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
금강산 관광은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해 전쟁 위협을 감소시키는 ‘평화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북관계가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이 기여한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1999년 6월 서해에서 남북 간 교전이 있던 때나, 2001년 ‘9.11 테러’ 때에 사재기 현상이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사업으로 조성된 긴장완화 덕택이고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심의섭, 2001, 73)
개성공단 역시 평화경제의 거점으로 손색이 없다. 개성에 주둔한 인민군 정예부대가 후방이동한 자리에 공단을 조성하는 ‘안보(안보 후퇴)-경제(경협 증진) 연계’를 통해 새로운 평화경제의 모델을 창출할 것이다. 평화경제의 새로운 거점인 개성을 중심으로 경제-안보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10․4 선언의 제5항이 탄생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개성공단의 연장선상에서 해주지역과 그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금강산․개성공단에서 이루어지는 ‘평화+경제’의 시너지 효과가 평화경제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인민군이 주둔했던 예전의 금강산 지역(장전항)․개성시가 전쟁경제와 연관이 있었다면, 금강산 관광지․개성공단은 평화경제의 새로운 터전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화경제’를 전쟁경제의 반대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또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의 경제체제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평화경제’가 암시하듯이, 전쟁지향적인 군사경제를 중지하고 다른 나라와 평화적인 협력관계를 지향하는 평화적인 경제건설을 목표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평화경제는 전쟁지향적인 제국주의․군사집단․관료․독점자본과 절연된 상태에서 나라 안팎의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 평화경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경제의 군사화’와 ‘군사의 경제화’를 지양하고 국방비를 최대한 감축해야하며, 군축-국방비 감축을 통해 축적된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을 민중복지 증진에 사용해야한다. 그리고 국가기구의 군사화를 중단(국민을 억압하는 국가기구, 억압적인 정보기구 철폐)하거나, 국가권력의 군사주의화를 지양함으로써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해야한다.
금강산․개성공단에서 시험한 평화경제의 모델을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에 적용하여 평화경제의 띠를 형성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러한 성공의 주체인 남북한의 국가권력이 평화지향적으로 변모할 것이다. 국가권력의 군사주의화를 지양함으로써 평화지향적인 정치체제로 거듭날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이 국가연합에로의 진입을 촉발할 것이다. 국가연합의 대장정이 될 10․4 선언의 제3항․제5항을 중심으로 국가연합의 진입로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연합을 앞당길 수 있는 평화경제에 관한 이론 즉 평화 경제론은 분단 및 통일 문제를 단순히 정치안보적 관점이 아니라 거시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실천이론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평화 경제론은 경제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분단과 통일 문제를 규명하기 때문에 종래의 인식론과는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 종래에는 분단 및 통일문제가 주로 정치 이념적 또는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됨으로써 다분히 이념적이고 규범적인 특징을 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평화 경제론에서는 분단 및 통일 문제가 ‘비용의 최소화’ 내지 ‘이익의 최대화’라는 경제학적 명제를 가지고 규명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평화 경제론에서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합목적적인 통일정책을 구체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의 정치이념적인 분단 및 통일론에서는 ‘역사적으로 한 핏줄의 단일민족, 단일국가가 둘로 나뉘어졌으니 마땅히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식의 통일 당위론이 지배해왔다. 이러한 통일 당위론에서는 언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의 감성논리(感性論理)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늘 그러하듯이 ‘통일 구현’을 분단한국이 지향해야하는 최선의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남북한은 지금까지 통일 당위론을 앞세우면서 통일정책을 막연한 정치안보 논리에 의존하여 추진해 왔다는 것을 사실상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화 경제론은 남북분단 문제를 하나의 거시적 사회현상으로 관찰하는데 주목한다. 그리고 객관적 관찰을 통해 합목적적인 통일정책을 세부적으로 모색하는데 주력한다. 이러한 평화 경제론은 일정한 이념적 기준이나 규범적 가설에 안주하여 겉돌고 있었던 그 동안의 획일적인 통일논의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예컨대 평화 경제론에 따르면 분단 상황 하에는 분단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 최상의 통일정책으로서 도출될 수 있고, 통일 직후 일정 기간 동안은 ‘통일의 마찰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지출되는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통일 이익’(통일 편익)을 최대화하는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 경제론은 미래에 이루어지게 될 ‘남북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객관적인 분석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홍성국, 2007, 154-155)
이처럼 평화 경제론은 분단극복과 통일을 실현하는 ‘과학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 평화 경제론은 실사구시적인 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분단으로 왜곡된 사회․경제 체제를 변혁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평화 경제론이 남북한의 사회경제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당위(Sollen)’를 가로막는 ‘현실(Sein)’은 북한 핵문제이다. 북한 핵문제라는 고난의 현실이 당위를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평화 경제론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당위(통일의 청사진을 통해 남북한의 사회경제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당위)’를 실행할 수 없다. 평화 경제론을 적용할 수 있는 10․4 선언의 제3항․제5항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면, 평화 경제론의 통일을 위한 실행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평화 경제론의 실행력(북한 핵문제 해결 능력)을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눌 수 있다. 낙관론은 ‘평화 경제론에 따르는 남북한의 경협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평화 경제론의 ‘낙관’에 의하면, 경협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앞당긴다. 금강산 관광사업․개성공단 개발에 이어 해주공단․서해 평화협력 특별 지대로 경협의 폭이 커질수록 남북한 사이의 경제통합의 강도가 강해지며, 이는 북한 핵문제의 강력한 원군이 된다. 그러나 경제통합의 질적 확대가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화경제-경협 평화론에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김태우는 “평화 경제론은 북한의 변화의지는 확실하므로 변화를 위한 여건만 조성해주면 된다는 식의 낙관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논리로서 ‘북한이 변화를 끝내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끝내 핵을 고수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체제고수를 결심하고 있는 중에 제공되는 대북지원은 결국 제체결속을 위해 사용될 것 아닌가’ 등의 질문에는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최악의 시나리오들에 대해서는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채 막연히 북한의 변화만을 기대하면서 베풀기를 계속해야 하는 딱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정문헌 의원실, 2007, 54)
1. 경협+평화; 경협 평화론
평화 경제론이라는 큰 틀 안에서 ‘경협+평화’의 경협 평화론을 전개할 수 있다. (남북한이 상생하는 평화경제의 방법인) 경협을 통해 구체적인 평화 만들기가 가능하다. 경협이라는 평화경제의 방법을 통해 평화를 창출하자는 논리가 경협 평화론이다.
