 공통의 적 때문이었다. 소련의 위협 탓에 프랑스는 독일에서 빼앗았던 알자스로렌까지 선선히 내주며 손을 잡았던 것이다. 반면 철도공동체의 경우 회원국들을 아교처럼 들러붙게 할 공동의 적이란 없다.
더 큰 문제는 든든한 후견자 노릇을 해야 할 미국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은 ECSC 출범을 지지해 줬다. 하지만 철도공동체에 대해선 쌀쌀맞기 짝이 없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철도공동체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자 “한·미는 긴밀한 공조를 유지 중”이란 판에 박힌 답을 내놨다. 사실상 불쾌감을 나타낸 셈이다.
설사 철도공동체가 잘 된다고 해도 지역 평화가 저절로 올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예로부터 경제적으로 얽힌 나라와는 전쟁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싸운 영국과 독일은 당시 서로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무역과 같은 ‘하위 정치(low politics)’가 안보로 상징되는 ‘상위 정치(high politics)’에 별 영향을 못 미침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다. 이런 터라 국제사회에선 철도공동체를 제안한 문 대통령의 참뜻을 의심하는 눈이 적잖다.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란 말이 있다. 독일의 철혈수상 비스마르크가 처음 쓴 개념으로 정직한 중재자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수다. 첫째가 정직, 둘째는 불편부당, 셋째는 중재자의 개입으로 사태가 더 쉽게 해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격 미달이다.
가뜩이나 석탄 밀반입 사태 등으로 틈만 나면 북한 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문재인 정부다. 이번 철도공동체 구상도 결국 최대 수혜자는 김정은 정권이 될 게 뻔하다. 이렇듯 북한이 주로 덕 볼 정책을 쏟아내면 한반도 운전자는커녕 중재자 노릇도 어렵다는 걸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