1) 이론적인 틀;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을 중심으로
평화에 관한 이론은 크게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유주의 이론에 근간을 두고 있는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peace through trade theory)’은 광범위하게 교역을 하는 국가들 간에는 전쟁충돌의 가능성이 낮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적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두 국가 간의 교역은 그들간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economic costs
of war)을 증가시킨다. 둘째, 교역은 교역 상대국들의 대화를 개선시킨다는 부수적 효과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대화의 증가는 상대국간의 오해 발생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며 또한 국가 간 충돌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기구나 제도의 설립을 용이하게 한다. 이와 같은 국가 간 교역의 증가로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이 증가되어 충돌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는
‘교역 또는 상호의존을 통한 평화이론(peace through trade or interdependence theory)’은, 최근 국제관계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을 한반도와 평화정착에 적용하기 위하여는 첫째, 이 이론의 기본 가정(基本假定)이 남북한 특히 북한정권의 통치행위와 전략적 사고에 부합하는가의 여부, 둘째 이 이론이 실제로 남북한의 갈등과 긴장상태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가가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의 기본가정의 현실 적합성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호전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자, 정책 수립가, 시민들, 그리고 이 이론이 남북한 관계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믿는 (남한의 일방적 지원과 남북 경제교류협력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 학자, 정책 수립가, 시민들에게 일방적인 「햇볕정책」은 위험스러운 정책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를 강력한 군사력에 의존하여 유지하려는 현실주의적 정책은 남북한간의 적대적 관계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남북한 모두의 국력을 소모하여 민족 자생력을 상실하는 낭비적 정책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의 화해․협력을 도출하고 장기적으로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즉 한반도에 ‘적극적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북한간의 교역을 통한 상호의존성의 확대가 가장 바람직한 수단 중 하나이다.(주성환, 2002, 166-167 ・183-184)
교역이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느냐 아니냐는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역과 분쟁 사이의 인과성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며,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인과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주성환은 남북한 경제교류와 정치(군사)적 분쟁 간의 인과성 방향을 알아보았다.
주성환의 분석 결과를 보면 남북한 간에는 첫째, 거래성 교역이 분쟁에 (+)영향을 주고 분쟁은 거래성 교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북한 간에 거래성 교역이 증가(감소)하면 남북한 정치적 갈등관계가 완화(악화)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분쟁 증가 (또는 감소)는 거래성 교역의 증가나 감소를 초래하지 않고 있다. 둘째, 남북한 비거래성 교역과 분쟁 간에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수로 건설사업, 금강산 개발사업, 기타 대북 투자사업 및 대북지원 등의 비거래성 교역은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추진된 ‘햇볕정책’에 따라 크게 증가하였다. ‘햇볕정책’은 정경분리를 원칙으로 하여 남북한간의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남북한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원조적 성격의 비거래성 교역을 통해 남북한 간에 화해․협력과 평화를 이끌어 내고자 했던 정부의 노력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이 분석결과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남북한 관계에서 경제교류를 통하여 정치관계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현 정부[참여정부]의 ‘평화와 번영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단순교역과 위탁가공 교역을 포함하는 거래성 교역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주성환, 2004, 43-44)
그러나 교역이 평화를 창출한다는 인식이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다는 반론도 있다. 바비리(Katherine Barbieri)는“대다수의 지도자들은 경제적 유대의 확장이, 무력에 심오하게 의존하는 국가간․국가내의 우애의 끈을 단단하게 할 것이라는 오랜 믿음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거부한다. ‘교역이 평화를 촉진하다’는 명제를 비판하는 쪽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국제분쟁에 하찮거나 부풀린 효과를 준다고 주장한다. 신세대들은 더욱 회의적이어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무조건적으로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교역명제(trade hypothesis)를 통한 무조건적인 평화증진을 믿지 않는다. 세계화론자들은 주로 해외 직접투자․국제관계의 폭발적인 증가가 국가를 평화롭게 하거나 나라 안팎의 불안정에 기여한다고 기술하는데, 이는 아직 미결의 문제이다.”고 비판한다.(Katherine Barbieri, 1999)
2) ‘경협평화’에 대한 긍정론
<함택영의 견해>
세계화 시대에 남북한이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를 지양하고 관계개선을 꾀할 수 있는 길은 경제교류․협력뿐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위기는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체제의 진로에 효과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접근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적극적으로 ‘평화에 대한 투자’를 기하는 일이다.(함택영, 1998, 384)
<김승국의 견해>
김승국은 경협 평화론의 전제가 ‘평화경제’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아래와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김승국, 평화 만들기 210호);
① 경협 평화론의 기본 전제: 평화경제
금강산 개발 모델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면 남북한 평화경제의 전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해 전쟁 위협을 감소시키는 ‘평화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성공단에서도 평화경제-경협평화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② 현실적인 근거: 유럽의 ‘경협을 통한 평화증진’ 사례
유럽의 경우 공동 안보 틀(헬싱키 체제, CSCE 체제)은 자원의 공동관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통한 유럽 통합의 길을 튼 것은 1952년에 출범한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CSC)이다.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프랑스와 독일이 중심이 된 6개국 유럽 경제부흥의 생명선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관리하자는 발상에 따라 ECSC가 출범했다. 이러한 발상은 오늘날 유럽공동체(유럽 평화공동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유럽은 자원․경제 공동체를 대변하는 유로 달러를 강화하는 가운데, 공동안보를 책임질 유럽 공동군(軍) 창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통합과 협력안보의 총화를 통한 유럽 평화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원 공동체가 평화 공동체의 하부구조가 된 유럽의 성공사례를 경협 평화론으로 정립한 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③ 경협 평화론을 한반도에 적용하기: ‘경제-안보 연계’ 카드
세계화 시대의 평화통일 전략으로는 경제적인 접근에 의하여, 즉 경제통합을 통하여 민족경제의 기반을 조성하는 길이 보다 유망하다. '시장의 논리’와 ‘(민족)공동체의 논리’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게 긴요하다. 경제협력을 통한 신뢰구축을 통해 군비통제 및 군축을 촉진함으로써 안보 공동체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1백만 명 이상의 남측 관광객이 북녘 땅을 자유로이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한 신뢰구축에 도움이 된다. 더욱이 최근의 금강산 육로 관광이 DMZ의 닫힌 문을 여는 ‘소통의 길’이 된 데 따른 남북 신뢰구축의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NLL 사태의 확산을 막는 분쟁 억지력으로 작용했다. 지난 NLL 사태 때 서해안에서 남북한 군사충돌이 일어났지만, 동해안에서는 금강산 뱃길 관광이 지속되었다. NLL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 남북 당국의 의지가 NLL 사태의 확산을 막는데 일조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비군사적 교류 협력이 군사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한반도 서부 지역에서도 개성 관광의 문호를 활짝 열어 비무장지대가 점차 평화지대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을 잇는 평화 프로젝트(긴장완화에 기여한 평화 기능)이자 남북 교류의 새로운 모델로서 개성 개발의 본보기가 된다. 그러므로 금강산 관광은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 퍼오기’이며, 특히 금강산행 육로는 ‘평화의 길(Peace Road)'로 손색이 없다.
개성 공단은, ‘남북간 경제교류 확대(경제)를 통한 긴장 완화(안보)’라는 경제-안보 연계 카드의 시험장이 될 것이다. 북한의 최전방 요새인 개성에서 인민군대가 모두 빠져 나오고 그 자리에 공단을 조성한다는 ‘안보(안보 후퇴)-경제(경제개발) 연계’ 결단이 개성 개발을 가능케 했다. 여기에 경제 우선의 관점에서 개성개발에 임하는 남한의 ‘경제(중소기업의 돌파구 찾기)-안보(대북 신뢰구축) 연계’ 구상이 접목됨으로써, 개성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④ 남북경협과 ‘북한 핵문제’ 해소: 남북경협으로 핵무기-기아의 악순환을 끊기
북한의 가장 큰 대외적인 위협은 ‘미국의 북한정권 붕괴 시나리오’이며 대내적인 위협은 기아이다. 두 위협요인은 서로 맞물려 있다. 미국의 집요한 북한붕괴 시나리오 때문에 기아가 가속화되었고, 기아의 가속화라는 경제난을 군사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북한에서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이 동시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끊는 길을 남북한 경협에서 찾도록 노력해야한다.
<정부쪽의 견해>
10․4 선언이라는 옥동자를 낳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 참여정부이므로, 당연히 참여정부는 ‘경협평화’에 적극적이다.
종합 월간지인 {신동아}(2007년 11월호)가 참여정부의 ‘대북 비전’을 담은 통일부 미공개 문건(「평화경제 체제 형성 전략」이라는 용역 보고서)을 단독 취재했는데, 이 문건을 통해 정부쪽의 견해를 유추해석할 수 있다.
아래는 {신동아}(2007년 11월호, 237~239쪽)의 관련기사 내용이다;
통일부 주변에선 이번 정상회담[제2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노무현 정부의 대북 비전을 담은 ‘밑그림’ 중 하나로 ‘평화경제체제 형성 전략’이라는 내부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 경협을 연계한 3단계 평화경제체제 형성 전략을 제시했다. 1단계는 북핵 문제의 교착 상태, 2단계는 북핵 문제의 합의 상태, 3단계는 북핵 문
제 해결 이후의 상태로 규정한 뒤 1단계에선 평화경제 체제의 기반 조성, 2단계에선 평화경제체제의 발전, 3단계에선 평화경제 체제의 심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신동아}는 이 보고서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조민 박사(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보고서의 핵심 방향과 주요 내용을 알아보고자 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에 대한 조 선임연구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질문] 보고서에서 제시한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무엇인가.
[조민 박사의 대답] “보고서의 핵심 콘셉트는 ‘북한 사회에 시장경제 체제를 이식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의 이식은 ‘대북 투자’의 형태로 이뤄진다. 다른 말로 하면 ‘평화를 구매하자’는 개념이다.”
-‘평화를 구매하자’는 취지인가.
“보고서에선 평화경제 개념을 채택했다.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야 한다’는 논리다. 힘에 의한 평화와는 다르다. 부시 미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실패한 것은 ‘민주주의와 자유’이념을 강제적으로 이식하려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경제적 자유와 번영을 보장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북한에 이식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구축에 더 적합한 방식이라고 본다. 이런 개념하에서 구체적 경협사업 관련 내용들이 연구됐다.”
그런데 위와 같은 ‘평화를 구매하자’는 개념은 진보․보수 양쪽으로부터 협공당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평화를 구매하는’ 발상은 필자 등이 주장하는 평화 경제론에 어긋난다. 어긋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힌다;
첫째, 평화는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평화가 매매의 대상이 된 사례가 있다. 서독이 마르크화로 동독을 산 결과 동서독의 통일이 이루어진 사례, 소련 붕괴 뒤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해체를 위해 대량의 달러를 투입한 사례(달러로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구입),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에 이은 서방경제권 진입을 미끼로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한 사례, 북한 핵물질을 돈 주고 사면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핵문제와 관련된 평화구매 전략을 거론하고 서독이 돈으로 평화를 구매한 사례를 논평하는 순서를 밟는다. 핵물질․(핵)미사일을 돈 주고 구입하자는 자본주의적인 평화구매 전략이 우크라이나․리비아에까지 관철되었으나, 북한에 대하여서는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평화전략과 자본주의 방식의 평화구매 전략이 상통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북한이 미국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하는 ‘근본문제’ 해결이 없는 평화구매 전략이 성공할리 없다.
서독 정부가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마르크화를 소련에 지불함으로써 통일의 대외환경을 만들었으며, 동독을 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독의 돈(자본)을 대거 투입했다. 한마디로 서독은 돈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했다. 이렇게 돈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한 후유증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돈으로 평화를 구매하자’는 발상을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 발상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장으로까지 연결되었다는 게 심각한 일이다.
(북한 개혁․개방론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평화구매 전략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개방론을 설파하다가 제2차 정상회담의 첫날부터 낭패를 보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북한 개혁․개방의 미사여구에 파묻힌 평화구매 전략-평화 경제론과 필자의 ‘남북한 상생에 의한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의 차이점은 이 정도로 강조하고, ‘평화구매 전략에 입각한 평화경제-경협평화’에 대한 보수 진영의 비판을 이어서 소개한다.
3) ‘경협평화’에 대한 비판론
① 박효종 교수의 비판론(정문헌 의원실, 2007, 38-39)
이번 회담[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 노대통령은 ‘돈으로 평화를 살수 있다’는 말에 고무된 듯하다. 실제로 16세기의 사상가인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돈으로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외친 로마의 베제티우스나 마키아벨리의 견해와 사뭇 다른 것이다. 남북간의 교역과 교류가 많아질수록 상호이해도가 높아져 자연스럽게 통일이나 평화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은 현실 역사에서 검증된 바 없는 전형적인 이상론이다. 화해와 교류는 좋은 것이며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잦은 만남도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이른바 ‘평화 경제론’이다. 평화 경제론은 평화와 경제의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경협을 하면 남북한 정치․군사적 긴장완화라는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론이다.
하지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이와 같은 입장은 과거 미트라니(Mitrany)와 같은 학자들이 ‘기능론적 접근’이라고 불렀던 것이기도 하다. 기능론의 핵심은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기능론의 결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유럽통합을 상징하는 EU가 대표적 결실일 것이다. 그러나 EU의 특징은 체제와 이념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성취된 통합이라는 점에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 남북한이 가려고 하는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이다. 즉 체제가 다른 국가들끼리 경제적 통합을 통해서 정치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창의성의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상당한 모험도 뒤따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검증된 주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입장에도 새로운 시작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과거에 그러한 사례가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러한 경험적 사례가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중차대한 시도라면,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무모한 모험론에 몸을 맡길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며 가야한다. 과연 지금 우리의 태도가 그런가.
우리는 ‘평화 경제론’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명제보다는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명제를 선호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민주 평화론’이다. 남북한간 공고한 경제적 유대 또는 경제 공동체 형성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담고 있는 ‘평화 경제론’이 ‘민주 평화론’보다 한반도 평화에 있어 우위에 있다는 근거는 없다.
그런가하면 본격적인 평화론은 ‘평화 경제론’이든 ‘민주 평화론’이든 간에 ‘일방주의’보다 ‘상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협력은 아무리 ‘상호이익’ ‘공동번영’이라는 수사를 동원한다고 해도, 혹은 ‘북한 특수’라고 한다고 해도 사실상 경제원조나 다름 없다. ‘일방주의’란 의미다. 지금까지의 경협이 ‘퍼주기’란 비판을 듣고 있는 것도 최소한의 상호주의조차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핵실험을 해도 금강산 관광을 가고, 혹은 서해교전을 해도 금강산 관광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 대견한 듯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성철 스님의 화두를 저급한 수준으로 세속화시키며 ‘경제 평화론’이 힘을 받았다고 위안을 삼을 것인가. 그런 수준으로 ‘경제 평화론’은 성공하지 못한다.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에 대한 비판론자들도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은 긍정하는 쪽이다. 이들은, 평화와 경제의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을 지향하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론’에 따라 경협을 하면 남북한 정치․군사적 긴장완화라는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을 가져온다는 기능론적 접근이 결실을 가져올 수 있으나 아직은 그 결실이 크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으로 평화를 구매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돈으로 평화를 구매하는 평화경제․경협 평화론에 부정적이다. 돈으로 구매할 때 zero sum game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plus sum game이 되어야 그 바탕 위에서 평화경제․경협 평화론이 정착할 수 있다. ‘누이(남한) 좋고 매부(북한) 좋은 plus sum의 상생 관계’ 없이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을 구현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제2차 정상회담 뒤에 강조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없는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은 맹목적인 평화구매 행위로 끝날 것이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평화구매 행위를 억제하지 않으면 10․4 선언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남한과의 경제교류를 원하는 북한 당국의 의지가 실리면 10․4 선언의 제5항은 일부 실현될지 모르나, 제3항의 안보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역지사지가 결여된 평화구매’가 제5항(경제)과 제3항(안보)의 연결고리를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즉 제5항의 경제(평화경제․경협평화) 부문과 제3항의 안보(서해 평화협력 지대에 대한 군사적 보장․신뢰 구축 조치) 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차단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제5항(경제)과 제3항(안보)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경제+안보’의 경제 안보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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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10호에 실린 필자의 글「남북 경제공동체와 평화경제」(2008.2.18)을 참고하세요.
금강산 관광은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해 전쟁 위협을 감소시키는 ‘평화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남북관계가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이 기여한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1999년 6월 서해에서 남북 간 교전이 있던 때나, 2001년 ‘9.11 테러’ 때에 사재기 현상이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사업으로 조성된 긴장완화 덕택이고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심의섭, 2001, 73)
개성공단 역시 평화경제의 거점으로 손색이 없다. 개성에 주둔한 인민군 정예부대가 후방이동한 자리에 공단을 조성하는 ‘안보(안보 후퇴)-경제(경협 증진) 연계’를 통해 새로운 평화경제의 모델을 창출할 것이다. 평화경제의 새로운 거점인 개성을 중심으로 경제-안보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10․4 선언의 제5항이 탄생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개성공단의 연장선상에서 해주지역과 그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금강산․개성공단에서 이루어지는 ‘평화+경제’의 시너지 효과가 평화경제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인민군이 주둔했던 예전의 금강산 지역(장전항)․개성시가 전쟁경제와 연관이 있었다면, 금강산 관광지․개성공단은 평화경제의 새로운 터전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화경제’를 전쟁경제의 반대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또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의 경제체제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
‘평화경제’가 암시하듯이, 전쟁지향적인 군사경제를 중지하고 다른 나라와 평화적인 협력관계를 지향하는 평화적인 경제건설을 목표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평화경제는 전쟁지향적인 제국주의․군사집단․관료․독점자본과 절연된 상태에서 나라 안팎의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 평화경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경제의 군사화’와 ‘군사의 경제화’를 지양하고 국방비를 최대한 감축해야하며, 군축-국방비 감축을 통해 축적된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을 민중복지 증진에 사용해야한다. 그리고 국가기구의 군사화를 중단(국민을 억압하는 국가기구, 억압적인 정보기구 철폐)하거나, 국가권력의 군사주의화를 지양함으로써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해야한다.
금강산․개성공단에서 시험한 평화경제의 모델을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에 적용하여 평화경제의 띠를 형성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러한 성공의 주체인 남북한의 국가권력이 평화지향적으로 변모할 것이다. 국가권력의 군사주의화를 지양함으로써 평화지향적인 정치체제로 거듭날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이 국가연합에로의 진입을 촉발할 것이다. 국가연합의 대장정이 될 10․4 선언의 제3항․제5항을 중심으로 국가연합의 진입로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연합을 앞당길 수 있는 평화경제에 관한 이론 즉 평화 경제론은 분단 및 통일 문제를 단순히 정치안보적 관점이 아니라 거시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실천이론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평화 경제론은 경제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분단과 통일 문제를 규명하기 때문에 종래의 인식론과는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 종래에는 분단 및 통일문제가 주로 정치 이념적 또는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됨으로써 다분히 이념적이고 규범적인 특징을 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도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평화 경제론에서는 분단 및 통일 문제가 ‘비용의 최소화’ 내지 ‘이익의 최대화’라는 경제학적 명제를 가지고 규명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평화 경제론에서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합목적적인 통일정책을 구체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의 정치이념적인 분단 및 통일론에서는 ‘역사적으로 한 핏줄의 단일민족, 단일국가가 둘로 나뉘어졌으니 마땅히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식의 통일 당위론이 지배해왔다. 이러한 통일 당위론에서는 언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식의 감성논리(感性論理)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늘 그러하듯이 ‘통일 구현’을 분단한국이 지향해야하는 최선의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남북한은 지금까지 통일 당위론을 앞세우면서 통일정책을 막연한 정치안보 논리에 의존하여 추진해 왔다는 것을 사실상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평화 경제론은 남북분단 문제를 하나의 거시적 사회현상으로 관찰하는데 주목한다. 그리고 객관적 관찰을 통해 합목적적인 통일정책을 세부적으로 모색하는데 주력한다. 이러한 평화 경제론은 일정한 이념적 기준이나 규범적 가설에 안주하여 겉돌고 있었던 그 동안의 획일적인 통일논의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예컨대 평화 경제론에 따르면 분단 상황 하에는 분단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 최상의 통일정책으로서 도출될 수 있고, 통일 직후 일정 기간 동안은 ‘통일의 마찰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지출되는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통일 이익’(통일 편익)을 최대화하는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 경제론은 미래에 이루어지게 될 ‘남북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객관적인 분석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홍성국, 2007, 154-155)
이처럼 평화 경제론은 분단극복과 통일을 실현하는 ‘과학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 평화 경제론은 실사구시적인 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분단으로 왜곡된 사회․경제 체제를 변혁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평화 경제론이 남북한의 사회경제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당위(Sollen)’를 가로막는 ‘현실(Sein)’은 북한 핵문제이다. 북한 핵문제라는 고난의 현실이 당위를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평화 경제론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당위(통일의 청사진을 통해 남북한의 사회경제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는 당위)’를 실행할 수 없다. 평화 경제론을 적용할 수 있는 10․4 선언의 제3항․제5항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면, 평화 경제론의 통일을 위한 실행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평화 경제론의 실행력(북한 핵문제 해결 능력)을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눌 수 있다. 낙관론은 ‘평화 경제론에 따르는 남북한의 경협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평화 경제론의 ‘낙관’에 의하면, 경협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앞당긴다. 금강산 관광사업․개성공단 개발에 이어 해주공단․서해 평화협력 특별 지대로 경협의 폭이 커질수록 남북한 사이의 경제통합의 강도가 강해지며, 이는 북한 핵문제의 강력한 원군이 된다. 그러나 경제통합의 질적 확대가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화경제-경협 평화론에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김태우는 “평화 경제론은 북한의 변화의지는 확실하므로 변화를 위한 여건만 조성해주면 된다는 식의 낙관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논리로서 ‘북한이 변화를 끝내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끝내 핵을 고수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체제고수를 결심하고 있는 중에 제공되는 대북지원은 결국 제체결속을 위해 사용될 것 아닌가’ 등의 질문에는 아무런 해답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최악의 시나리오들에 대해서는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채 막연히 북한의 변화만을 기대하면서 베풀기를 계속해야 하는 딱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정문헌 의원실, 2007, 54)
1. 경협+평화; 경협 평화론
평화 경제론이라는 큰 틀 안에서 ‘경협+평화’의 경협 평화론을 전개할 수 있다. (남북한이 상생하는 평화경제의 방법인) 경협을 통해 구체적인 평화 만들기가 가능하다. 경협이라는 평화경제의 방법을 통해 평화를 창출하자는 논리가 경협 평화론이다.
1) 이론적인 틀;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을 중심으로
평화에 관한 이론은 크게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유주의 이론에 근간을 두고 있는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peace through trade theory)’은 광범위하게 교역을 하는 국가들 간에는 전쟁충돌의 가능성이 낮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적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두 국가 간의 교역은 그들간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economic costs
of war)을 증가시킨다. 둘째, 교역은 교역 상대국들의 대화를 개선시킨다는 부수적 효과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대화의 증가는 상대국간의 오해 발생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며 또한 국가 간 충돌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기구나 제도의 설립을 용이하게 한다. 이와 같은 국가 간 교역의 증가로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이 증가되어 충돌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는
‘교역 또는 상호의존을 통한 평화이론(peace through trade or interdependence theory)’은, 최근 국제관계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을 한반도와 평화정착에 적용하기 위하여는 첫째, 이 이론의 기본 가정(基本假定)이 남북한 특히 북한정권의 통치행위와 전략적 사고에 부합하는가의 여부, 둘째 이 이론이 실제로 남북한의 갈등과 긴장상태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가가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교역을 통한 평화이론’의 기본가정의 현실 적합성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호전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자, 정책 수립가, 시민들, 그리고 이 이론이 남북한 관계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믿는 (남한의 일방적 지원과 남북 경제교류협력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 학자, 정책 수립가, 시민들에게 일방적인 「햇볕정책」은 위험스러운 정책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를 강력한 군사력에 의존하여 유지하려는 현실주의적 정책은 남북한간의 적대적 관계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남북한 모두의 국력을 소모하여 민족 자생력을 상실하는 낭비적 정책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의 화해․협력을 도출하고 장기적으로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즉 한반도에 ‘적극적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북한간의 교역을 통한 상호의존성의 확대가 가장 바람직한 수단 중 하나이다.(주성환, 2002, 166-167 ・183-184)
교역이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느냐 아니냐는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역과 분쟁 사이의 인과성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며,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인과성이 검증되어야 한다. 주성환은 남북한 경제교류와 정치(군사)적 분쟁 간의 인과성 방향을 알아보았다.
주성환의 분석 결과를 보면 남북한 간에는 첫째, 거래성 교역이 분쟁에 (+)영향을 주고 분쟁은 거래성 교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북한 간에 거래성 교역이 증가(감소)하면 남북한 정치적 갈등관계가 완화(악화)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분쟁 증가 (또는 감소)는 거래성 교역의 증가나 감소를 초래하지 않고 있다. 둘째, 남북한 비거래성 교역과 분쟁 간에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수로 건설사업, 금강산 개발사업, 기타 대북 투자사업 및 대북지원 등의 비거래성 교역은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추진된 ‘햇볕정책’에 따라 크게 증가하였다. ‘햇볕정책’은 정경분리를 원칙으로 하여 남북한간의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남북한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원조적 성격의 비거래성 교역을 통해 남북한 간에 화해․협력과 평화를 이끌어 내고자 했던 정부의 노력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이 분석결과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남북한 관계에서 경제교류를 통하여 정치관계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현 정부[참여정부]의 ‘평화와 번영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단순교역과 위탁가공 교역을 포함하는 거래성 교역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주성환, 2004, 43-44)
그러나 교역이 평화를 창출한다는 인식이 반드시 올바른 것은 아니다는 반론도 있다. 바비리(Katherine Barbieri)는“대다수의 지도자들은 경제적 유대의 확장이, 무력에 심오하게 의존하는 국가간․국가내의 우애의 끈을 단단하게 할 것이라는 오랜 믿음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거부한다. ‘교역이 평화를 촉진하다’는 명제를 비판하는 쪽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국제분쟁에 하찮거나 부풀린 효과를 준다고 주장한다. 신세대들은 더욱 회의적이어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무조건적으로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지 않는다. 교역명제(trade hypothesis)를 통한 무조건적인 평화증진을 믿지 않는다. 세계화론자들은 주로 해외 직접투자․국제관계의 폭발적인 증가가 국가를 평화롭게 하거나 나라 안팎의 불안정에 기여한다고 기술하는데, 이는 아직 미결의 문제이다.”고 비판한다.(Katherine Barbieri, 1999)
2) ‘경협평화’에 대한 긍정론
<함택영의 견해>
세계화 시대에 남북한이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를 지양하고 관계개선을 꾀할 수 있는 길은 경제교류․협력뿐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위기는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체제의 진로에 효과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접근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적극적으로 ‘평화에 대한 투자’를 기하는 일이다.(함택영, 1998, 384)
<김승국의 견해>
김승국은 경협 평화론의 전제가 ‘평화경제’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아래와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김승국, 평화 만들기 210호);
① 경협 평화론의 기본 전제: 평화경제
금강산 개발 모델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면 남북한 평화경제의 전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해 전쟁 위협을 감소시키는 ‘평화경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성공단에서도 평화경제-경협평화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② 현실적인 근거: 유럽의 ‘경협을 통한 평화증진’ 사례
유럽의 경우 공동 안보 틀(헬싱키 체제, CSCE 체제)은 자원의 공동관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앙숙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통한 유럽 통합의 길을 튼 것은 1952년에 출범한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CSC)이다.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프랑스와 독일이 중심이 된 6개국 유럽 경제부흥의 생명선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관리하자는 발상에 따라 ECSC가 출범했다. 이러한 발상은 오늘날 유럽공동체(유럽 평화공동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유럽은 자원․경제 공동체를 대변하는 유로 달러를 강화하는 가운데, 공동안보를 책임질 유럽 공동군(軍) 창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통합과 협력안보의 총화를 통한 유럽 평화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원 공동체가 평화 공동체의 하부구조가 된 유럽의 성공사례를 경협 평화론으로 정립한 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③ 경협 평화론을 한반도에 적용하기: ‘경제-안보 연계’ 카드
세계화 시대의 평화통일 전략으로는 경제적인 접근에 의하여, 즉 경제통합을 통하여 민족경제의 기반을 조성하는 길이 보다 유망하다. '시장의 논리’와 ‘(민족)공동체의 논리’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게 긴요하다. 경제협력을 통한 신뢰구축을 통해 군비통제 및 군축을 촉진함으로써 안보 공동체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1백만 명 이상의 남측 관광객이 북녘 땅을 자유로이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한 신뢰구축에 도움이 된다. 더욱이 최근의 금강산 육로 관광이 DMZ의 닫힌 문을 여는 ‘소통의 길’이 된 데 따른 남북 신뢰구축의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NLL 사태의 확산을 막는 분쟁 억지력으로 작용했다. 지난 NLL 사태 때 서해안에서 남북한 군사충돌이 일어났지만, 동해안에서는 금강산 뱃길 관광이 지속되었다. NLL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 남북 당국의 의지가 NLL 사태의 확산을 막는데 일조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비군사적 교류 협력이 군사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한반도 서부 지역에서도 개성 관광의 문호를 활짝 열어 비무장지대가 점차 평화지대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을 잇는 평화 프로젝트(긴장완화에 기여한 평화 기능)이자 남북 교류의 새로운 모델로서 개성 개발의 본보기가 된다. 그러므로 금강산 관광은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 퍼오기’이며, 특히 금강산행 육로는 ‘평화의 길(Peace Road)'로 손색이 없다.
개성 공단은, ‘남북간 경제교류 확대(경제)를 통한 긴장 완화(안보)’라는 경제-안보 연계 카드의 시험장이 될 것이다. 북한의 최전방 요새인 개성에서 인민군대가 모두 빠져 나오고 그 자리에 공단을 조성한다는 ‘안보(안보 후퇴)-경제(경제개발) 연계’ 결단이 개성 개발을 가능케 했다. 여기에 경제 우선의 관점에서 개성개발에 임하는 남한의 ‘경제(중소기업의 돌파구 찾기)-안보(대북 신뢰구축) 연계’ 구상이 접목됨으로써, 개성 개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④ 남북경협과 ‘북한 핵문제’ 해소: 남북경협으로 핵무기-기아의 악순환을 끊기
북한의 가장 큰 대외적인 위협은 ‘미국의 북한정권 붕괴 시나리오’이며 대내적인 위협은 기아이다. 두 위협요인은 서로 맞물려 있다. 미국의 집요한 북한붕괴 시나리오 때문에 기아가 가속화되었고, 기아의 가속화라는 경제난을 군사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북한에서 기아→핵무기 개발의 악순환과 제1차 빈곤→제2차 빈곤의 악순환이 동시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끊는 길을 남북한 경협에서 찾도록 노력해야한다.
<정부쪽의 견해>
10․4 선언이라는 옥동자를 낳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 참여정부이므로, 당연히 참여정부는 ‘경협평화’에 적극적이다.
종합 월간지인 {신동아}(2007년 11월호)가 참여정부의 ‘대북 비전’을 담은 통일부 미공개 문건(「평화경제 체제 형성 전략」이라는 용역 보고서)을 단독 취재했는데, 이 문건을 통해 정부쪽의 견해를 유추해석할 수 있다.
아래는 {신동아}(2007년 11월호, 237~239쪽)의 관련기사 내용이다;
통일부 주변에선 이번 정상회담[제2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노무현 정부의 대북 비전을 담은 ‘밑그림’ 중 하나로 ‘평화경제체제 형성 전략’이라는 내부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 경협을 연계한 3단계 평화경제체제 형성 전략을 제시했다. 1단계는 북핵 문제의 교착 상태, 2단계는 북핵 문제의 합의 상태, 3단계는 북핵 문
제 해결 이후의 상태로 규정한 뒤 1단계에선 평화경제 체제의 기반 조성, 2단계에선 평화경제체제의 발전, 3단계에선 평화경제 체제의 심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신동아}는 이 보고서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조민 박사(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보고서의 핵심 방향과 주요 내용을 알아보고자 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에 대한 조 선임연구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질문] 보고서에서 제시한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무엇인가.
[조민 박사의 대답] “보고서의 핵심 콘셉트는 ‘북한 사회에 시장경제 체제를 이식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의 이식은 ‘대북 투자’의 형태로 이뤄진다. 다른 말로 하면 ‘평화를 구매하자’는 개념이다.”
-‘평화를 구매하자’는 취지인가.
“보고서에선 평화경제 개념을 채택했다.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야 한다’는 논리다. 힘에 의한 평화와는 다르다. 부시 미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실패한 것은 ‘민주주의와 자유’이념을 강제적으로 이식하려 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경제적 자유와 번영을 보장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북한에 이식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구축에 더 적합한 방식이라고 본다. 이런 개념하에서 구체적 경협사업 관련 내용들이 연구됐다.”
그런데 위와 같은 ‘평화를 구매하자’는 개념은 진보․보수 양쪽으로부터 협공당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평화를 구매하는’ 발상은 필자 등이 주장하는 평화 경제론에 어긋난다. 어긋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힌다;
첫째, 평화는 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평화가 매매의 대상이 된 사례가 있다. 서독이 마르크화로 동독을 산 결과 동서독의 통일이 이루어진 사례, 소련 붕괴 뒤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해체를 위해 대량의 달러를 투입한 사례(달러로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구입),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에 이은 서방경제권 진입을 미끼로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한 사례, 북한 핵물질을 돈 주고 사면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선 핵문제와 관련된 평화구매 전략을 거론하고 서독이 돈으로 평화를 구매한 사례를 논평하는 순서를 밟는다. 핵물질․(핵)미사일을 돈 주고 구입하자는 자본주의적인 평화구매 전략이 우크라이나․리비아에까지 관철되었으나, 북한에 대하여서는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평화전략과 자본주의 방식의 평화구매 전략이 상통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북한이 미국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하는 ‘근본문제’ 해결이 없는 평화구매 전략이 성공할리 없다.
서독 정부가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마르크화를 소련에 지불함으로써 통일의 대외환경을 만들었으며, 동독을 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독의 돈(자본)을 대거 투입했다. 한마디로 서독은 돈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했다. 이렇게 돈으로 동독을 흡수통일한 후유증을 잘 알고 있을 전문가들이 ‘돈으로 평화를 구매하자’는 발상을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 발상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장으로까지 연결되었다는 게 심각한 일이다.
(북한 개혁․개방론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평화구매 전략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노무현 대통령이 개혁․개방론을 설파하다가 제2차 정상회담의 첫날부터 낭패를 보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북한 개혁․개방의 미사여구에 파묻힌 평화구매 전략-평화 경제론과 필자의 ‘남북한 상생에 의한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의 차이점은 이 정도로 강조하고, ‘평화구매 전략에 입각한 평화경제-경협평화’에 대한 보수 진영의 비판을 이어서 소개한다.
3) ‘경협평화’에 대한 비판론
① 박효종 교수의 비판론(정문헌 의원실, 2007, 38-39)
이번 회담[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 노대통령은 ‘돈으로 평화를 살수 있다’는 말에 고무된 듯하다. 실제로 16세기의 사상가인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돈으로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외친 로마의 베제티우스나 마키아벨리의 견해와 사뭇 다른 것이다. 남북간의 교역과 교류가 많아질수록 상호이해도가 높아져 자연스럽게 통일이나 평화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은 현실 역사에서 검증된 바 없는 전형적인 이상론이다. 화해와 교류는 좋은 것이며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잦은 만남도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평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이른바 ‘평화 경제론’이다. 평화 경제론은 평화와 경제의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경협을 하면 남북한 정치․군사적 긴장완화라는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론이다.
하지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이와 같은 입장은 과거 미트라니(Mitrany)와 같은 학자들이 ‘기능론적 접근’이라고 불렀던 것이기도 하다. 기능론의 핵심은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기능론의 결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유럽통합을 상징하는 EU가 대표적 결실일 것이다. 그러나 EU의 특징은 체제와 이념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성취된 통합이라는 점에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 남북한이 가려고 하는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이다. 즉 체제가 다른 국가들끼리 경제적 통합을 통해서 정치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창의성의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상당한 모험도 뒤따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검증된 주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입장에도 새로운 시작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과거에 그러한 사례가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러한 경험적 사례가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중차대한 시도라면,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무모한 모험론에 몸을 맡길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며 가야한다. 과연 지금 우리의 태도가 그런가.
우리는 ‘평화 경제론’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명제보다는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역사적으로 검증된 명제를 선호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민주 평화론’이다. 남북한간 공고한 경제적 유대 또는 경제 공동체 형성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담고 있는 ‘평화 경제론’이 ‘민주 평화론’보다 한반도 평화에 있어 우위에 있다는 근거는 없다.
그런가하면 본격적인 평화론은 ‘평화 경제론’이든 ‘민주 평화론’이든 간에 ‘일방주의’보다 ‘상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협력은 아무리 ‘상호이익’ ‘공동번영’이라는 수사를 동원한다고 해도, 혹은 ‘북한 특수’라고 한다고 해도 사실상 경제원조나 다름 없다. ‘일방주의’란 의미다. 지금까지의 경협이 ‘퍼주기’란 비판을 듣고 있는 것도 최소한의 상호주의조차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핵실험을 해도 금강산 관광을 가고, 혹은 서해교전을 해도 금강산 관광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 대견한 듯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성철 스님의 화두를 저급한 수준으로 세속화시키며 ‘경제 평화론’이 힘을 받았다고 위안을 삼을 것인가. 그런 수준으로 ‘경제 평화론’은 성공하지 못한다.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에 대한 비판론자들도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은 긍정하는 쪽이다. 이들은, 평화와 경제의 상호작용과 상승작용을 지향하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론’에 따라 경협을 하면 남북한 정치․군사적 긴장완화라는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을 가져온다는 기능론적 접근이 결실을 가져올 수 있으나 아직은 그 결실이 크게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으로 평화를 구매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돈으로 평화를 구매하는 평화경제․경협 평화론에 부정적이다. 돈으로 구매할 때 zero sum game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plus sum game이 되어야 그 바탕 위에서 평화경제․경협 평화론이 정착할 수 있다. ‘누이(남한) 좋고 매부(북한) 좋은 plus sum의 상생 관계’ 없이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을 구현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제2차 정상회담 뒤에 강조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없는 평화 경제론․경협 평화론은 맹목적인 평화구매 행위로 끝날 것이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평화구매 행위를 억제하지 않으면 10․4 선언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남한과의 경제교류를 원하는 북한 당국의 의지가 실리면 10․4 선언의 제5항은 일부 실현될지 모르나, 제3항의 안보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역지사지가 결여된 평화구매’가 제5항(경제)과 제3항(안보)의 연결고리를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즉 제5항의 경제(평화경제․경협평화) 부문과 제3항의 안보(서해 평화협력 지대에 대한 군사적 보장․신뢰 구축 조치) 부문의 시너지 효과를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차단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제5항(경제)과 제3항(안보)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경제+안보’의 경제 안보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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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310호에 실린 필자의 글「남북 경제공동체와 평화경제」(2008.2.18)을 참고하세요.